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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로암 샘에 담긴 주님의 사랑 (요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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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우형 목사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이 길 가시는 중에 한 소경을 만나셔서 그를 불러 진흙을 침으로 이겨 그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 샘물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실로암 샘물에 가서 눈을 씻고 눈을 뜨는 기적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소경을 고치신 이유가 특별합니다.
제자들이 소경을 보고 예수님께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된 것은 부모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둘 다 아니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경이 소경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 즉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이 교훈을 주신 주님의 깊은 뜻과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큰 어려움을 당하며 살고 있는데 그것들 중에는 우리의 죄 때문에 오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오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오는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감당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본문의 소경처럼 살 때에 우리의 고난은 축복으로 바꾸어 질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이 실로암 샘가의 기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섭리와 소경의 행동을 본받으셔서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고난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복된 것으로 바꾸어지는 때는 어떤 때입니까?

1. 주님의 손길에 맡겨지는 자가 될 때 고난이 영광으로 바뀝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 9:6)

예수님은 소경을 보자 그 눈에 침으로 진흙을 이겨 바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39개의 금지조항이 있었는데 그 중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볼 때에 안식일에 반죽하지 말라는 조항과 병자를 고치지 말라는 조항을 범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일부러 행하신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모습과 본문의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시는 모습이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감긴 눈이 떠지는 일은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요 새 영혼의 첫 발걸음이므로 아담의 창조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에서 소경을 만나서 그 눈에 진흙을 이겨서 바르셨습니다.
소경에게 ‘네 눈을 뜨게 해주마, 혹은 내가 바로 예수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거나 왜 눈에 진흙을 바르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소경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듣는 일과 손으로 만지는 촉감에 대하여 아주 예민합니다. 또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마음도 대단히 예민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난데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를 때에 당연히 거부하는 반응이 있거나 왜 그러느냐고 묻는 반응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소경은 아무런 반응이 없이 자신의 얼굴과 눈을 예수님께 맡기는 모습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에게 자신을 맡긴 소경은 나면서부터 보지 못한 고난을 눈을 뜨고 보는 놀라운 기적의 축복으로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성도가 되면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축복으로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본문의 소경처럼 여러분의 고난과 문제를 우리 예수님의 손길에 맡기시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들의 거처를 방문했습니다. 마침 기근이 들어서 양식이 없어 생도들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스승이 오셨으니 이들은 어린아이들처럼 나와서 엘리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솥을 걸고 물을 가득 붓고 국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안에 무언가 들어가야 국이 될 것 아닙니까? 마침 한 제자가 들에 나아갔다가 야등 덩굴에 달린 열매를 따 가지고 돌아와 그것을 국에 넣고 끓였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독이 든 못 먹는 열매였습니다. 국이 다 끓여진 후에 제자들이 맛을 보고 다 놀랐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국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엘리사는 그 소리를 듣고 가루를 한 움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국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솥 안에 독은 사라지고 맛있는 국이 되어 배불리 먹었습니다.
선지자 생도들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어른들입니다.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성인이요 가장입니다. 그런데 끓인 국이 독이 들었다면 당연히 쏟아버리고 다시 끓이는 것이 어른이라면 할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결정하지 않고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즉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망의 독이 맛있는 양식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즉 소경 된 사람이 주님의 손길에 자신의 얼굴과 눈을 맡기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듯이, 하나님께 맡기는 생도들의 이 행동이 바로 사망의 독을 생명의 양식으로 바꾸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
어떤 삶의 가시를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어떤 고통과 고난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이제 우리 주님께 자신의 얼굴과 눈을 맡긴 소경의 행동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 모든 고난과 질고와 역경을 맡기시고 묵묵히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가시와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것으로 바꾸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로부터 출발하여 예수께로 갈 때 고난이 영광으로 바뀝니다.

소경의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른 예수님은 실로암 샘물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이 샘은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밖 기혼이라는 샘에서 530 미터의 지하 암반을 뚫고 터널을 만들어 그 길로 물이 공급되는 샘입니다. 그리고 그 샘의 이름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인 실로암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8장 6절을 보면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사 8:6)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수인 실로아 샘을 포기하고 침공하는 앗수르를 기뻐하고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배척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바로 그 샘의 이름을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추가로 소개하며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이신 예수를 배척하고 죽이려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본문을 통하여 지적하고있습니다.

실로암 샘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이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소경은 예수님께로부터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고 출발하여 보내심을 받은 샘 실로암 물을 향하여 갔으니까 곧 예수님께로 간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시작도 예수요 끝도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처음과 나중인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안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삶의 모습이 바로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지는 축복의 두 번째 이유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이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로 가는 삶을 살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로부터 출발하여 예수께로 가는 주안에 사는 삶을 사셔서 삶의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종용씨는 할머니가 예산군 덕산면의 감리교회의 창립멤버이고 권사님이신 관계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청년 때는 연합회 회장도 하고 성가대원 그리고 지휘자로 봉사했습니다. 가수가 되어서 ‘너’ 라는 곡을 발표해서 인기를 얻고 물질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만해서 그만 1975년도에 대마초를 피우다 검거되어 다른 가수들과 같이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약사범이라고 하면 손가락질을 받는데 그때는 온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죄인의 자리여서 면회도 잘 안 시켜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허락이 되어도 단 3분 면회밖에는 안되었다고 합니다. 면회 오는 가족들은 새벽5 시에 와서 면회를 신청하면 6시간을 덜덜 떨며 기다려 11시에 겨우 면회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통과 부끄러움과 회한으로 가득 찬 수감생활을 하던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이종용씨를 면회를 오셨답니다. 3분의 짧은 시간이고 구멍 뚫린 유리창으로 고함을 쳐야 겨우 의사가 통하는 환경에서 목사님은 몇 마디 위로하시고 기도를 해주셨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며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주고 가신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 회개하며 수형 생활을 잘 감당하고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4년간의 활동금지 기간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고 찬양가수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전하다가 락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의 주연으로 발탁되어 예수님 역을 115회나 공연하는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마초가수로 지탄받는 고난이 예수께로 돌아오는 축복의 시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로 달려가는 삶이 되면 비록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주님이 바꾸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나의 삶이 어디에 있는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흙을 이겨 발라주시는 예수님의 손길로부터 출발하여 보내심을 받은 샘물, 곧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가는 본문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사셔서 고난과 고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내시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말씀에 순종할 때 고난이 영광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진흙을 이겨 바르고 실로암 샘물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소경이 어디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실로암 샘물은 거리가 아주 멉니다. 요즘처럼 차를 타고 갈 수 없으니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골짜기를 내려가야 실로암 샘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경은 본문에 보면 아무런 질문이나 의견이나 자기 주장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더듬어 길을 찾고 걸어가 뒤뚱거리며 골짜기를 내려가 실로암 샘물을 만나 “이 샘물에 내 눈에 바른 진흙을 씻으면 주님 명령대로 눈이 떠질 줄로 믿습니다” 하고 순종할 때에 그의 나면서부터 소경인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적으로 변화된 줄로 믿습니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9:7)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지팡이를 잡고 먼길을 더듬어가고 가파른 골짜기를 힘들게 내려가며 샘물을 찾아 자신의 눈을 씻는 본문의 소경의 순종을 본받고 그렇게 행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순종한 이들은 고난을 고난으로 마치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순종으로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고 순종으로 환난을 기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지막 식량을 먼저 엘리야에게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 사르밧 과부는 3년 6개월의 기근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집의 하인들은 포도주와 관계없는 물을 길어오라는 주님의 명령과 그 물을 포도주 담는 그릇에 담아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는 명령에 순종할 때에 그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연출하였습니다.
바위를 지팡이로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지팡이가 부러질 것 걱정하지 않고 손이 아플 것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지팡이로 반석을 친 모세의 순종이 사막의 바위에서 샘이 솟는 기적이 나타나게 한 줄로 믿습니다.

강효실씨는 옛날 유명한 배우인데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자식도 다 뺏기고 자포자기로 술독에 빠져 살던 그녀는 몸도 병들고 완전 거지가 되어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미디언 김희숙 집사의 전도를 받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나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구원의 기쁨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회복되었으나 아직도 물질 문제와 자식 문제는 변함 없이 그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 강효실씨는 연예인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초창기여서 교회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중에 교회가 조금씩 부흥되어서 대지를 마련하고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전을 건축할 형편은 안되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과 그곳을 지나가다가 목사님이 이곳에서 매일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효실 씨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자원했습니다. 그때 자신의 형편은 매일 그곳에 와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일은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에 나밖에는 순종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어렵게 시간을 내어 매일 성전 대지에 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한지 40일이 될 때에 먼저 강효실씨 자신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기적처럼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우선 엉뚱한 사람을 통하여 빚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10여 년간 흩어졌던 자식들을 모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혼한 최무룡씨와 대화가 재개되고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대화가 되고 보니 이미 미국에서 예수 믿은 지가 3년이 되었다는 놀라운 축복의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불평하지 맙시다. 이유 대지 말고 순종합시다. 내 주장, 내 생각, 내 마음을 내 세우지 말고 그냥 사르밧 과부처럼, 본문의 소경처럼 순종합시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것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어떤 문제가 여러분을 한숨짓게 하고 낙심하게 합니까? 이제 깨닫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축복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진흙을 바르는 주님의 손길에 얼굴과 눈을 맡긴 소경처럼 맡기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으로 끝나는 주 안의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셔서 고난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시는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년 4월 24일 오전예배 설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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