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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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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나님께서 또한 자기의 백성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을 보내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2:18,23,28).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하나님께서 세상과 자기 백성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성령님을 보내주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이렇게 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성이 엄마 아빠가 지성이를 사랑해서 많은 것을 해 주었습니다. 영양분이 많은 음식도 먹여 주었고, 좋은 약도 먹여 주었고, 좋은 장난감도 사 주었고, 포근한 이불도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이 엄마 아빠가 지성에게 준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은 아빠의 간을 떼어주고 엄마의 눈물을 쏟아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다 만들어주셨지만,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피와 살을 떼어서 주셨다는 말씀이고,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신과 혼의 일부를 떼어서 주셨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아들과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와 목적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성이 아빠와 엄마가 간을 떼어주고 눈물을 쏟아준 것은 지성이를 살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에스겔 37장은 죄와 허물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마른 뼈들의 모습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뼈들이 살아난 것은 말씀과 생기 즉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2-10).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을 살리신 두 가지 방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씀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기였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생기는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신 목적은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들과 성령은 우리들을 살리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1,4,5).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갈수 없느니라”(요3:5).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6). 제가 구약과 신약과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의 공통적인 사역 일곱 가지에 대해서 강연을 한 일이 있는데, 그 일곱 가지 사역 중의 하나는 죽었던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령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마른 뼈들 위에 말씀과 성령이 임했을 때 살아 일어서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 방에서 기도하던 120명 위에 성령이 임했을 때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말은 살았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입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첫째 이유와 목적은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둘째는 우리들을 만남과 교제의 존재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성이 아빠와 엄마가 간을 떼어주고 눈물을 쏟아 주면서 지성이를 살린 목적은 지성이가 엄마 아빠와 말을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혜성이와 말을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였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말을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커 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제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은 만남과 교제의 존재입니다. 사람은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생명을 앗아가고 죄는 만남과 교제도 앗아 갑니다. 그래서 사람이 불행해집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고 교제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중요한 일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만남과 교제의 삶을 살게 하시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고 이웃과 교제하게 됩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고 이웃과 교제하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을 때 저희가 모두 방언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여기 방언은 하나님과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바지’ 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과 말하게 하고 이웃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웃들과 말을 하게 합니다. 말은 만남과 교제의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구약과 신약과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의 공통적인 사역 일곱 가지에 대해서 강연을 한 일이 있는데, 그 일곱 가지 사역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는 교제와 화목을 이루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둘째 이유와 목적은 말도 인사도 할 줄 몰랐던 우리들을 말도 하고 교제도 하는 만남과 교제의 존재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셋째는 우리들을 주의 일을 하는 봉사자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성이 아빠와 엄마가 간을 떼어주고 눈물을 쏟아 주면서 지성이를 살린 목적은 지성이가 엄마 아빠와 말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뿐만 아니라 커서 좋은 일을 하는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분부했습니다(살후3:10).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봉사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며"(빌3:3) 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전도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시는데 그 모든 은사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님의 일을 하게 하는 은사들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주시나니”(고전12:4-10).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성령을 받은 자는 열심히 주의 일을 합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렇게 찬송을 부르면서 열심히 주의 일을 합니다. 특히 봉사와 전도의 일을 열심히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열심히 만나서 교제했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들은 특별히 구제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에 힘을 썼고 선교하는 일에도 힘을 썼습니다. 성령님은 무능하고 게으른 우리들로 하여금 열심히 주의 일을 하게 하고 그래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우리 조선의 초대교회 신앙의 선배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자기들의 몸은 돌보지 않고 자기들의 몸이 부서지고 닳도록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이 그랬고 최권능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이기풍 목사님과 최권능 목사님의 사역의 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기풍 목사의 성공적인 제주도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가 있었던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기도의 여인이었고 사랑과 봉사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 떼들로 낮에는 나병 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필자의 책, pp. 77-80). “최봉석 목사는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이었습니다. 1914년부터 노회의 파송을 받아 만주 전도에 전념했습니다. 넓은 만주 벌판을 10리 20리씩 걸어 다니며 조선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12년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 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몽둥이와 돌맹이로 맞아서 쓸어지기도 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쓸어져 있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서 ‘예수님은 누구신가’ 찬송을 부르면서 걸어가곤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때로는 올챙이를 잡아 먹기도 했고, 어떤 때는 소 똥에 들어 있는 콩알을 꺼내어 먹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셋째 이유와 목적은 무능하고 게으른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어주셨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둘째는 우리들을 만남과 교제의 사람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셋째는 우리들을 봉사하며 사는 주님의 일꾼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주시면서 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이 충만하고, 교제가 충만하고, 봉사가 충만한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곱 집사님들이 성령이 충만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모두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이 모두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할렐루야” 찬양을 하겠습니다. “성령충만 할렐루야” “성령충만 생명충만” “성령충만 교제충만” “성령충만 봉사충만”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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