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건강한 삶의 의미 (마 6:20-24)

  • 잡초 잡초
  • 330
  • 0

첨부 1


- 설교 : 김이봉 목사
 
□ 건강한 삶의 의미 (마 6:20-24)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
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20-24절)

1. 21세기의 삶의 화제는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입니다.

TV나 인터넷 쇼핑이나, 책들을 통하여 흔히 듣는 말은 <웰빙>입니다.
<웰빙>이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란 뜻으로 보통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이 웰빙이란 말을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참살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우리 믿는 성도들은 잘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이 <웰빙>이란 말이 소개되기는 2002년 후반기 부터라고 봅니다. 2003년에 들어서면
서 다양한 웰빙산업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웰빙이란 말이 널리 사용되게 되었고, 심지어 교
회 이름에도 <웰빙교회>, <웰빙목회>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웰빙>이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글자대로 보면 건강한(well) 삶(being)이란 말일 것입니다.
<건강한 삶>이란 매우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건강한 삶>이란 인간의 행복과, 안녕과 복지(welfare) 등을 포함한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강조하는 말입
니다.
즉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풍요롭고 아름다운 생을 유지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웰빙>은 육체적인 건강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것은 돈벌이에 눈을 뜬 사람들이 웰빙 산업을 일으키는 데서 더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즘 식품이나, 의류나, 가전제품이나, 건축이나, 화장품에 이르기 까지 웰빙 소리가 안 들어간 것이 거의 없
을 정도입니다.

2. 그러면 건강한 삶(well-being)의 참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1949년에 설립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창립헌장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의한 것이
있습니다.
“육체적 질병 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이 없는 온전한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 여기에다 1998
년 WHO 집행이사회에서는 하나 더 첨가하였는데, 영적인 것(Spititual)을 첨가하였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삶이란 “신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사회적이고, 영적으로 건강”해야 참 웰빙 이라고 하였습니
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말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여 웰
빙 음식, 웰빙 의복, 웰빙 가전제품을 사다 놓고 살아도,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을 웰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웰빙이라고 유기농산물과 천연섬유의 의복과 공기청정기와 같은 것을 갖추어 놓고 산다
고 웰빙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을 모를 때 웰빙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개인주의>와 <소비문화>로 치닫게 되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따라서 오늘의 웰빙족속은 다이어트나, 몸 관리에 치중하는 등 소위 육체우
상화로 기울어진 것을 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영적으로까지 끌어 올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참 웰빙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지시켜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웰빙(well-being)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에덴동산의 삶이 웰빙의 모델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시며 보기 좋았더라고 한 말에서 웰빙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에덴동산의 웰빙이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있지 아니했습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입는데 있지 않고 관계성에서 웰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자연과의 관계에서 웰빙이 있었습니다. 즉 현재 우리처럼 <
소유>와 <성취>에서 얻어지는 웰빙이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화로운 관계가 바로 사랑의 관계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자기만이라는 욕심이 없었
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각종 나무에는 열매가 달렸고, 수정같이 맑은 물은 오염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처음 동산에 관계가 무너지면서 서로 살생이 시작되었고, 모든 조화는 한꺼번에 깨져 버렸습니다. 즉
웰빙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웰빙이란 말입니다.
웰빙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 혼자 잘 먹고, 나 혼자 잘 살면 그것이 웰빙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회복에서 얻어지는 균형과 조화가 웰빙 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모든 나라들이 추구해야할 인류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어제와 그제 우리 한반도는 온통 공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황사현상이 왜 생기는 것입니까?
따져보면 모든 나라들이 제각기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서 기인된 원인들이 아니겠습니까?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 경제만능의 사상에 얽매어 마구잡이로 공장들을 세워서 온통 지구는 지금 시달
리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들이 녹아내려 바다수위가 높아져가고, 지하수들의 오염으로 생수
가 고갈되어가는 기현상을 낳게 되었습니다. 제각기 잘 먹고 잘 살려다가 도리어 인류의 종말을 맞게 될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을 제쳐놓고 나 혼자만의 웰빙을 추구해 보았자 그것은 참된 웰빙이 아닌 것이 뼈저리게
느껴질 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법대로 자기 하나만의 몸매나 가꾸고, 혼자만의 웰빙 음
식을 먹는다고 해서 참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구약의 희브리인들이 생각했던 <샬롬>이 바로 웰빙의 성취입니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축복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샬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의 <샬롬>(평안)을 너희에게 남기고 가니 이것은 세
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웰빙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그런 웰빙만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회복할 때 건강한 삶이 유지되고 거기에서 참 웰빙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없는 웰빙은 웰빙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각각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추구하고 있는 웰빙은 무엇인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왜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였는지?
자신을 깊이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나의 행복을 뺏어간 것은 돈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서, 그 돈 때문에 이웃간에도 마음을 상하
게 하였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보다, 돈 문제로 신앙까지도 버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입니다.

저는 어제 쪽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모 집사님이 금년부터 다른 교회에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면서,
우리 교회에서 성도간에 금전거래로 빚을 진 것이 있었는데, 아직도 다 갚지를 못한 것 같았습니다. 자신도 뼈
아프게 갚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면서, 언젠가는 꼭 갚을 것이라고 하는데,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힘들게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십일조를 해도, 빚부터 갚고 십일조를 해야지 하나님이 그 십일조 받겠느냐? 또 직업상 정장을 하고
나와도 남의 빚도 갚지 않으면서 옷은 해 입는다는 등등... 본인보다 주변의 사람들의 입방아가 도무지 교회에
서 버틸 수 없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남에게 경제적인 고통을 주어도 안 되겠지만, 자기와의 관계도 아닌데 남의 사정을 모르면서 함
부로 상처를 주는 일들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 금전 거래는 서로 안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입니다. 본래 친구와는 돈 거래를 하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돈 잃고 친구 잃는 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릴 때는 먼저 신용을 지켜야할 것이고, 그것 없이 빌려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일 것이고,
또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이자 받을 생각하지 말고 떼일 생각하고 주라는 것입니다. 또 본의 아니
게 빚을 갚을 길이 없어졌으면,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는가 하면, 그리스도인의 웰빙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이 웰빙이 아니란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조화된 관계를 실천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가끔 손을 벌리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라도 주어야 마음이 편한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딱한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없을 때는 마음이 무겁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악해져서, 으레 교회 목사는 거절하지 않겠지...하는 생각으로 거짓말로 찾아오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말을 돌려서 합니다.
결국 끝에는 돈 몇 푼을 얻어가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런 경우를 너무 자주 당하다 보니, 요즘은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
입니까?

웰빙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영적관계를 진지하게 회복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봅니다.
내가 누구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끼치는 일은 없는지?
내가 누구에게 돈을 빌릴 때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갚겠다고 하면서 거짓말로 빌린 것은 없는지?
이런 것이 하나님 앞에서 나 스스로 바른 관계가 정립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의적으로 처음부터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이웃에게 접근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것은 웰빙을 깨는 일이기 때
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참 웰빙을 이끌어가는 선도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관계 회복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져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웰빙입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