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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옥합을 깨뜨립시다 (막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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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윤형 목사 

만약 하나님의 교회가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과거의 유물들이 필요하다면 아마도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의 조각들이 가장 뛰어난 유물의 하나로 선정될 것입니다. 그 깨어진 옥합은 사랑의 유물이 될 뿐만 아니라, 가장 고귀한 헌신의 증표가 되고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는 설교 자료가 될 것입니다.

깨어진 것들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 유용한 것이 됩니다. 깨어진 밀알이 빵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산산히 깨어질 때 좀더 고상한 인격과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소금은 물에 녹아서 형체가 깨어질 때 짠맛을 냅니다. 양초는 녹아져서 태워질 때 빛을 발합니다. 모래알처럼 멀뚱멀뚱 살아 있는 소금이 어찌 짠맛을 내고, 타지 않는 양초가 어찌 어둠을 밝히겠는가?

내가 희생하지 않고, 내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는가?

하나님의 번제단에 드려진 제물들은 모두 죽은 제물만 드려졌습니다. 목이 잘리고, 각이 떠지고, 내장이 뽑아지고 피가 쏟아지고 껍질이 벗겨진 제물만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창에 찔리시고, 피를 쏟으시고 물을 쏟으시고 겉옷을 주시고 속옷을 주시고, 무덤까지 내려가셨던, 그 한없는 사랑에 대한 인간 편에서의 응답이 마리아의 깨어진 옥합이 아니겠는가?

이 시간 우리의 소중한 옥합이 깨어져서 주님께 부어지는 귀하고 복스러운 헌신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 깨어진 옥합은 아낌없이 드린 헌신입니다.

본문 2절에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나드향” - 이 나드향은 “나르도스타키스 자타만시”라고 하는 향나무 뿌리에서 축출한 향기로운 점액성의 향유를 말합니다. 이 나무는 파레스틴 지역에서는 자라지 아니하고,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에서만 자생합니다. 이 향유는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매우 값이 비쌌습니다.

당시 이 향유의 값이 300데나리온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300데나리온은 요즈음 값으로 약 900만원내지 천만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아마도 이귀한 고가의 향유는 마리아의 결혼 지참물로 준비된 것이거나, 아니면 부모의 유산일지 모릅니다.

오늘날도 이만한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이라면 가보급에 속하는 물품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 귀한 옥합을 예수님을 위하여 깨뜨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은 찔끔찔끔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냄새만 풍기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서 부어드리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헌신 -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진액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물질헌신 -쓰고 남는 것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유 있을 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헌신 - 시간 나는 대로 나와서 한 바퀴 둘러보는 것 아닙니다.

마리아는 아마도 자기 평생에 나드향의 냄새조차 맡아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마리아는 쓰고 남은 향수를 따르기 위해서 옥합을 깨뜨린 것이 아니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부어 드리기 위해서 옥합을 깬 것입니다. 다음에 또 드리기 위해서 남겨 놓지 아니하고, 남김없이 예수님 머리위에 부어드렸습니다.

Ⅱ. 깨어진 옥합은 거룩한 소비입니다.

본문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 - 선한 일, 아름다운 행위, 고상한 행위를 말합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렸을 때, 누가 가장 놀랐는가? 가롯 유다입니다.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도 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였다”고 했습니다(막14:5).

값비싼 것을 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허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헌신을 받으시고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내게 고상한 일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허비가 무엇인가?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장이 탈이 나도록 퍼마시고, 병나서 병원에다가 비싼 치료비를 지불하는 것이 허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프리카 오지에 선교사를 보내고, 성경책을 보내는 것을 허비라고 합니다.

왜? 배고픈 사람들에게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를 보내지 않느냐?고 합니다. 왜? 쟁기나, 탈곡기를 보내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낭비나, 허비가 아니고 거룩한 지출, 아름다운 소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압니다. 신앙적인 축복이 물질적인 축복에 우선한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요삼1:1~3). 축복의 우선순위 1번은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돼야 범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늘,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 믿고 축복받고 부자 되는 말만하다 보니까 은혜가 메말라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고 받은, 고난을 이야기합시다. 거기에 참다운 위로가 있고, 거기에 감격의 눈물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느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롬5:4). 주를 위해 버리는 것, 주를 위해 포기하는 것, 주를 위해 희생하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소비입니다. 고상한 지출입니다. 그것만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값진 투자입니다.

Ⅲ.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힘을 다해 드리는 헌신입니다.

본문 8절에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라톤 풀코스 41.195㎞는 인간 인내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이 코스를 다 뛰고도, 이직도 운동장 몇 바퀴를 돌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뛴 사람이 아닙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헌신은 “다” 드리는 것입니다. “힘껏” 드리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10데나리온이나, 30데나리온의 향을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온 힘을 다하여 300데나리온의 나드향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녀의 그렇게 아름다운 헌신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과부의 두렙돈의 헌금을 “많다” “귀하다”하시고 칭찬하신 주님께서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녀는 가장 좋은 옥합을 구하고, 가장 좋은 향유를 담고, 아낌없이 그것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힘껏 드렸습니다. 모두 드렸습니다.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오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인가?
시간인가? 건강한 몸인가? 오늘!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몸된 교회에 부어 드립시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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