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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증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 (딤후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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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일해 목사

그리스도인에게 간증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것이 간증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령을 하면, 반드시 구원받은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간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단어들은 아무렇게나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롬 10:10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성경에서 왜 입으로 고백하라고 기록하고 있겠습니까?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은 간증의 시작입니다.
마 10:32-33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을 중요시하고, 그 간증을 소중히 여깁니다. 간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면 마귀의 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자신의 구원을 간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이 마귀의 자녀가 아님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는 것은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영생을 얻었다는 것만큼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이 한 순간 살아났다면, 그는 그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암에서 회복된 것보다 못한 소식입니까?  암에서 회복된 그 사람도 다시 죽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구원을 의심케 하는 행동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구원을 의심케 하는 행동을 하십니까?
"저 형제는 정말 구원을 받았나?", "저 자매는 언제 구원을 받았는데 저래?"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언제, 어느 때고 자신의 구원 간증을 해달라고 하면 거침없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창피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 간증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구원 간증을 잘 못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구원 간증은 자신의 일대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생 속에서 단 한번도 주님을 모셔들여 본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간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이 아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십니까? 아직도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셔야 하며, 거듭난 사람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소중합니다. 이 구원을 간증을 통해서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저는 간증을 통해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구원은 여러분의 행위와 종교생활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고 성경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간증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구원까지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 놓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간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간증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간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지금 이 순간 어떠한 간증을 남기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떠한 사람들이 간증을 잃어버리게 되는지 살펴보고 또한 간증을 남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을 사랑한 사람은 간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데마를 보십시오 그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 4:14 {사랑하는 의사 누가와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몬 1:24 {나의 동역자 마르코와 아리스타코, 데마, 루카도 문안하느니라.}
데마는 분명히 바울의 동역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간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떤 이가 그 아무리 바울의 동역자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해도,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간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는 돈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이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데마가 얼마나 신실하게 바울의 동역자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데마가 이 세상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세상을 사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는 정도의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조금만 사랑해도 그것은 세상을 사랑한 것입니다.
성경은 데마가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갔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데마가 이 세상을 조금 사랑했음에도 갔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까?  모두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지 않습니까?
"나는 저 자매보다는 이 세상을 덜 사랑해, 저 형제는 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여러분의 겉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겉 사람은 분명히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겉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지 안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몸의 구속을 받지 못한 우리의 겉 사람은 세상 지향적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세상에 노출되어 있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속 사람이 겉 사람을 지배했을 때,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속 사람이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겉 사람이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간증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데마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데마가 세상을 사랑했을 그 시대보다 지금 이 시대가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데마보다는 이 세상을 덜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성경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간증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느냐 그것을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단지 세상 물건을 좋아하고, 세상 음악을 좋아하고, 세상 문화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인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어떤 규칙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TV 끄기, 영화 안 보기, 세상 음악 안 듣기, 잡지 안 보기 등등 물론 이러한 것은 좋은 일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규칙으로 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TV를 안 본다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까? TV 안보는 대신 등산이나 골프를 한다면 어떻습니까?
세상 음악을 안 듣는다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까? 세상 음악을 안 듣는 대신 스포츠신문이나 연예잡지를 탐독한다면 어떻습니까?
요일 2:15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무가치 한 것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셋째하늘에 있는 것과 족히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세상을 사랑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본문은 분명히 "나를 버리고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물론 바울 사도를 버리고 간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종이었고, 하나님의 사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을 버리고 갔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 지향적인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주님과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한 사람은 분명히 주님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세상이 자신의 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 4:4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그리스도인이 간증 없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무시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오고 안나오고는 단순히 교회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교회 회원으로써 간증을 대부분 했을 것입니다. 회원으로써 간증은 단순히 구원 간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원 간증이란 이제 이 교회의 회원으로써 한 부분을 담당하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입니다.
여러분은 그 간증을 쉽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회원 간증이 단순히 구원 간증이었다면 몰라도, 분명히 회원 간증이었다면 여러분은 앞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회원이 교회를 떠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1. 교회 목자가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칠 때.  2. 이사(다른 교회로 출석)
이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른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교회를 떠난다든지, 목자가 매주 자신보고만 설교한다고 떠난다거나 무엇무엇 때문에 교회를 떠나든지 나가기 싫다든지 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구원을 의심케 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과연 자신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
여러분 중에 어떠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사랑한다면 간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간증을 잃어버린 그 사람은 주님을 버리고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간증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도 문제이지만, 간증을 잃어버리게 하는 그리스도인도 문제입니다.
물론 믿음은 개인의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믿음을 파괴하는 것 또한 개인의 믿음 없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주위의 그리스도인들과 많은 교제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사탄은
다니엘보다 영리합니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지만, 믿음 없는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더 강력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나는 믿음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다른 그리스도인과 교제해서는 안됩니다. 믿음 없는 그 그리스도인은 당장 하나님과의 교제를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귀의 종으로 종노릇했기 때문에 그가 누가 되었든지 간에 그는 마귀의 종입니다.
요 8: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니라.}
롬 6:16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
벧후 2:19 {.....누구든지 정복을 당하면 그 사람은 정복한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라.}
여러분의 간증을 누가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첫사랑을 누가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조심스럽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단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세 값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교제는 아닙니다. 시장 물가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 물가가 다른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교제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교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외적인 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통해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에 실패한 사람들의 한 두가지 특징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두려워하고 피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항상 다른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자신의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에 관심을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지 않는 그리스도인과 어떤 교제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왜 어떤 그리스도인과는 교제가 안된다고 말씀을 하십니까? 또한 여러분은 왜 교제가 잘 안되는 그러한 대상이 되셨습니까?
여러분 개인이 바로 세상을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간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2. 간증을 회복하는 그리스도인
11절을 보십시오.
마가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는 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니라."
사도행전을 찾아보겠습니다.
행 13:5 {그리하여 살라미에 와서는 유대인의 회당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고, 조력자로 마가 요한을 두었더라.}
행 13:13 {그후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파포에서 떠나, 팜필리아에 있는 퍼가에 왔으며, 요한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더라.}
행 15:36-40 {며칠이 지난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파한 각 성읍의 우리 형제들에게 다시 가서 방문하여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하니, 그때 바나바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결심하였으나, 바울은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사역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더라. 그러므로 그들 간에 심한 의견 대립이 있어 서로 헤어지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로 쿠프로로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떠나니, 형제들이 그들의 여정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더라.}   
마가는 어느 순간엔가 회심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AD 68년경에는 바울 사도가 마가를 "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순식간에 간증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간증을 되찾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간증을 되찾았는지 성경은 상세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적인 사실들을 비취어 보아 그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베드로처럼 자백했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처럼 회개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죄를 자백하는 사람에 대해서 용서하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전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일 1:9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잠 28:13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번성하지 못할 것이나,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누구나 자비를 얻으리라.}
마가는 주님과의 관계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먼저 회복되어야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잘하고 있는지 잘 못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나타나는 열매들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7:20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들을 보고 나무들을 알게 되리라.}
영적인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첫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십시오. 지금이 여러분 자신이 가장 좋은 영적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언젠가 가장 좋은 상태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왜 자신의 생활을 간증하지 못하십니까? 여러분의 간증을 잃어버린다면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데마는 자신의 간증을 되찾지 못했지만, 마가는 자신의 간증을 되찾았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데마처럼 살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마가처럼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리스도인이 간증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처참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어떠한 간증도 할 수 없다면,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혼의 구원만 간신히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혼의 구원만 간신히 받고 지옥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겠지만, 이 세상에 살 때,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처량한 삶을 사는 것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까지도 누리며 생활하시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주님의 군사로써 수많은 전쟁터에서 싸워 이긴 무용담을 남기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간증은 단지 구령을 얼마나 많이 했다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마귀를 대적해서 이긴 무용담과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주님께서 주신 소망을 붙잡고 승리한 간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간증입니다.
왜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간증이 끊이지 않는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자신이 과연 간증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지, 아니면 간증을 남기는 그리스도인인지.
자신이 간증을 잃어 버렸던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주님께 자백하시고 마가처럼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처럼 더러운 죄을 용서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저와 여러분이 다시 주님께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돌이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간증을 잃어버린 데마가 될 것입니다.

미카 7:18-20 {죄악을 용서하고 그의 유업의 남은 자의 죄과를 간과하시는 주와 같은 하나님이 누구니이까? 주는 자비를 기뻐하시고 그의 분노를 영원토록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는 다시 돌이키시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리니, 주께서는 우리의 죄악들을 정복하실 것이요, 주께서는 그들의 모든 죄들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는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야곱에게는 진리를, 아브라함에게는 자비를 행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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