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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뻐 할 수 있는 기쁨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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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오창우 목사

할렐루야
우리 옆사람하고 서로 인사하는데 인사는 좀 긍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평안하시죠" "건강하시죠" "행복하시죠" 그래야 행복이 오거든요. 그래야 건강하거든요. 우리 옆에 사람 서로 인사하시는데
"평안하시죠?"
한마디 더하실까요
"건강하시죠?"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제일 먼저 한 설교는 그 영락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철야기도회 설교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잘 했는지 온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최고다" 이럴줄 알았는데 저희집사람이 저한테 하는 말이
"여보! 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
신학교 처음 졸업하고 설교한 것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님이 처음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시게 됐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설교 초반을 이상하게 시작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키가 작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키가 너무나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니고데모는 너무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나머지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순간 성도들이
"어 그게 아닌데. 니고데모가 아니고 삭개오인데..."
그랬지 않겠어요?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이 젊은 전도사님이 곧 깨닫고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이랬다는 겁니다.
"여러분 니고데모가 뽕나무 위로 올라간 순간 삭개오가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뽕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니고데모야! 니고데모야! 내가 올라가 있을 자리에 왜 네가 올라가 있느냐? 빨리 내려와라."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웃으니까 좋잖아요. 그런데 잘 웃어가지고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에 대해서는 죽은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분을 존경하고 이분을 통해서 힘을 얻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기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이분은 매사를 기쁘게 살았습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를 하고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열었는데 파산하고 남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데 15년일 걸렸고 결혼을 했지만 잘못해서 행복하지 못했고 상원위원에 입후보 했지만은 두 번이나 낙선을 하고 하원위원에도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연설울 했지만은 그 당시 청중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문으로부터는 연일 비난을 받았고 나라의 절반은 그를 벌레처럼 싫어했다 했습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훨씬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놀랍게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능력!!
한번은 남북전쟁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들어가는데 부하가 그럽니다.
"각하!!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게 기도해 주세요."
그러니까 링컨이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달라고 기도했다. 어떠한 상황을 당하든지 하나님 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나는 해야 한다."
고 했다고 합니다.
링컨이 한번은 상원위원에 입후보 해가지고 더글라스라고하는 후보와 겨루게 되었는데 '작은 거인'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진 더글라스가 링컨보다 더 인기있는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더글라스는 링컨을 비방했습니다.
"여러분! 링컨은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입니다."
사람을 옆에 세워 놓고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청중들이 긴장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신공격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링컨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궁금해 했습니다. 근데 사실 링컨이 못생겼거든요. 수염을 기르게 된 것도 너무 못생겨가지고 기른거라고 하잖아요. 어떤 어린 아이가 수염을 길러 보라고 그래서 기르게 돼서 그만한 인물이 된거 거든요.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더글라스 후보가 저보도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면 오늘같이 중요한날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순간 모두 손벽을 치며 배꼽잡고 웃었다고 합니다.
남에게 인신공격을 당하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닙니다. 화를 내야하고 분노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웃어넘길 수 있는 능력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사람이 되게 했다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이, 기쁨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링컨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웃을 수 없었으면 죽었을 것이다."
그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근거했느냐?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주안에 있었기 때문에 얻는 기쁨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기뻐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주를 위해 충성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더군다나 믿는 성도들에게 까지도 배척을 당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어떻습니까? 가시가 있지 않습니까? 간질이 있었기 때문에 쓰러져 거품을 품을 때도 있었고 머리가 너무 아파가지고 쪼개지는 고통속에서 머리를 감쌀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하나님이 이런 고통속에서 은혜가 있다니요. 하나님 은혜를 찾아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네가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네게 어려움을 줬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버려도 육체적으로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라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는 어려움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에 능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후에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능력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가난과 고난과 배척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님안에서 얻는 기쁨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안에서 오는 기쁨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관용하라는 겁니다.
우리 5절에 있는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멘
관용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상황에 대해서도 관용하고 돈이나 이권에 대해서도 관용하고 직분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대도 관용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강영우박사님이 있습니다. 맹인으로서 한국 최초의 박사님입니다. 그가 쓴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게 되면 강박사의 둘째아들 진영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진영이가 중학교1학년 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마이클 조던이라고 했습니다. 마이클조던은 농구 황재라고 할 정도로 농구를 아주 잘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그런 모습이 부러웠겠어요. '나도 그런 사람처럼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죠. 그런데 중학교 3학년쯤 되니까 그다음에는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그랬어요.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맹인의 핸드캡을 뛰어 넘어 미국의 존경받는 50인 중에 끼어 있다는 거죠. 수많은 어두운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소망을 주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는 겁니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아들진영이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에게 만약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어둡고 곤고한 시간을 견디고 일어날 수 있도록 아빠를 사랑해주고 아빠의 발이 되어주고 손이 되셨던 분, 우리 자식을 이렇게 키워주신 분, 우리 어머니를 제일 존경합니다."
강박사는 이 글에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존경한다는 말에 "아니다"하지 않고 "맞다"했다는 거죠. 옳은 판단인거죠. 오늘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누구냐. 아내와 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직장에, 우리 일터에 필요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잘해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돈 많이 벌었습니다. 성공자입니다. 강영우박사는 맹인으로써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출세했습니다. 사회적인 지휘를 얻었습니다. 성공한사람입니다. 반면에 강박사 부인은 진영이 어머니는 누구처럼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진 돈도 없고 사회적인 지휘도 없습니다만 왜? 이 아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존경한다고 했고, 아버지 역시 이 말에 동의를 했냐는 이 말입니다.
여러분!! 성공과 승리는 다릅니다. 성공은 돈을 벌었다든지 사회적인 지휘를 얻었다든지 출세를 한 사람을 성공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승리는 다릅니다. 싸워서 이긴 사람입니다. 역경과 고난과 싸워서 이긴 사람을 승리한다고 그럽니다. 강박사 부인은 승리한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하는 사람은 계속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대접을 받습니다. 강박사 부인 같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왕에 결혼을 하려거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보다 비장애인 중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보통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공보다 승리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삶이 아닌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 때문에 네가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어성경에서는 관용을 가르켜서 '비 이기적인 동정심이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기적이란 말은 자기가 죄입니다. 그러나 비이기적이라는 말은 자기를 빼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을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몇 일 전에 저희 집에 같이 사는 신혼부부가 있어요. 뭐 아시는 분만 아시겠죠. 한남 전철역에 내리셔가지고 이 부부가 자기네들이 먹을 것 사가지고 왔어요. 들어오더니 사가지고 온 것을 자꾸 펼쳐 놓더라구요. 계산서를 꺼내들더니 이것, 저것을 계산하더니
"야~~돈을 더 줬다."
거기서 걸어 올라오면 한참 되잖아요. 말은 안했지만
'조금 더 줬으면 참지'
그랬는데 자기네들은 아니라는 거에요. 저는 한마디도 안했어요.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더라구요. 나는 아무말 안했어요. 그러더니 전화를 해요. 내가 산 게
"이거 이건데 얼마죠?." 그랬더니 그쪽에서
"저희가 잘못 계산을 했으니까 내일 와서 받아 가시라고" 그러더라구요. 그러고선 2층에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오더라구요. 그러더니
"아니야. 지금 가야겠어."
그러더니 내려가서 받아가지고 왔어요.
물 한 박스를 이 분들이 더 계산을 하신 거에요. 얼마받았냐고 하니까 5천 얼마를 더 받았다는 거에요. 손해를 안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그래..그렇게 살아야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만약에 그쪽에서 물건을 샀는데 5천원을 덜 계산을 해서 손해를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쪽에서 내가 돈을 덜 냈어요. 내가 이익을 봤어요.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관용이라는 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기쁨이 있어요. 갖다 줘 보세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고마워하잖아요.

언젠가 감을 사는데요. 감이 싸더락요. 1000원에 5개 할 때가 있었어요.
"2000원어치 주세요." 하니까 10개를 넣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봉지 안에서 2개를 꺼내서
"이건 아저씨 드세요" 하니까 저를 이상하다라는 식으로 쳐다 보는 거에요.
"아니 저는 아저씨랑 같이 나눠 먹으려고요." 그랬더니 좋아하더라구요.
사람들은 내가 손해를 보면 좋아하더라구요. 여러분 이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 성공하려고합니다. 그래서 다 똑똑합니다. 얼마나 따지기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관용이라고 하는 것은 것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손해 보는 겁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저 사람을 득을 보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관용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되서 오늘날까지 살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 주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관용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래 관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도 그랬고 사도가 된 후에도 관용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사도행전15장에 보면 사도바울과 바나바다 1차 전도여행처럼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그때 이 두 사람이 심히 다투었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사도행전 15장39절에 보면
"서도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싸웠으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고 하겠습니까? 바나바가 어떠한 사람입니까? 사울이었을 적에 하나님의 교회가 그를 배척하고 미워할 때 그를 믿어줬던 사람입니다. 사도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하고도 심하게 다퉈서 갈라졌다는 거에요. 그런 사도바울입니다. 바나바의 조카 마가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지난번에 한번 실수를 했으니까 이번에는 안된다는겁니다. 또 실수를 할까봐서요. 그랬는데 오늘 빌립보서를 쓰는 지금 이 시간에는 세월이 지나고 놓고 보니까 다 부질 없는 짓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까 마가도 변하고 사도바울도 변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 좋아하는지. 디모데후서 4장 11장을 보면
"마가를 싫어하던 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함께 있는 바벨론의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네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사도베드로는 아들이라"
고 까지 말했습니다. 빌레몬서 1장24절에
"나의 동역자 마가"
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다 변하게 돼 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납하고 서로 위해 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왜? 관용을 하겠습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면 죽을 때가 가까워 진겁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 3가지를 후회한다고 하잖아요.
좀 더 참을 걸, 왜? 싸웠어? 좀 더 인색해서 좀 더 재밌게 살걸, 왜 그렇게 티냈냐는 거에요. 주께서 가까우십니다. 하나님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관용을 나의 관용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기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은 관용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 성경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자기성취,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관용하고 대접하고 승리하는 그런 사람이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관용하는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은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감사함으로 기도하자" 6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뭐가 있을까요? 가장 기본적인 감사가 뭐가 있을까요?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어느 시부모가 며느리 자랑을 해요. 아들집에 가느냐고 미국에 갔는데 며느리가 참 잘하더래요.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며느리가 편지 한통을 주면서
"이것은 꼭 비행기 안에서 펼쳐 보십시오."
시부모 내외가 비행기를 타고 편지를 뜯어봤더니 이렇게 써 있더래요.
"어머니 아버지!! 저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분을 시부모로 모시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구여 이번에 저희들을 찾아주셔서 상당한 용기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특별한 선물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고 이 편지 때문에 기뻐가지고 이 편지를 그렇게 자랑을 하더라구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 아내와 남편과의 사이에서
"나는 당신 때문에 행복하다"
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딸을 가진 부모 된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의 심정도 이해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되죠? 누가 내 아이를 낳아주고, 누가 나를 위해 밥을 해주고 누가 나를 위해 빨래를 해줍니까 누가 나한테 잔소리를 할겁니까? 당연히 아내에요. 누가 나를 위해 돈을 벌고 누가 나를 위해서 희생을 하며 나를 위해서 삽니까? 당연히 남편이죠. 누가 나를 목숨바쳐 낳아주셨습니까? 길러주셨습니까? 부모님께 감사해야죠. 여러분 이 자녀들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계시록에 나오는 말씀가운데 "첫사랑을 잃어버려" 라고 나와있는데 첫사랑이 뭔가 묵상하는 가운데 가만히 이렇게 보니까 손주들을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 내 자식 키울 때는 이렇게 이쁜 줄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손주가 그렇게 이뿌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습니까? 그 첫사랑은 손주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도 감사하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 그게 사랑이에요. 내가 네안에, 네가 저안에 있기 때문에 감사한거에요.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과 우리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있으시잖아요. 저도 목회를 하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어요. 잘 도와주시는데도 왜? 어려운 일이 없겠어요? 다 제 자신의 문제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도대체 내가 누구입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말씀을 주시더라구요.
"너는 포도나무의 가지지 포도나무가 아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잖아요. 가지가 할 일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다. 포도나무는 줄리로부터 영양분을 빨아들일 때 절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포도나무이신 주님안에 거하라. 주님이 내가 오늘 어디 있는가를 보라"
고 하시더라구요.
"주님 죄송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나는 가지인데 내가 마치 줄기인 것처럼 내가 뿌리를 내리고 내가 물을 빨아들이고 내가 공급하고 내가 다하는 것처럼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잘못 했습니다. 주님이 줄기이시고 나는 가지입니다. 주안에서 살겠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오더라구요.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습니다. 주님안에 있으니까 염려하지 안ㅅ는다는 거에요.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잖아요.

"무화과 마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는 주님 안이시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 안이에요. 주님안에 있어야 하는거에요. 주님 안에 있는 것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승리하게 하시고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저녁때 되면 하나님앞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제것입니까? 하나님것입니까? 교회가 제것입니까? 하나님의것입니까? 다 하나님의 세상이고 하나님의 교회아닙니까? 그러니 친히 돌보십시오. 저는 잠자리에 들겠습니까? "
맞잖아요? 하나님의 백성은 무거운 인생의 짐을 혼자 지려고 해서는 안되는 하면 안됩니다. 염려와 근심의 죄목들은 하나님이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염려와 금심을 하나님께 다 맡기시면서 기도하면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 속에 기쁨이 날마다 풍성하실 줄로 믿습니다. 죄라는게 딴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내가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게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웨슬립 듀엘이라는 박사가 쓴 『기도가 세계를 움직인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유명한 간증이 있는데요. 1960년대에 케냐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선교사가족도 지금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데 하튼 이렇게 이렇게 해서 본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본국에 돌아왔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최근에 무슨 어려운 일 없었냐고 케냐에서 어려운 일 없었냐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이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가 3월23일 밤에 갑자기 내 마음에 당신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기도하라고하는 기도할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말 할 수 없는 영적인 불안감을 느껴가지고 자다가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같이 불안감이 없어질 때까지 기도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자 그 시간에 케냐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던 선교사가 위험을 당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마오마오 지역에 회심한 한 형제가 그날 세 명의 친구들과 칼을 들고 차를 타고 이 선교사가족을 죽이기위해 접근을 했는데 갑자기 차 둘레에 16명의 장정이 칼을 들고 있어서 돌아갔다는 거에요. 알고보니까 16명의친구들이 그날 밤에 기도를 하고 있었던 거에요. 기도는 여기서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저쪽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교사는 회심한 마오마오족의 한 형제를 통해서 아니 16명라니 우리 가족뿐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친구들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해줬던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실 주로 믿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라는 겁니다. 기도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남편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목사님, 장로님,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혼자서 일하시지 않아요. 주안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통치하시기를 원하시는 거에요. 우리의 자녀 우리가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아내와 남편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회사와 민족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은 살아계신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하고 손잡으시고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헬리볼백의 복음성가 가운데 저도 가끔 불러요.

괴로운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힘이없고 내마음 연약할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이름 부른는 모든자를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때에 주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주안에서 주시는 기쁨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을 주시는데 첫째는 관용이고 두 번째는 감사함으로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도 하나님의 평강으로 기쁨으로 이 한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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