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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행 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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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 : 김성덕 목사

한국 초대교회 순교사에 보면 유 계준 장로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유계준 장로님은 함경도 미림 이란 동네에서 술도가를 하다가
예수님을 믿게되어 술도가를 처분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후 평양으로 나아와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던 평양 산졍현 교회
장로로 섬기다가 6.25 이후 가족들을 남으로 보내고
홀로 교회를 지키다가 체포되어 순교를 당했습니다.
당시 유씨 가문 어른들이 계준 예수 믿고 안 망하는가 보자고 했는데
지금 50수년이 지난 지금 아직 우리나라 가문에 8남매 박사 나온 집안은
유장로님 가문 밖에 없다고 합니다.
6명은 의학박사고 2명은 대학총장이 되었습니다.
유계준 장로의 가정은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을 지킨
‘순교적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유계준 장로는 부인 윤덕준 권사와 6남2녀를 신앙으로 양육하면서
자녀들이 민족을 위해 기여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현재 장남과 2남, 4남은 별세했습니다.
장남 유기원 장로는 생전에 국립의료원장을 역임했고
2남 유기형 장로는 부산의대 교수를 지냈으며
3남 유기선(90·의사) 장로는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고
4남 유기천 장로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사재 30억원을 모교에 장학기금으로 기부해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5남 유기진(87·의사) 장로는
월남 전까지 장기려 박사와 함께 평양기독병원에서 근무했던
당시 몇 안되던 외과의사였다고 합니다.
6남 유기묵 장로 역시 미국 샌디에고에서 개업 의사입니다.
또 장녀 유기옥 권사(84)는 서울 누가의료원 원장으로 있으며
차녀는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유기숙(82·약사) 권사로 봉사합니다.
예수 믿고 안 망하는가 한 보자고 했던
유계준 장로님이 순교를 하자 그러면 그렇지 예수 믿고 망했다고 했는데
망한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유씨 가문에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사실은
당시 재판과정을 기록했던 서기가 훗날 5남 유기진 장로를 찾아와
[ 당시 장로님의 용기와 신앙의 모습이 놀라웠다 ] 며
그가 믿는 예수를 믿고 싶어 월남해 크리스천이 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사에나 신앙의 가문에 순교의 피가 흐를 때
결코 망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흥왕함이 있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 사건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니 <2>
하루에 3000명 5000명 회개하는 역사 속에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 급부적으로
예루살렘 공회와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의 모함과 핍박 가운데
스데반이 돌무더기 속에 죽게되는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됩니다.
이런 스데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3가지를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야기되는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귀한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일어납니까?

1) 사울이라는 청년을 바울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사울이
1절에 [ 사울이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더라 ] 했으며
3절에 [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
사울은 당시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니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박수를 쳤습니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수쟁이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잡아내어 옥에 가두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행9:1절에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예루살렘 뿐만이 아니라
예수쟁이들을 잡아 가두려고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 만나 변화된 것입니다.
이런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데는
마지막 죽음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과 같은 스데반의 순교의 모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든 것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장면을 행22:20절 26:10절에 간증을 하면서
자신이 회심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을 상기시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또 다른 위대한 전도자를 탄생시키는
그런 역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2) 스데반의 죽음은 핍박과 흩어짐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핍박의 기폭제가 됩니다.
1절 [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순교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더 좋은 이야기가 나와야 할건데
더 나쁜 쪽으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역설적인 현실을 봅니다.
주의 일 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더니 하나님께서 천배 만배로 갚아 주더라
그래야만 말씀을 통해 은혜도 받고 전도도 잘 되어갈텐데 <3>
되려 핍박 받게되고 고난을 받게 되니
신앙생활 바로 하려고 하니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사람은 핍박과 환난을 통해 성장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핍박과 환난을 통해 확장해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왜? 견딜 수 없는 핍박과 환난이 일어나
교인들이 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나?
왜? 흩어지게 되었을까요?
혹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어떤 문제를 당할 때
우리는 무엇부터 생각을 하게됩니까?
현대의 문제는 How의 문제가 아니라 Why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신앙적으로 풀어나가려면
. '왜'가 문제지 '어떻게'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한 문제에서 그 동안에 늘 how만 생각했왔습니다. 'Know-how'만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까, 어떻게 하면 피해 갈까, 어떻게 하면 면할까……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이 일을 당해야 하느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왜'에 대해서 깊이 물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꾸 과거만 들추고 있습니다.
계속 역사적인 맥락이니. 뭐 누구 때문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결과만 놓고 비판만 하려고 하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흩어지게 되었는가?
아니 왜?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는가?

지금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이라고 하는 도시가 있지요.
거기에 유명한 화가가 있었는데 이 화가는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려서
특별히 시민들이 어떤 그림이 좋아하는지 그 성향을 잘 알아 가지고
비싼 그림을 많이 그려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에게는 특별히 유별나게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어요.
딱 하나 유감된 것은 자식이 있었으면 더 좋겠는데 자식은 없었답니다.
넓은 정원과 좋은 저택에서 아주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너무 상심돼 가지고 그만 정신없이 여기에 빠져 있는 동안에
재산 다 날려 버리고 말았어요. 아주 거지가 되었어요.
이렇게 어려워졌을 때 비로소 사랑하는 친구가 <4>
[ 나와 같이 교회 나가자 ] 고 전에 같으면은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
[ 너나 잘 믿어 ] 그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따라 나갔고, 말씀을 듣게 되고,
그럴 때 성경을 깊이 읽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제는 방향을 돌려서 성화를 그렸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예수> 라는 그림과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 이란 제목의 그림은 영감이 있는 그림입니다.
여러분, 왜 그가 어려운 일을 겪어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스데반의 죽음으로 영광을 누린 것이 아니라
핍박과 환난의 바람이 불어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바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의 죽음의 결과
3. 세 번째는 바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흩어짐에는 반드시
열매가 되어 돌아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호1: 의 이스르엘의 하나님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할 때 - 이스르엘의 하나님이 저들을 흩어신다
그러나 흩어신 하나님이 반드시 거두신다.
이스르엘 골짜기 - 범람할 때 씨를 뿌림 - 반드시 거두시는 하나님

중요한 것은 흩어져도 복음을 가지고 흩어지기 바랍니다.
4절 [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
교회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가슴에 복음이 없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애요.
왜냐하면 그 가슴에 복음이 있는 성도는 어디를 가더라도 침묵할 수 없어요.
복음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아서 불만 붙으면 터지는 거예요.
그 가슴에 복음이 있는 성도가
어찌 기도 안 할 수 있으며 어찌 찬양 안 할 수 있으며
어찌 전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외국에 나가보면 각 도시들마다 이민 교회 또는 교포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바로 디아스포라들 즉 흩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흩어져도 그 가슴에 복음이 있으니
어디를 가더라도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하더라고요.

한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죽는다는 것은 다 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은 다릅니다.
어떻게 사느냐? 가 어떻게 죽느냐? 를 결정합니다.
짧게 살든 길게 살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죽는다면 <5>
그 죽음이 스데반의 죽음같이 의미있는 죽음이 되고
한 알의 밀알 같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스데반의 죽음으로 핍박이 일어나고
핍박이 일어나니 흩어지게 되었고
흩어진 자들에 의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는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일까요?

사마리아 복음전파를 위해 하나님은 누구를 들어 사용합니까?(5-7절)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으로부터 시작한 교회가
성령강림의 역사로 삼천명이 되고 오 천 명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집과 밭을 팔아 바치며 서로 물건을 통용하는 지상 유토피아가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마 [ 여기가 좋사오니 ] 했을거예요.
그러나 여기가 우리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메시지입니다.
예루살렘이 시작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다른데 있습니다.
행1:8절 말씀같이 예루살렘만 복 받을 것이 아니라 유대도 사마리아도
온 세상이 다 복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왜? 흩어겠습니까? 그것도 사마리아로,
안가니깐 흩으신 거예요.
유대인들에게는 사마리아는
요나 선지자가 가기 싫어했던 니느웨와 같은 곳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는 오랜 부락의 앙금이 있었습니다.
그 틈새는 세월이 흘러 갈수록 더 커 가기만 했습니다.
박해로 인해서 흩어질 때 만 해도
사마리아를 복음전파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급히 흩어지다 보니깐 사마리아까지도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는데는 빌립을 들어 사용합니다.
5절 [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
여기에 빌립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교회 첫 일곱 일군 중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을 순교의 제물로 사용하셨고 <6>
빌립을 전도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예루살렘을 지나 사마리아로 나아가는데
스데반을 죽게 하셨고 빌립을 일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빌립을 통해 복음을 받은 사마리아 성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파하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행하는 표적도 보았고 말씀을 좇았습니다.
그럴 때 7절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마리아에 임한 표적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쫓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나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합니다.

사마리아에 나타난 복음의 역사를 자세히 보세요 어떻게 나타나는가?
복음을 전하니 그 말하는 것을 좇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귀신이 떠나가고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내일의 가족 여러분 !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먼저 감동 감화가 생겨서 그 말씀을 좇게 됩니다.
그러나 명강의를 들어도 그 말을 좇게 됩니다.
그러나 명강의와 복음을 다릅니다.
정말 그것이 명강의인지 복음인지 여부는 한 가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귀신이 나갑니다.
7절 보세요.
[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붙었다는 말은 억눌림 받았다는 말인데
이 말에는 붙었다 떨어졌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귀신이
마음에 집을 짖고 들어앉아 주인 노릇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거예요,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가만히 숨어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붙는거예요.
그래서 어두움의 세력이 내 몸에 붙어니깐 <7>
기도도 안되고 찬송도 안나오고
설교도 안들리고 졸음만 오고
누가 은혜 받았다 하면 곱게 안 보이고 밉게 보이는 거예요.
여기에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듯이
어둡고 더러운 생각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도 모르게 어두웠던 방이 전등을 켜니 환해지듯이
마음이 밝아지며 눈이 뜨여지고, 가정에 기쁨이 넘치는 거예요.
복음이 들어오면 이 더러운 영이 떠나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선포되어지면 첫 번째 반응은 반드시
숨어 있는 악령이 떠납니다.
어두운 세력이 떠납니다.
그러니 기쁨이 있고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 고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건강을 회복하게 됩니다.
복음과 악령이 떠나가고 병 고치는 역사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시 우리 내일교회가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악령이 떠나가고 어두움과 더러움의 세력이 떠나가고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교회 시작했다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마귀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고치는 역사가 복음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보다 복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믿게되는
심령의 변화의 역사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 전도하자
그 동네에서 마술을 잘 하여 소위 뜬 인물이 된 시몬이
예수를 믿게되는 이야기가 9-13절까지 나옵니다.
마술사 시몬의 회심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술사 시몬 - 아마 영계와 접촉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어
스스로 큰 자라 여기며 서민들로부터 고위층까지
그 사람의 말에 청종하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빌립을 만나 복음을 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니 자기도 예수 믿기로 하고
세례를 받고 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다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이 예수 믿고 세례 받았다는 것 무얼 말합니까? <8>
사탄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 굴복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이 빌립의 말을 듣고
[ 너는 진짜이고 나는 가짜이구나 ] 라고 손들은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금방 안 것입니다.
빛 앞에서 어두움이 물러간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라 다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마리아는 어디이겠습니까? 바로 북한 땅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극한 이데올로기 속에
대립 양상을 띄어왔던 북한이 아닙니까?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기가 가장 껄끄러웠던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마리아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그리고 NGO, 선교단체가
옥수수 밀가루 비료 약품 염소 소를 갖다 주지만
그런다고 김 정일이가 마음이 녹아지고 실체가 드러나는 것 아니지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김 정일이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도 예수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되어야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제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도 성령 사건이 일어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일 놀란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14절 [ 예루살렘이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
베드로와 사도들은 복음은
당연히 예루살렘 중심 유대인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이방인이라고 여겼던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도무지 자신들의 신앙사고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사건이 일어나면
신앙의 고정관념의 틀이 깨어진다는 것 아셔야 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신앙의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리지 못하고
경직화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인들
성령 받아 신앙의 고정관념의 틀이 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만이 성령의 역사가 삶 가운데 유유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고정관념의 틀 얼마나 지독한지 보세요.
교회가 특새니 철기니 오전이니 해도
예수는 그렇게 별 나게 믿는게 아니냐,
나같이 고상하게 믿어야지 하고 자기가 기준이 되어 있는 교인
성령 받아 고정관념의 틀이 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사도들은 즉시 순종을 했습니다. <9>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는 것은
사마리아 복음전파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최초로 한 일은
15절에 [ 그들이 내려가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
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성령 받기를 먼저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예수 믿겠다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교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급선무가 성령 받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18절 이하에 마술사 시몬이 또 나옵니다.
시몬이 사도들이 안수하매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돈으로 내게도 이 권능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합니다.
시몬이 돈주고 성령을 사려고 했던 일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성령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합니다.
즉 성령 받지 못하면 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해도 그 꼭데기에는 물질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는 시몬의 이런 신앙자세를
20절 [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
예수를 믿어도 돈 돈 하다 보면 돌아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돈 돈 하는 시몬의 잘못된 신앙을
21절에 [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도 될 것이 없느니라 ]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복이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 - 바른 신앙이라면
바른 신앙이 되지 못하면 분깃이 없습니다.
분깃도 될 것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23절에
[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
예수를 믿어도 돈에 매이고 불의에 매이는 교인이 되지 마세요.
별 수 없어요. 성령받지 못하면 우리도 매이는 자가 됩니다.
돈에 매이는 자 Simony가 라고 합니다.
Simony가 뭡니까? 시몬이 돈주고 성령을 사려고 했던 것을 말하는데<10> 성직의 매매라는 말로 쓰입니다.
신앙생활해도 성령 받지 못하면
목사가 되고 교회 지도자가 되어도 성령 받지 못하면
Simony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몬은 참 순진합니다.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는
24절에 [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 라고 합니다.
오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목사는 세상 물정을 모르니 그렇지
머니 머니 해도 모니가 최고야 하지 않습니까?
돈 보다도 성령의 은혜에 눈이 뜨여져서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충만함을 받아
주님이 사용하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너머 사마리아도 나아가는 역사 가운데
스데반의 순교의 순교가 밑거름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는 계기가 되었고
핍박이 일어나고 흩어지고 하는 상황 가운데서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파되어 짐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복음화를 위하여 빌립을 들어 쓰십니다.
성령의 사람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가니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낫고 온 성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술사 시몬이 예수 믿게 되고
베드로 요한의 안수 기도로 성령이 임하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복음이 전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남을 보고
우리 내일 교회도 성령의 역사로
개인적으로나 교회 적으로나 고정관념의 틀이 깨어지고
복음전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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