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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창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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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후이었더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아직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마침 사래에게는 하갈이라는 이집트 출신 몸종이 있었습니다. 사래는 몹시 초조했습니다. 나이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남편 아브람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자식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내 몸종을 받아 주십시오. 아들을 낳아 대를 이었으면 합니다.” 아브람도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일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그 아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몸종 하갈을 첩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지 십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하갈이 임신을 했습니다. 하갈은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몸종이 남편의 아기를 임신하자 속이 편치 않았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호소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멸시를 받은 것은 당신 탓입니다. 나는 내 몸종을 당신 품에 안겨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몸에 태기가 있는 것을 알고는 저를 업신여깁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당신의 몸종인데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 좋은 대로 하시오.” 합니다.

사래가 하갈을 박대합니다. 하갈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빈들에 있는 샘터에서 하갈을 만났습니다. 그 샘터는 앗수르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천사가 “하갈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라고 묻습니다. “나의 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그때 천사가 주인 곁으로 돌아가라 고생을 참고 견디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정말 우리는 너무 서둘지 않습니까? 기다리는 데 익숙지 않습니다. 너무 빨리 빨리지요. 우리 한국 음식은 빨리 빨리가 아닙니다. 밥도 솥에서 30~40분 뜸을 들여 먹습니다. 된장도 몇 달 메주를 만들고 담근 다음에도 한참 지납니다. 젓갈도 그렇습니다. 새우, 멸치 등도 소금에 절여 몇 달을 숙성 시킵니다. 집구조도 군불을 땝니다. 천천히 흙과 돌이 열을 받습니다. 그 다음 새벽까지 방이 따뜻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미덕이 있었습니다. 옛날 1960~70년대 초까지 보릿고개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리가 피고 익어 갈 5월 하순~ 6월 초에는 양식이 다 떨어집니다. 쑥이나 산나물을 뜯어 연명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볍씨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산업의 발달과 함께 잘 살다 보니 참는 데는 미숙한 것을 봅니다. 햄버거, 피자, 토스트, 라면 이런 즉석음식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차도 더 빠르게 더 빠르게 그래요. 느림보 완행열차를 타 보면 어떨까요? 여기 사래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이때껏 기다렸는데 좀 더 참고 기다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물론 그 당시 법으로야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몸종이 주인의 첩이 되는 일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바른 길로 가야합니다. 아브람 부부는 조급했습니다. 오판했습니다. 조급한 것이 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아브람 가정에 비극이 왔습니다. 아브람 가정에 태풍이 분 것입니다. 가정이 휘청 기우뚱합니다. 오늘 저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오판하면 안 됩니다.

아브람 가정이 야단났습니다. 잡음이 들립니다. 사래는 초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이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이는 자꾸 많아집니다.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이젠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아브람에게 미안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진해서 자기의 몸종을 아브람의 첩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설령 아들을 못 낳는다고 해도 이러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에 길이 참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 하셨습니다.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이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이 후손이 불어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흔들렸습니다. 그는 비틀거린 것입니다.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아브람은 거절했어야 합니다. 사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 때를 참고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불신 결혼을 합니다. 그 이유는 믿는 남자 청년이 적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전도하면 된다고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평생 안 될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사래가 믿음이 약했습니다. 사탄이 그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보다 인간적인 도리를 더 앞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 불행한 일입니다. 전적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늘 의심이 문제입니다. 의심이 병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맙시다. 사람을 의심하지 맙시다. 그것은 이미 병이 들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기다립시다. 요즈음 많은 사람이 기다리기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요즈음 세계는 느림보학이 생겼습니다. 조급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너무 빠른 것에만 익숙해 있습니다. 고속 전철, 고성능 컴퓨터, 초고속 인터넷, 이것이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생긴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유를 찾자. 정신 좀 차리자. 숨 돌릴 여유를 가지자는 것입니다. 너무 빠른 것이 현대인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Slow shift. 느리게 느림보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생기를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좀 여유 있게 기다릴 줄 아는 푸근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 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자 그 다음날 열매 맺는 것 아닙니다.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판하면 안 됩니다. 의사들도 오진이 대단히 많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고 의학 장비가 현대화 했습니다. 그래도 오진은 많습니다. 어느 방사선 내과 전문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현대의학 장비나 의술이 발달해도 사람의 손으로 오는 촉감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수 백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사래의 오판이 얼마나 큰 비극이 오는가를 그는 몰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저는 늘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목회를 저가 한다고 오판하지 않게 해 주세요. 내가 목회한다는 건방지고 버릇없는 목사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서푼어치도 안 되는 지식나부랭이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위대한 이스라엘의 민족 영웅 모세를 보세요. 그가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성질이 급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전국에 지명 수배령이 내려졌습니다. 혈기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포기했습니다. 미디안 들판에다 자기를 던져버렸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애굽 말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말이 어눌합니다. 보낼 만 한 사람을 보내 주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저 같이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안 됩니다. 저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감히 하나님께 대꾸할 수 있습니까? 그는 솔직했습니다.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40년 전의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전혀 딴판입니다. 그가 오판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의 믿음과 인격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찍어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도 하십니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도 하십니다. 우리 다 약한 자 입니다. 오판하면 불행해 집니다.

Ⅱ.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4월 첫 주에 고향 친구 장로님과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이 대학교수이십니다. 그와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평생 교회의 질서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는 장로, 집사, 권사를 당회에서 배수로 추천해서 공동의회를 한답니다. 우리 총회 헌법에 그렇게 하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단 주일 예배 참석 몇 점, 수요일 밤 예배 참석 몇 점, 금요 밤 기도회 참석 몇 점, 새벽 기도회 참석 몇 점, 십일조 헌금 몇 점, 감사헌금 1번에 몇 점, 교회봉사 상, 중, 하 (몇 점), 가정생활 몇 점, 자녀들 신앙생활 몇 점, 인사하는 것 인간관계 몇 점, 그래서 몇 점 이상이 되어야 장로, 집사, 권사 후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매우 합리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불평이나 섭섭한 것이 없지요. 우리는 모든 신앙이 예배중심이어야 합니다. 예배라는 히브리어 '샤하이'는 “엎드린다. 절한다. 경배한다. 발에다 입 맞춘다”는 뜻입니다. 예배란 하나님 임재에 대한 체험입니다. 그 하나님께 경배하고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주로 설교를 통해 그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경건해야 합니다. 그 경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 중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아브람 내외는 그것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래에게 아들을 낳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물론 문제가 없었던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금방 아들을 낳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의 아내는 불안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셨으면 벌써 주셨겠지, 내 나이가 몇인데,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인본주의 입니다. 저는 이것을 늘 두려워합니다. 제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 말씀보다 절대 앞서가지 말자. 하나님 뜻을 기다리자는 것이 제 목회철학입니다. 인간은 인간 이상이 아닙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불완전 합니다. 저는 바른 목회를 노력 해 봅니다.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십시오. 경건한 예배를 싫어합니다. 복음적인 설교를 싫어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설교가 듣기 싫다고 합니다. 곽선희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침체된 것은 참다운 예배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예배는 사라지고 노래방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교인들이 복음성가에 취해 있습니다.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흥분되면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열이 오르면 은혜 충만 하다고 착각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합시다.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람 가정에 비극이 왔습니다. 아내 사래가 자기가 한 선택을 금방 후회했습니다. 그의 몸종 하갈을 남편의 첩으로 떠밀었습니다. 그가 임신했습니다. 눈에 독이 번뜩입니다. 질투했습니다.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하갈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해야 합니다. 발람 선지자 아시죠. 그는 적군을 축복하려고 갑니다. 그는 짐승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길이 아니면 가지 맙시다. 거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평안하던 아브람 가정에 태풍이 불었습니다. 그는 아니라고 아내를 나무랐어야지요. 그도 맞장구를 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부끄러운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영물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이다. 잘못된 것이다 라는 것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주일 놀러 가면 안 된다. 수요일 밤에 예배 드려야 한다. 성경 읽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십일조 바치면 복 받는다. 감사하면 더 주신다는 것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브람과 그 아내는 행복했습니다. 부자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여자가 시집 가서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가 그랬습니다. 두 부부가 나이는 점점 많아집니다. 80 노인입니다. 아직도 아들이 없습니다.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사래는 그 남편에게 자기 몸종 하갈을 첩으로 맞아 아들을 낳으라고 합니다. 아브람은 그 말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갈은 쉽게 아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래는 돌변했습니다. 거칠고 사납게 질투합니다. 하갈을 못 살게 굽니다. 결국 하갈은 여기 살다가는 죽겠구나 하고 가출합니다. 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사래가 오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지요. 너무 서둘렀습니다.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두 내외가 몰랐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반드시 후회합니다. 우리도 늘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길인가를 자주 확인하셔서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4.17-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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