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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길 (요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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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I  2005년4월24일 설교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나누시던 중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어서 심히 괴로워 하시며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제자들을 떠나 어디론가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또한 매우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한층 더 궁금하게 하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또 다시 물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자들로서는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알 수 없고, 따라갈 수도 없는 그 어디론가 주님이 가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바치겠다고 하는 베드로를 향해서 그가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아닙니까? 제자들은 모두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불안해 하는 제자들을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갖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근심하지 않도록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할 곳이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믿어도 좋다는 것입니까? 그 곳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사이버 공간과 같이 환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장차 누구나 가게 될 매우 실제적인 곳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 거할 곳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가시는 것이며 장차 다시 와서 모든 제자들을 그리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도마가 물었습니다. 의심 많고 모든 것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를 좋아하는 도마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쉽게 말해서 그리로 가는 길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아마도 이 질문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질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이란 인생의 방향, 방법, 과정 등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선택하는 길은 그 선택하는 과정도 매우 힘이 들지만 그 결과도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함에 있어서 진짜로 도움이 될 만한 그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비록 오래 전에 겪은 일이지만 제가 겪은 일을 한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기도원에 가다가 밤중에 길을 잃었습니다. 조금 헤매다가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길 옆에 있는 주유소에 들어가서 그 기도원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습니다. 주유소 안에 앉아 있던 청년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 기도원에 전화를 걸어서 자세히 위치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길을 설명해 주려다가 아무래도 이 밤에 찾아가기에는 어려운 길이라며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말하기가 무섭게 나가더니 자기 차를 타고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뜻밖의 친절이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꽤 먼 길인데, 그것도 비가 내리는 밤길을 꼬불꼬불 달려서 기도원 입구까지 가서는 차를 세웠습니다. 정말로 고맙다고 했더니 자기 동네에 오신 손님인데 이 밤중에 헤맬 것이 마음이 걸려서 그랬다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에게 저를 목사로 소개하면서 교회에 다니는가 물어보았더니 부끄러운 듯이 아직은 안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주님을 믿는 신앙은 없었지만 그의 친절한 행동은 주님을 믿는 저를 오히려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감동적인 일을 돌이켜 보면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가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서 설명해 줬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그 약도를 가지고 찾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동안 계속 마음을 졸이며 갔을 것입니다. 비오는 밤의 산길이라 고생은 좀 더 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자기 뒤를 따라오라면서 차를 타고 앞서 가는데 저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릅니다. 이미 기도원에 도착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마음의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은 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청년의 뒤를 따라가면서 마음의 평안을 맛본 것처럼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즐겁고 기쁜 신앙 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그런데 주님과 제자들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마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에 이어서 그 길의 궁극적인 목표라고도 할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줄 수 없겠느냐고 빌립이 요청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감히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빌립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동등하시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증한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습니까? 과연 순간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이제 더 이상 헤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더 이상 근심하거나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앞서 가신 주님의 길을 끝까지 따라감으로써 장차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영원토록 거하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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