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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을 성전답게 (출 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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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광현 목사
   
  오늘은 성암교회 설립 6주년을 기념하여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예배당을 중심으로 조성되며 예배당의 원형은 성전이었으며 성전의 원형은 성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성막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 성암교회의 사명을 조명받고저 합니다.
  먼저 성막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겠습니다.
  성막은 장막, 또는 회막 이라고 했는데, 성경에 보면 이 성막에 관한 기사가 출애굽기에서 13장, 레위기에서 18장, 민수기에서 13장, 신명기에서는 2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막은 우리에게 그 만큼 중요한 부분임을 가르켜 주고 있습니다.
  성막은 밖에서 보면 보잘 것이 없습니다. 흰 세마포가 직사각형으로 쳐있고 뜰 가운데는 놋으로 만든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으며 그 위쪽에 검은 막으로 덮여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방의 신전이나 우상의 전각처럼 결코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소규모이며 소박한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당 모습에 비한다면 정말 초라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그러한 외형적인 것에 가치를 두거나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땅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지을 지라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 있는데는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을 지라도 주의 이름을 두신 곳이기 때문에 임재해 주시는 것입니다.


  행 7:44 이하에 보면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 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양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사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 7:48-50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지을 때 우리의 소중한 것을 드려서 정성을 드려서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관으로 판단을 해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있어야 하고, 진실로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는 곳에 주님이 임재하시고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성막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유대인이고, 또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
람은 제사장 가운데서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소의 휘장을 그몸으로 열어 놓으시므로 인하여 은혜의 보좌 즉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1. 하나님을 만나는곳

  성막을 회막이라고도 합니다. 레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이 회막에서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세를 만나셔서 뜻을 전하시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매개의 역활을 했던 것입니다.
  자 먼저도 지적을 했듯이 하나님은 온 우주라도 용납지 못할 분이시지만, 하나님께서 왜 작은 성막을 만들도록 하셨을까요?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거룩한 백성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가 오지 않으니까, 야! 모세가 오지 안나보다, 죽었는지도 모른다 했을런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아론을 협박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神이라고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를 구별하시고 특정한 사람들을 성별하여 섬기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이나 교회가 많은 재물을 드려서 지어서 또는 그것이 웅장하고 화려해서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 뜨리우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의 가치는 그것의 아름다움이나 크기나 값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또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4:32-33에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이루워진다고 봅니다. 부모를 잘 만나야 합니다. 형제를 잘 만나야 합니다. 또 남편이나 아내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 스승을 올바로 만나야 합니다. 동업자. 직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잘못 만나게 될 때에 인생의 실패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하나님과의 만남 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이 세상에서의 나의 환경이 바꿔집니다. 설사 그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라도 극복합니다. 또한 나의 잘못된 만남을 선한 것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 33:12에 보면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복중의 복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 분이 주시는 양식을 먹고 그 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성막에 가서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뵙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으니 자녀가 되어 제사장을 통하여 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복받은 사람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성막은 작게는 말뚝으로부터 숟가락에 이르기 까지 있고, 또 크게는 장막에서부터 정금으로 만들어진 값진 것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크건 작건 이름없는 막대기거나 값진 정금이거나 어느 하나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한 것과 같이 성막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39권입니다. 이 모든 성경이 가르키고 증거하는 핵심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5:39절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했고
  히 10:1절에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참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목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믿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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