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열정 회복하기(2) (벧전 2:9-10)

  • 잡초 잡초
  • 320
  • 0

첨부 1


- 설교 : 정근두 목사

상쾌한 봄바람, 따뜻한 햇살, 화사한 꽃들, 생기 가득해야 할 여러분의 봄은 어떠합니까? 활짝 핀 벚꽃과 함께 여러분의 지난 한 주간 삶은 회복세를 타고 있습니까? 지난 한 주간 서로 서로 돌아보셨습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큰 격려가 되었으며 여러분은 누구를 격려했습니까?

우린 서로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의미가 될 때 우리의 삶은 갑자기 풍성해집니다. 삶의 열정이 다시 타오르게 됩니다.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여러분을 지원하는 소그룹이 꼭 필요합니다.

우선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을 확인합시다. 무엇이 여러분의 삶의 열정을 빼앗아 갔습니까? 불분명한 삶의 목적입니까? 아니면 바쁘기만 하고 균형을 잃은 일정이 여러분을 곤하게 만듭니까? 혹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갈등이나 진실한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외로움이 여러분의 열정을 식게 만듭니까?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 가운데서 이미 원인을 발견하고 회복세를 타고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마냥 무겁고 나른해지는 춘곤증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분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살피는 몇 가지 영적인 원인 가운데서 여러분의 삶의 열정을 고갈시키는 원인들을 찾아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활기 넘치고 풍성한 삶을 회복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의 삶에 열정을 빼앗는 첫 번째 영적인 요인은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삶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몸에 힘이 빠지고 피곤할 때 제일먼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병원에 가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한번 종합검진을 받아보시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활기를 잃었을 때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어떤 죄악을 가지고 있는지를 감추어 놓고 있는지를 살펴보셔야만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삶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보다 훨씬 전에 한 선지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바른길이 아니라면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애3:40, 현대어성경) 살면서 한 번씩은 달리던 길에서 벗어나서 충분히 멈추어 서서 조용히 자신을 향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노정을 달리고 있는가? 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은 언제나 유익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재충전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자리한 죄를 처리하지 않고 숨겨두면 여러분의 영적인 열정이 죽을 것입니다. 죄는 간단히 처리하거나 합리화 시키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열정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말짱한 중고차를 사서 타다가 고생한 적이 없습니까? 어쩌면 우리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사실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길바닥에 퍼져 버리도록 대책 없이 몰아가지 말고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38:4)라고 신앙의 시인처럼 하나님께 고백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죄책감과 열정을 함께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둘은 서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여기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죄를 고백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부터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우리 자신의 삶을 살피고 잘못을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인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빠져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고전11:31,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정규적으로 살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주일날 한차례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는 기회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는 가장 동기가 나쁜 사람은 왔다가 가려고 생각하고 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나왔을 때는 내 자신을 한번 살펴보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왔던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보고,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고전13:5, 표준새번역) 믿는 자답게 사는지를 살피고 자신을 정규적으로 점검하는 일은 영적인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2. 우리의 삶에 열정을 빼앗는 두 번째 영적인 요인은 영양실조 때문입니다. 종합검진을 해 보았는데 특별한 병이 없어요. 특별한 병은 없는데 힘이 없어요. 그러면은 밥을 제대로 먹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뭐 심오한 일부터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밥을 제때에 잘 먹고 있는가? 그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 먹으면 특별한 병이 없어도 힘이 빠집니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와 있으면 지금 12시쯤 되면 힘이 빠지잖아요. 6시30분에 아침밥을 먹고 나와서 세 번째 설교를 하려면 힘이 빠지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한번 먹고 일주일 버티려고 하는 슈퍼스타가 되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은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 세끼 먹어야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일주일에 한번만 듣고 버티어 가 보려고 한번 듣고 사는지 못사는지 한번 보자 그렇게 여러분은 살피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주 하나님 말씀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여러분의 영적인 원기를 빼앗는 일들을 살다가 보면 만나기 때문입니다. 문제도 터지고 실망도 하기 마련입니다. 좌절과 실패도 겪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영적 양식을 먹으려고 노력을 해야 영적인 힘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봄만 오면 입맛이 떨어지는 사람은 없습니까? 영적인 입맛을 회복하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취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아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십시오. 눈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귀로 들어도 좋습니다. 손으로 써 보는 것도 좋습니다. 머리로 암송해도 좋습니다. 매일 묵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기독교 TV가 울산에 새로 개국을 했으니까 그 방송 들으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CBS극동방송 을 조금만 마음먹으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울산에 살지만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모든 설교자들의 설교를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불멸의 이순신이나 해신 장보고 보는 열심만 가지면 여러분은 절대 영적인 허기를 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플러그를 꽂아서 영적인 재충전을 시도하십시오, 그러면 영혼의 생기가 소생할 것입니다. 마음의 기쁨이 솟아 날 것입니다. 입술에는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죄지은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요즘은 힘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열심히 먹는지를 알아보아야합니다. 그래요 주일날 한번 와서 설교를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일주일 동안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아직도 살아 남아있는 것을 보니까 역시 하나님 말씀이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묻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 대신에 들어도 됩니까? 테이프나 MP3가지고 들어도 상관이 없습니까? 읽는 것처럼 장 수를 쳐줄렵니까? 이런 이야기입니다. 됩니다. 될 뿐만 아니라 본래 그랬어요. 성도들이 교회가 처음 시작되는 1500년 동안은 성도들이 손앞에 펼쳐놓을 성격이 없었습니다. 쿠텐베르크가 성경을 인쇄하기 시작한 것은 300~400년 그 이후에 읽으면서 영적인 양식을 얻었지 그전에는 다 듣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구역이 보고할 때 들은 것도 다 쳐 줄 테니까 열심히 들으십시오. 실제로 저는 1년 반 동안 임상실험을 충분히 해 보았습니다. 내가 안해보고 여러분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테이프를 가지고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목사가 성경을 펴놓고 안 읽고 듣기만 해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가지고 있는 테이프는 빠른 속도테이프입니다. 빨리 읽으니까 아~ 이것이 경망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서 되나? 이런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어요.

그런데 한 달 두 달 들으니까 영적인 기운이 회복됩니다. 열심히 듣다 보니까 어느 날 내가 TV를 보는데 뉴스를 그렇게 열심히 듣더라고요. 뉴스는 대강 들어도 되는데. 워낙 지나가는 성경 말씀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지금은 빠르다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듭니다. 다 들어옵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까 이제는 매일 QT 하고픈 욕망이 새로워 졌습니다.

영적인 회복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눈치 있는 사람은 눈치를 챘을 건데 우리 목사님들은 목에다가 평일에 보면 MP3 를 차고 다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듣고 있습니다. 듣는 것 장수를 쳐 줄 거니까 열심히 들으십시오.

“목사님이라서 그렇지 뭐 우리는” 그러지 마세요. 주보를 보십시오. 주보 10면을 보니까 K집사님이라는 글이 나와 있었지요? 지난 연말부터 산후통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방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일날 예배도 참석하지 못하고 그런데도 만나보니까 신앙인의 향기를 풍기고 있어 “도대체 어떻게 이겨냈지요? 라고 물어보니까 매일 성경을 읽고 가끔 아이와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날마다 극동 방송을 통해서 설교를 듣고 주일설교 조차도 함께하지 못하고 방송을 통해서 예배에 동참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매주일 나와서 앉아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활기찬 향기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거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롬12:11, 표준새번역) 영적인 일은, 그리고 유익한 일은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냥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쁜 짓은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러나 좋은 일은 열심을 내야만 가능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말씀을 대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의 한 부분이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의 열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삶에 열정을 빼앗는 세 번째 영적인 요인은 들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도 없고 먹는 것도 잘 먹는데 운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비만이 됩니다. 건강해 지지 않습니다. 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열심히 삼시세끼 챙겨먹으면 그다음 먹고 난 후에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실천해야합니다. 들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영적인 비만에 빠져서 점점 몸무게만 늘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후 3시에 문수구장 갑시다! 그래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도대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듣기만 해서 영적인 비만증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제가 요즘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기 관리라든지 자기 경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멋진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강의를 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울산교회 부임하기 4~5년 전에 여기에 와서 박두욱 목사님을 만나고 나서 기가 죽었습니다. 아침 7시가 되면 나오셔서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시는데 한 사흘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그분은 내가 강의 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더라고요. 나는 강의만 하고 멋진 강의만 했지만 그분은 그 강의한대로 사시더라고요. 한 수 위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관리, 자기 경영, 그것은 이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면 실천해야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약속의 유익을 적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십시오. (벧후 1:5, NLT)

좋은 교회, 좋은 신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여기 하나님 약속을 붙드십시오.“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약속의 유익을 적용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십시오.” 들은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란 말씀입니다.

주님은 당대의 바리새인을 향해서 도전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요7:17) 실천해 보아야 여러분이 듣는 말씀이 능력이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 여러분을 새롭게 하는 말씀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물론 초 신자 때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는 것도 그것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지요. 지금 꽃도 활짝 피었는데 친구들은 놀러가자고 그러는데 경주에 가자고 그러는데 울산에 남아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거든요. 쉽지가 않습니다. 봄가을이 되면 친척가운데 결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주일날도 거기에 가 보아야하고 그러다 보면 주일날 오는 것 매일 참석하는 것도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 나와서 앉아 있어도 춘곤증 때문에 조금만 있으면 그냥 “꾸벅 꾸벅” 하는 사람도 있어요. 처음 오는 사람이 그러면 이해가 되지만 10년 20년 교회를 다녔으면서 그러면 절대 안됩니다. 토요일 밤 많이 주무십시오. 주일날 와서 졸고 있으면 처음 오는 사람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저래도 되는구나! 자세만 크게 gm트리지 않으면 되는구나” 이렇게 배워서는 안 됩니다. 잠은 퍼붓는데 졸지 않고 들으려고 하는 것도 규칙적으로 이 자리에 오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졸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도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비해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들을 말씀을 집에 가서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삶의 목표를 수정하고 하루 일정을 바로 잡으며 얽힌 관계를 풀고 지원그룹에 속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얽힌 관계를 풀고 내가 속할 공동체에 소속하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들은 진리나 지식이 여러분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것은 여러분의 실천하는 그 행동이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열정이 사라집니다.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까 여기에 뭐 묻어있네 싶은데 보았으면 얼굴을 씻던지 해야 하는데 돌아서는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더러 있다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러고 그냥 끝나버리면 거울에 묻은 자기 허물을 보고 그냥 손질을 하지 않는 사람하고 꼭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들었던 성경말씀을 실천에 옮기면 그 하는 일 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북주신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하지 않아도 처음오늘 나왔다고 해도 하나님이 여러분이 하는 일에 복을 주겠다고 하는데 “나는 안 받겠소” 그런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좋아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복주시겠다고 하였냐면? 들은 말씀에 실천하면 아주 작은 일에도 일단 실천하면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그저 듣기만 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약1:22)

축복은 듣는데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은 축복의 지름길 입니다. “또 듣기만 하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약1:22)

우리처럼 교회에 이렇게 잘 다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듣고 끝나는 잘못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기만하는 일입니다. 구역소그룹이 왜 있습니까? 구역 소그룹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일날 들은 말씀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 모이는 겁니다.

예배시간 전에 한 장로님께서 오셔서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먹고살기가 바빠서 구역장 모임을 가면 너무 잠이 와서 못나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로님께서 설교를 들었으니까 들은 말씀가지고 성도들이 구역 원들이 어떻게 나누는지 그것 같이 나누면 됩니다. 말이 그렇지 10년 20년 구역장 한 것도 아닌데 꼭 구역장 모임에 참석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베테랑들인데 하실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어냐 하면 주일날 들은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각자의 현장에서 노력한 것을 같이 나누어 간증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난주일 들은 설교가 이것은 안 좋고 저것은 어떻고 이러지 말고, 그런 이야기는 저에게 오셔서 하시고 구역에 모여서는 좋았던 것만 은혜 받았던 것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그런 것을 서로 나누면 되는 겁니다.

듣고 끝나면 절대 자라질 않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실천해야 합니다. 행동으로 옮길 때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듣기도 하고 묵상도 합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설교를 듣고 성경대학, 제자훈련을 통해서 항상 배웁니다. 안 믿는 사람이 보면 “나는 부지런하지 못해서 교회에 못나가겠다”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워낙 바쁘게 하니까 그런데도 안자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또 배우고 거듭 배우지만 자라지 않는 이유는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천하지 않고 성경을 배우기만 하는 것은 자신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만 더 가중시킵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르고 행하지 않는 사람보다 벌이 더 크다고 성경에서 말씀하셨죠?

그래서 얼마 전 우리가 살핀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죄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바른 일을 하지 않고 미루어 두는 것 그것이 죄라는 겁니다. 고쳐야 될 것을 안 고치고 민기적 거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겁니다. 지나가다 보면 여러분이 도와주면 도움의 팔을 내밀면 되는데 내밀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여러분이 비틀거리는 사람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 것만이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붙잡아서 부축만 해 주면 함께 갈수 있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겁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짓는 죄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울산교회가 제공한 모든 교육프로그램을 훈련프로그램을  다 끝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주일마다 설교를 듣고, 듣고, 또 듣습니다. 그런데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열정이 사라집니다. 생이 곤비하고 지겨워집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눅8:21)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바로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길은 진리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열정이 예수 믿는 재미가 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4. 우리의 삶에 열정을 빼앗는 네 번째 영적인 요인은 믿는 진리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온전한 자리에 우리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 가기 위해서는 진리를 따라서 말하고 진리를 따라서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믿는바 진리를 전할 때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를 더욱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믿는바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아직도 우리가 살아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전달해 주기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에 선포해야 될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만 전달할 특별한 메시지를 하나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녹아있는 증거를 사람들은 귀 기울여서 듣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설교는 사실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장경동 목사처럼 탁월하게 잘 하면 경로당에 모인 사람들도 “오늘 몇 시에 어디서 뭐하냐!” 라고 사람들이 찾지만 말이지요. 저도 좀 잘해 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를 하면 그건 듣습니다.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내게 설교하지마라 그러지만 누가 간증을 하면 그건 듣습니다.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 하나님께서 밤과 낮을 바꾸는 것처럼 여러분의 삶을 바꾸셨다면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살아있고 심장이 박동하는 한 여러분을 통해서 온 세상에 전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나누지 않으면 두 가지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됩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세상이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우리와 같은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의 삶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의 열정이 식어버립니다. 새 생명 훈련을 받으면서 전도를 해보니까 어땠어요. 전도하니까 기쁨을 다 전도할 때에 체험해 보았어요. 여러분이 아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해 줄때 그리스도인은 가장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해와 갈릴리 호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레바논 쪽에서 내려오는 온갖 강물들을 받아서 받은 물을 다시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흘러 보냅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언제나 생명이 충일합니다. 2000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통해서 내려온 물을 받아서 그냥 다른 곳으로 흘러 보내지 않는 이 사해는 죽음의 바다가 되고 거기는 생명체라고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아드리기만 하고 움켜지기만 하면 사해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받아들인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은 갈릴리 호수와 같습니다. 생명이 충만하게 됩니다.

감동을 하고 표현을 하지 않으면 침체에 빠지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고 그대로 살지 않고 배운 진리를 적용하지 않고 그 진리를 전달하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 물과 같이 썩습니다.

생기 가득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시인처럼 새로운 습성을 개발하십시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 할지어다.”(시96:2) 하나님을 노래하십시오. 그 이름을 찬양하십시오. 주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그 기쁜 진리를 날이면 날마다 널리 알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은 생명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항상 주님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삶을 날마다 새롭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역모임이나 소그룹모임이나 모여서 열기만 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즐겨 듣고 말하는 사람 자신이 기쁨에 타오르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분은 언제 누구와 나누어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행하신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최근에 언제 나누어 보셨습니까? 한번이라도 그런 일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받기만 하고 내 보내지 않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그러면 흐름이 멈추고 썩어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친구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진리를 듣게 할 좋은 기회가 이번 토요일 오후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친구들을 초대할 기회로 삼아보십시오.

이번 토요일 오후 3시 문수구장을 꼭 기억하십시오. 문수구장 호반광장에서 여러분 모두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스타의 반열에 들어선 장 경동 목사님이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는 인기 스타들도 등장합니다. 게다가 여러분의 이웃들도 기대할만한 경품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보고 같이 함께 가자고 이야기할 만한 근거가 됩니다.

여러분 이번 토요일은 5월 축제의 징검다리입니다. 강이 있으면 가운데 돌을 하나 놓으면 건너가잖아요. 여러분 이번 토요일 오후를 징검다리로 삼아야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 나가는 태신자는 5월달에 틀림없이 데리고 올 수 있습니다. 한번 우리와 같이 행동하면 그 다음 행동은 가능해 집니다. 바로 5월에 데리고 오는 것 보다는 이 봄날 자동차까지 걸려있는 그런 자리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괜찮은 방법이거든요.

여러분 우리 울산에서 제일 많이 그리스도인을 한자리에 모아본 것이 7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CBS에서 15000명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초대장을 만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울산교회 성도들이 울산을 복음화 하는 일에 뒷짐을 지고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교회는 주일날 출석하는 사람들이 2천명이상 됩니다. 2천명이 자기 태신자 5명씩을 데리고 오면 만 명은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손에 잡고 데리고 갈수 있고 꼭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다 못해서 옆집 우편함에 꽂아 놓기만 해도 장경동 국민스타가 오고 소리엘이 오고 누가 오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 자동차도 걸려있네’ 그러면서 혹 와서 설교 한번 듣는 가운데 변화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왜 이 기회를 그대로 흘러가게 할 것입니까? 저는 방송 3사를 울산에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Cts가 카메라 들고 와서 지금 찍고 있고 극동방송 주일날 설교 나가고 있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2:9)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손수 택하신 민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국민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여러분을 특별한 위치에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영광스런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업적을 선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은 신학자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성경전문가가 안 되어도 좋습니다. 밤과 낮이 다른 것처럼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 놓으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꼭 시간을 마련해야 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나절을 내가 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특별히 이번 토요일 오후3시부터 6시까지 내가 시간을 낸다. 라고 결심을 해 보십시오. 정식순서는 4시부터이지만 4시부터 가라고 하면 평소에 우리 교회에 나오는 실력으론 지각을 할지 모르니까 제가 3시부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면 차들이 막혀서 빨리 안 가면 안 됩니다. 제가 3시부터 입구에서 여러분에게 눈도장을 찍도록 하겠습니다. 한차에 태신자를 가득가득 실고 다 나타나셔서 반드시 이 수년 내에 울산이 복음화 되는 것을 7% 기독교인이 15%, 20%, 30% 많아지는 것을 여러분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더 많이 헌신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복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엄청난 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통해서 이걸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듭니까? 한 장을 나눠주면 되는 겁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주보에 넣어준 3장이 모자라면 내려가면서 더 받아 가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데리고, 그렇잖아도 봄나들이 한번 갈 수 있는데 살다보면 바빠서 그 좋은 문수구장을 여러분들의 세금으로 호반을 만들어 두었는데 안 가보면 울산시민다운 삶이 아닙니다. 그래서 차 한 대 대절해서 여러분의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와도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축복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많은 사람을 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우면 더 많은 복을 받습니다. 더 자주 진리를 전하면 더 활기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생기를 전하는 통로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토요일 오후 문수구장 호반광장에 소중한 분들을 인도하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분을 모시고 점심이라도 함께하고 복된 자리로 참석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여러분 그냥 성경책만 끼고 교회 오는 날 하고 여러분이 전도해서 오는 날 하고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기쁘고 사람들이 한번 쳐다봐 주기를 바라고 그럽니다. 다른 날은 와서 졸수 있지만 그날은 안 졸립니다. 자기가 안 졸뿐 아니라 옆에 사람이 졸던 것도 살피게 됩니다. 한번 손잡고 한번 가 보십시오. 그날은 달라 질것입니다. 이전에 알지 못하던 기쁨과 활기를 찾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영적인 활기를 찾길 원하십니까? 삶의 열정을 회복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것은 자동적으로 되질 않습니다. 의식적인 결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십시오. 영적으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네 가지 사실을 확인합니다.

1. 정규적으로 점검을 하십시오. 병든 곳이 없는지 죄악이 없는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제때에 식사를 하고 있는지 일주일에 한 끼만 먹고 사는지 아니면 하루에 세끼정도 먹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십시오. 읽어도 좋고 들어도 좋습니다. 묵상도 좋고 암송도 좋습니다.

3. 깨닫는 진리에 따라서 실천하십시오. 먹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몸이 자꾸 퍼집니다. 먹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근육운동이 필요합니다. 실천이 필요합니다.

4. 다른 사람에게 그 진리를 전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는 그 진리를 전해야만 합니다.

자연계에 자연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하면서 사영리에 대해서 여러분은 전했지요?

제가 오늘 영적 활기를 되찾는 네 가지 법칙을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의 죄악을 살피지 않으면 영적 활기가 사라집니다. 병들어 있으면 먹어도 힘이 없습니다. 활기찬 삶을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별한 병이 없어도 힘이 빠져, 그러면 밥을 제대로 먹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일날에만 영적 양식을 취하는 슈퍼맨이 되려고 하지 말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매일 식사를 거르지 말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이나 매일 성경, 생명의 삶 같은 수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냥 얇은 책 안 호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다락방, 생명의 양식 같은 이런 소책자도 좋습니다.

그다음 먹었으면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천부재가 영적인 열정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꼭 해야 할 일이 생각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다음주일에 교회에 나오면 켕깁니다. 그러나 실천을 한번 해보십시오. 얼마나 기쁜지 말씀을 들을 때 또 무슨 말씀을 내가 듣고 가서 일주일 동안 실천을 할까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절대 춘곤증 때문에 졸고 앉아 있지 않습니다. 왜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교회에서 그러고 있습니까?  진리를 새롭게 깨달을 때도 은혜가 되지만 실천하면 그 은혜가 배가됩니다.

마지막으로 침묵하면 열정을 사라지게 합니다. 깨달은 체험한 은혜가 있으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입을 열어서 말씀합니다. 여기 설교 하는 자리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쏟아져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입을 열어서 전할 주위의 이웃들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네 가지 영적인 요인을 말씀드렸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열정을 식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지난주에 일반적인 네 가지 문제, 이번주일에는 영적인 네 가지 문제를 점검하도록 체크해 보십시오. 그래서 저는 우리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꽃보다 더 활짝 피어나게 되는 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