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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 (엡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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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문기태 목사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페르시아에 백성들로부터 사랑 받는 지혜로운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진심으로 아꼈으며 그들을 위한 최선책만을 고집했습니다. 페르시아 백성들은 왕이 자기들의 일에 친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신의 결정이 백성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은 주기적으로 변장을 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시각에서 인생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은 가난한 촌부 차림으로 대중 목욕탕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웃과 정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목욕물은 지하실에 있는 아궁이에서 데웠는데 물이 식지 않도록 불을 돌보는 화부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왕은 쉴 틈도 없이 불을 돌보는 화부를 만나려고 컴컴한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왕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 외로운 화부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왕은 그 화부를 만나러 갔습니다. 화부는 자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준 손님에게 금방 정을 느꼈습니다. 그 누구도 그에게 그런 관심이나 배려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혹시나 화부가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 달라거나 선물을 달라고 청할까 봐 우려했던 왕에게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치자의 새 친구인 화부는 왕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 있는 소인과 같이 앉아 계시려고 안락한 궁궐과 권좌의 영화를 비우셨습니다.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음식을 드시고 제가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호사스러운 선물을 하사하셨는지 모르지만 폐하께서는 저에게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폐하의 마음을 주셨으니까요."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 선물은 여러분의 오늘을 바꿀 뿐 아니라 내일까지를 바꾸는 선물입니다. 나를 과거에서 해방시키고 현재를 감사로 바꾸고 미래를 희망으로 채우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으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화를 누립니다. 이 선물을 받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선물은 우리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더 가치있고 소망찬 삶을 살게 합니다. 이 선물을 가르쳐 성경은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구원의 선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8)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란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선물을 줍니까? 사랑하기때문에 그냥 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시기때문에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보통 선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유익한 것으로 선물하고 싶어서 찾아낸 것이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용서받고 사함받아 깨끗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사람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게하여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풍성한 사랑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신분을 변화시켜줍니다.
구원은 우리를 지배하는 악한 사단과 귀신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어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의 근원인 마귀의 모든 저주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도록 운명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와 우리의 모든 것을 삼킬 때에도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건강과 시간 행복했던 시간 심지어 생명을 다 삼켜버리는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세상에 살며 불완전한 행복을 맛보며 살던 우리에게 완전한 세상인 천국으로 인도하시어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고 상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살앗다고 윤리적으로 반듯하게 살았다고해서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잇는것도 아닙니다. 종교적으로 공을 많이 쌓앗다고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만약에 구원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여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앞에 가면 은근히 뻐기며 업신여기는 이상한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나는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았는데 너희들은 형편없어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았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구원의 근거를 찾지 않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너그러우심과 크신 사랑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근거를 정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며 다른 것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나오면 부자되게 해 주시겠지 하고 기대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건강하게 해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가진 분도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품은 분도 있습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기도도 들어주시고 자주 그런 복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참 만족을 안겨줄 수 없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도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한 달도 못가 또 다시 불만하고 다른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복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완벽한 결정체로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게 맺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뿐만아니라 구원은 그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선물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도 낡아지거나 색이 바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새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마음것 누릴뿐 아니라 죽어서 저세상에도 가지고 갈 수 있는 선물입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어 행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구원의 선물을 다 받아 백 배나 더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2.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호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엡2:7을 읽어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죄인된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그 사랑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을 선물로 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어느 날 밤 진영을 순시하러 나왔을 때에 한 보초병이 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보초병은 너무 피곤하여 졸다가 그만 무기를 떨어뜨리고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무기를 들고 대신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그 보초병이 깨어나 무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나폴레옹은 보초병에서 무기를 건네 주면서 "너 한 사람이 직무를 감당치 못함으로 인해 네 동지가 얼마나 쓰러지며 나라가 얼마나 해를 받겠는가 생각하여라. 특별히 이번만은 용서해 줄 터이니 다시는 졸지 마라."며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때에 보초병은 죽을 줄 알았으나 용서해 준다는 말에 너무 감격하여 나폴레옹의 충복이 되기를 결심했습니다. 그 군인은 언젠가 나폴레옹이 위험에 빠져 있었을 때에 자기의 생명을 걸고 나폴레옹을 구출해 준 훌륭한 군인이 되었습니다.

은혜란 이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죽이지 않고 용서하여 살려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누구는 구원하여 주고 누구는 멸망받도록 하느냐?고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하여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로 살려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1700년대 중엽 영국에 한 노예상인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파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를 인간 취급도 안하고 경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날 성경을 우연히 읽다가 자기가 노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죄에 끌려 다니던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대신 질머지고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비로소 자기가 용서받고 자유해진 영혼의 감격을 시로 옮긴 것이 유명한 나같은 죄인 살리신(찬405장)찬송입니다. 존 뉴톤의 이야기입니다."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런데 이런 죄사함 곧 구원의 선물이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공짜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결코 싸구려 공짜가 아닙니다. 비싼 공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 사함 받기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까닭입니다. 이 비싼 공짜 구원의 선물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3.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은혜로 내리시는 구원의 선물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본문 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을 통해서(thru faith)"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또 무엇입니까? 한 신학자는 구원얻는 믿음(saving faith)을 가르쳐 "믿음이란 왕이신 하나님이 구원의 선물을 내리실 때 몸과 마음이 더럽혀진 거지와 같은 인생이 이 선물을 받고자 내미는 손과 같은 것이다."고 했습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어 선물을 받았을 때 그가 손을 내민 것을 공로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이 선물을 하사했을 때 거지편에서 그 선물이 내게 필요한 것을 알고 손을 내미는 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마음으로 용서의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죄씻음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인도인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더 터키에게 힌두교 승려가 찾아와 자꾸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승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논쟁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가지 그대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하루에 도대체 몇 번 정도 죄를 범합니까?" 승려는 "글쎄요."라고 한마디 말한 채 잠시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정도입니까?" 승려가 대답했습니다.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열 번 정도입니까?" "아니 그보다는 많겠지요." "그러면 50번 정도입니까?" "그렇게 많이 범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이 말을 들은 터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승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10번 정도 죄를 진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30년을 사람의 일생으로 칩시다. 그러면 사람이 일생 동안 10만 번 가까이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당신은 도대체 그 죄들을 어떻게 처치하렵니까?"
승려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터커는 마음속으로 '바로 이때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죄의 결말은 죽음입니다. 구주되신 예수님께서 그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나는 그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받았고 이제는 죄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국립 경상대학교 축산학과 교수인 주선태 교수가 쓴 책으로 "아름다운 시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칠성님을 섬기고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미신을 믿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를 간증한 책입니다. 효자임을 자처하며 살았던 그는 늘 어머니의 유언을 간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3대 유언이 있었는데 "정치하지 말라. 개고기 먹지 말라. 예수 믿지 말라"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안식년에 미국 코네티컷 대학에 객원 교수로 가게 됩니다. 처음 6개월은 열심히 연구도 하고 여행도 하고 골프도 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요일이면 집에 있기 심심해하는 어린 딸 소영이만은 옆집 교회 다니는 집사님이 교회 데리고 나가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딸 걱정 안하고 골프 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은 교회에 안 나기로 굳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일 교인들이 소영이가 아버지가 없는 아이인줄 안다는 말에 쇼크먹고 난생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 처음으로 설교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그 다음부터 교회에 자기 발로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 믿고 제일 처음 어려움을 겪는 날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제사 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의 유언을 어겼다는 자책감을 안고 교회에 나가고 있었는데 이 어머니의 제사 날을 어찌 할 것인지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생각다 못해 그는 제사상을 차려놓고 딸 소영이를 옆에 앉히고 이렇게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하나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기도 드립니다. 왜 제가 이렇게 기도드리는지 다 아시죠. --지금부터 엄마 제사를 지낼 겁니다. 다 아시겠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질투하실 그런 우상이 아닙니다. 엄마하고 지낸 시간들을 추억하기 위한 우리들의 방법입니다.--"이렇게 첫 기도를 드린 그는 딸 소영이가 할머니께 절하는 의식을 마치고 2층으로 가자 제사상앞 엄마와 단둘이 앉아 엄마에게 영혼의 고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에서 그대로 읽도록 하겠습니다.(pp.188-192)
"자정 무렵 엄마와 단둘이 앉았다. 한동안 말을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줄줄 흘러 나왔다. 그냥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엄마가 틀렸어. 이때까지 나 엄마 말 잘 들었지. 나 엄마의 멋진 아들이었지. 그니까 이번엔 내 말대로 해.--엄마 내가 엄마보다 똑똑하고 더 많이 배웠지. 엄마보다 더 현명하게 살라고 그렇게 힘들게 나 가르쳤잖아. 그래서 엄마 아들 박사되고 교수됐잖아. 이제 엄마보다 똑똑한 아들 말 들어. 엄마가 잘못 알았어.--엄마, 우리 집에서 굿할 때 창피하게 동네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내게 무당이 시키는대로 이리 절하고 저리 절하라고 했지. 나 그때 왜 엄마 시키는대로 절했는지 알아? 엄마가 원하니까. 대학생 아들이 엄마가 시키면 창피한 것도 무릅쓰고 다 한다고 그만큼 효자라고 으쓱대는 엄마 모습보고 싶어서 그래서 무당이 시키는대로 나 다했어. 경동시장에서 사온 자라가 들어있는 물통들고 학생들에게 자리 양보 받아가며 몇번씩 버스 갈아타며 그렇게 대성리 팔당땜으로 방생 다니는 엄마가 안쓰러워 엄마 모시고 나도 많이 따라 다녔잖아. 강물속으로 들어가는 자라를 보면서 두손 모으고 허리 숙여 절하라고 하면 나 그렇게 했잖아. 엄마가 좋아하니까.---
이제 엄마 차례야. 엄마의 그 잘난 아들이 하나님에게 선택되었어. 엄마가 그렇게 싫어했던 예수쟁이가 되고 싶어. 엄마가 그랬지. 이런 것은 인력으로 어쩔수 없는거라고. 어쩌면 좋을까? 엄마 버려두고 나만 혼자 하나님에게 갈까? 엄마가 믿었던 미신들 다 버리고 나랑 같이 교회가면 안될까? 그동안 아무생각없이 엄마가 좋아하니까 내가 엄마 쫓아갔듯이 이제 엄마가 엄마의 똑똑한 아들, 교수 아들 쫓아오면 안될까? 엄마,같이 가자, 응. 교회에 하나님 만나러 가자,응?" 오늘 주 선태 교수가 받은 선물,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엄마와 나누고 싶어 절규했던 선물-이 구원의 선물을 여러분도 받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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