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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극복합시다 (벧전 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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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윤형 목사 

성도의 삶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승리의 인생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성도의 섦은 이길 수밖에 없는 삶이고, 이기고 또 이기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의 삶 가운데에도 때로는 위기가 닥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싣고 지중해를 건너던 바울의 탄 배에 유라굴로 폭풍이 몰아쳤던 것처럼, 인생 항로 가운데 위기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시90:10).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가정문제, 실로 인생은 문제 투성이 이고, 이것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가는 것이 고달픈 인생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는 고난 가운데 가장 혹독한 고통은 무엇인가? 마귀가 주는 고통입니다.

본문 8절에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합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에서 떠나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지옥형벌을 받는 멸망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깨어서 경성하고, 믿음을 굳게 하고,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때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위기가 닥치는가?

Ⅰ. 신앙이 나태해질 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본문 9절에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의 말씀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싸움은 잘사느냐? 못사느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하는 그런 싸움이 아닙니다. 성도의 싸움은 죽느냐, 사느냐, 생명의 싸움입니다. 승리하면 영생이고, 실패하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적 전투는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써야합니다. 성령의 검 곧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서 구하기를 힘써야합니다”(엡6:14~18). 이것이 성도가 사는 길이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차츰차츰 믿음이 힘을 잃어 가는 것입니다. 보이다가 안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 읽는 소리가 줄어듭니다. 기도소리가 작아집니다. 눈물이 메말라 갑니다. 세상과 점점 가까워 지드니, 이제는 교회와 점점 멀어집니다.

이렇게 신앙이 나태해지면 무엇이 따라 붙습니까? 마귀가 따라 붙습니다. 마귀의 수중에 넘어간 사람은 자기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삶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와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단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모이는데 열심하고, 말씀 듣는데 열심하고, 기도하는데 열심 하는 것입니다. 구제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데 열심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하면 마귀가 멀리 떠납니다. 내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때 우리는 새 힘을 얻고,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삶인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사40:31). 이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받고 신앙위기와 삶의 위기를 극복하시고 승리하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Ⅱ. 교만할 때 위기가 옵니다.

본문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히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잠16:18).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잠15:25). 성도는 세상의 삶에서도 성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물질의 축복도 받고, 건강의 축복도 받고, 사업도 잘되고, 가정도, 자녀도 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섬기는 교회에 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적인 성공이 가져다주는 위험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교만입니다. 그러면 이 교만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데서 옵니다.

“내가 성공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잘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내가 승리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내가 성공한 것이 내 능력이다.” “내가 유능해서 성공하고 내가 노력해서 성공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사람이 받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허시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하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교만 자체가 벌써 패망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수준은 어떤 수준입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작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크게 하시고, 내가 약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강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시73:28).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잠26:20).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10) 나의 성공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행복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Ⅲ. 과도한 욕심을 가질 때 위기가 옵니다.

본문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권고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근심, 걱정, 염려가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정욕에서 옵니다. 나의 문제를 내가 책임지려고 하는데서 우리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욕망, 꿈, 이상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실로 무기력하고 퇴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이기는 해도, 이것들은 적절한 절제가 필요한 것들입니다. 어떤 일에든지 과도한 욕심을 가지면 그 욕심이 장성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약1:5).

오늘 날 많은 기업들이 퇴출을 당하고, 훌륭한 기업가나 정치가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과도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끝내는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빌4:7).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근심, 걱정,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 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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