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시 살아나기 (요 5:24~29)

  • 잡초 잡초
  • 286
  • 0

첨부 1


- 설교 : 장명수 목사  I  2005년4월17일 설교 
 
  사람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말을 들으면 즉시 사람들이 행동하고 활동하게 됩니다. 말이 가진 능력은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 소통이 일어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의사 소통에 있어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 호의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때 원활한 소통이 됩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이 다른 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듣지를 못하게 됩니다. 소통은 서로 말하고 듣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죄인들은 귀를 열고 진심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편견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죄인들은 말씀을 들은 대로 고침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똑같이 들었지만 왜곡해서 잘못 들었기 때문에 분노와 증오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귀를 제대로 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듣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25절). 사람의 귀에 하나님 말씀이 들리면 살아날 것이요, 반대로 들리지 않으면 죽은 상태로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야 합니다. 말씀이 말씀답게 능력있게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로 들린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의심스럽게 들린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들리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심령이 새롭게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1) 먼저 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잡다한 소리를 많이 듣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야 심령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귀를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의 귀에 방해를 하고 있는지 찾아내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고 합니다. 특히 제사장 엘리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다른 문제들에 신경을 많아 썼나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까 캄캄한 인생의 어둠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들려야 하는데 막혀 있습니다. 귀가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세상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세상의 소리들은 고민과 염려를 만들 뿐입니다.

  사사기 시대와 말라기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백성들의 삶이 아주 답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니까 우상을 찾아야 하고, 물질을 찾아야 하고, 쾌락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시대는 흑암 속에서 방황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귀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고 있습니까? 잘 들리지 않는다면 무엇이 귀를 막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주 예민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아주 신경을 많이 써야 했고, 마음이 아파 괴로워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여 괴로워하는 목사님을 보고 옆에 있던 사모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사람의 말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신경을 안 쓰십니까?”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가까이 있어야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세상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가까이로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납고 거친 개도 며칠만 굶으면 기운이 없어지고 무기력하게 죽어갑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양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가는 교인을 ‘거북이 교인’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도 살아가는 교인은 겉모습은 살아있지만 영적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귀를 크게 열어야 합니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막힌 귀를 크게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의 귀를 막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도록 성도들의 귀를 막습니다. 설교 시간에 귀를 막아 다른 일을 생각하고, 말씀이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다시 사는 은혜를 입기 위해서 여러분의 귀를 크게 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귀가 새롭게 열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들리는 자는 은혜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사는 축복이 있습니다. 나의 귀를 크게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새 생명의 은혜가 있습니다.

  에스겔 37장에 어느 저주스러운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오래 된 마른 뼈들이 가득 차 있는 골짜기입니다. 아주 무시무시한 골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간혹 뉴스에 6.25 전쟁 이후에 오랫동안 묻혀 있는 유골들이 발견되기도 하고,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마른 뼈들이 빗물에 씻겨 세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끔찍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골짜기의 수많은 마른 뼈들을 보여 주시고, 그 뼈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 37:4)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은 마른 뼈들이 생기가 살아납니다. 마른 뼈에 살이 입혀지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생명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면 나의 심령이 새롭게 살아나는 은혜를 입습니다.

  예전에 새신자 가정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과거에 불교를 철저히 믿던 분입니다. 예배를 다 드린 후에 불교에서 사용하던 염주, 부적 같은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와서 태워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 분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과거에는 철저히 우상을 섬기던 마음이었지만, 이제 생명의 말씀이 귀에 들렸을 때 우상을 섬기던 물건들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새로운 심령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새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어린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는 것처럼, 봄바람 소리를 듣고 개구리가 깨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롭게 탄생하며,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가난한 과부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일찍 죽고 홀로 아들만 의지하고 살았는데, 기구한 운명은 더욱 불행을 만드는가 봅니다. 아들이 중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과부의 마음은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고통스러울 대로 고통스럽습니다. 울며 불며 아들을 장사지내기 위해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무덤가로 향했습니다. 바로 그 때 길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눈물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바로 관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청년이 바로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죽은 사람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능력이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어둠의 세력이 마음에서 떠나고 생명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무덤일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우리의 심령이 아무리 힘없고 시들고 나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새롭게 듣는다면 소생하는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 들리길 축원드립니다.

  상처 입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짝으로부터 버림 받은 독수리, 힘센 독수리에게 상처 입은 독수리 등. 이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하고 죽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실패한 독수리들이 모두 모여 죽기를 결심했습니다. 저 너머 꼭대기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영웅 독수리가 이들 앞에 내려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자살하려느냐?”, “괴로워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하길 “나는 상처가 없는 줄 아는가? 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상처가 나타났습니다. “여긴 날기 시험할 때 찢긴 상처요, 이건 나보다 힘센 독수리가 할퀸 자국이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새는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 자, 일어나 같이 날자.” 영웅 독수리는 희망 섞인 말을 그들에게 했습니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귀가 막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새롭게 듣고 힘을 내고 능력을 받아 다시 살아갑니다. 엉엉 울던 아이가 엄마의 위로의 말씀을 듣고 다시 새 힘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새롭게 들음으로, 새로운 힘과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사는 복을 얻기 위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