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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패자부활전이 통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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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재교수(숭실대)

직장에서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정착한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나갔다. 이번이 세 번째 미국 생활인데, 그동안 미국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테러 사태 이후 안전을 아주 많이 강조하고 있으며 안전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신원이 확실치 않으면 은행개설, 전화 및 인터넷, 운전면허증 등을 취득하기가 무척 힘들게 되었다. 전에는 불법체류자들의 자녀들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젠 어림도 없게 되었다. 갈수록 불법체류자들이 살기에 힘든 곳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 내에는 엄청나게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은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불법체류자들은 가슴을 졸이면서 기회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처음 미국생활(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인 1980년대 중반에 미국을 좀 더 많이 알고자 가능하면 여행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였다. 중고 자동차에 의지하여 미국의 시골구석을 누비고 다닌 경험이 있다. 그때 받은 첫인상은 미국은 정말 축복 받은 나라라는 것을 느꼈었다. 미국은 정말 땅이 굉장히 넓고 기름지다는 점이다. 막연히 지도를 펴놓고 느끼는 것과 실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느끼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광활하고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풍요롭고 평화스러운 땅,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리고 개인을 믿고 존중해주는 신뢰의 사회라는 것이 한국과 가장 비교가 되는 점이었다. 언제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사회가 되나 하고 부러워하곤 하였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생각이 좀 바뀌었다. 미국의 진짜 저력은 '패자부활'이 통하는 사회라는 데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의 진정한 저력은 넓은 땅도 아니고 높은 국민소득이나 신기술과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진짜 저력은 개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점이다. 능력과 가능성을 도전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한다. 만약 한 두 번의 실패로 인생이 끝난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깊은 절망감에 빠지겠는가! 한국은 미국에 비하여 한 두 번의 실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실패자에게 재생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잘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인정해준다. 실패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혁신의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 오늘의 미국을 부흥케 한 원동력이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아주 반갑고 기분 좋게 만난 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국내저명 민간연구소에서 잘 나가는 연구원이었다. 그의 불행은 1998년도 경제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경제위기 때 연구소 구조조정으로 명퇴(실은 강제퇴직)를 하고 한국에서 재기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때 나이도 40대 중반을 훌쩍 넘었고 무엇보다도 박사학위라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40대 중반이면 자녀들 교육비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때인데, 직장을 잃으니 박사학위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살기 위해 학력을 속이고 변변치 않은 직장에 이력서를 넣어보았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절망에 빠졌다. 가정에서도 힘들었다.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은 상가집 강아지만도 못한 신세이다. 그때 미국에 있는 그의 친구가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라리 미국에서 다시 시작해보라고 조언하였다. 전공을 바꿔서 다시 공부해보라고 것이었다. 여러 가지 걸리는 것이 많았지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단하고 전공을 바꿔 어린 학생들 틈에 끼여 석사학위를 시작하였다. 다행히 그의 박사학위와 연구능력을 인정받아 장학금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꽤 괜찮은 직장을 얻었다. 지금은 다시 얻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경제력도 회복하였고 내친 김에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비가 심하게 내리던 8월 여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그의 집을 찾아 갔다. 그의 가족과 조촐하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던진 한 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와 닿았다. 이제 50대 중반에 불과한 그가 심신이 지쳐 은퇴하면서 쉬고 싶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시 공부하고 일 할 수 있는 재도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 힘이 솟고 행복하단다. 한국에서라면 그 나이에 어림도 없었을 것이란 얘기를 하면서 미국이 그런 점에서 좋다고 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것이 미국의 저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가 진짜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고 희망이 있는 사회이다. 오늘도 한국에는 대입에 한번 실패했다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깊은 좌절감에 빠져 방황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목숨마져 버린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재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실패한 그들에게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연건과 인식이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도 정착되었으면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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