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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적은 능력이라도……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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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기 목사

빌라델비아. 사르디스로부터 남동쪽으로 대략 40km 떨어져 잇는 도시입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가 있는 도시 중 제일 역사가 짧은 도시이고요. 그러나 특별한 목적을 위해 건설된 도시입니다. 그 특별한 목적이란, 헬라의 문명을 전 아시아에 보급하는 관문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포도의 생산지입니다. 지금도 가보면 길가에 포도나무가 심겨진 포도원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저희가 갓을 때가 시월 말경인데, 마치 우리나라 가을 농작물을 널어 말리듯이 곳곳마다 포도를 널어 말리고 있었습니다. 건포도를 만드는 겁니다. 아예 동네 가운데 사거리에는 분수대가 잇는데 커다란 포도송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여러분 달력의 사진으로 보면 굉장하게 큰 교회였구나 싶지만, 들어가는 왼쪽에 넓게 파인 곳에 옛 유적들이 잇고 거기에 빌라델비아라는 팻말이 불어 있습니다. 17년의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던 겁니다. 훗날 티베리우스 황제가 그 도시를 재건했답니다.
어떻든 부유한 상업 도시입니다.
이곳에 그리스도 공동체가 설립되었는데, 언제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베드로가 여기서 데메트리우스를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하니, 그렇다면 일찍이 그리스도 공동체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빌라델비아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

1) 거룩하고 참되신 분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호 하기오스’ 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순결하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모든 자보다 뛰어나고 구별되며, 완전하신 절대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참 곧 진실은 약속을 지키시는 참되신 분이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고 참되신 분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시고 깨끗하실 뿐 아니라 모든 자보다 뛰어나시고, 구별되며, 완전하신 절대적인 분이시라는 겁니다.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흠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되셔도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흠 없는 것을 드렸습니다. 신약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흠 없는 제물이셨습니다.
사람의 죄는 그냥 빌고 용서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사람의 죄는 반드시 그 생명으로 갚아야 하는 겁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사람을 그때마다 생명을 빼앗아 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 값을 치러야 하겠고……. 그래서 구약에는 짐승의 생명으로 대신한 겁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짐승의 생명으로 대신 하나님께 그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하지 못했고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죄는 사람의 생명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비록 사람이셨지만 흠 없는 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10:4-7에 보면,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 10:9-10) 그렇기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시험과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오직 완전하시며 진실하신 그리스도의 약속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성취와 완성은 우리의 어떤 외부적인 조건과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자신의 진실한 약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22:22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둘 것이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그가 닫으면 열자가 없을 것이다.”
열쇠는 왕권을 의미 합니다. 열쇠와 더불어 왕의 권세가 전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었다는 것은 다윗이 행했던 하나님의 권능이 이제 새로운 수령인 곧 그리스도께 약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는 그분이 말씀하신다.” 바로 그분은 메시아 곧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요. 인간의 구원은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다. 어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시 대통령이 하는 것도 아니고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열쇠를 가지신 분, 그래서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는 그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결정 하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들인 겁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고난을 참고 어려움을 견디면서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악한 자, 거짓 선지자, 니골라당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었다고, 그래서 첫사랑을 잃게 된 원인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고 책망 받았습니다.
두아디라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많은 일을 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영적으로 허약하고 불신앙적인 이교사상이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앞으로 살펴 볼, 버가모교회는 이방 종교의 탄압과 무서운 박해로 고통 받았고 안디바가 순교한 교회입니다. 그들은 그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잘 지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발람과 같은 니골라의 무리들 즉 이단자들을 교회 안에 그냥 두고 그들을 따랐기에 책망 받았습니다.
사데교회는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교회는 책망 없이 칭찬만 받았습니다.
1) “내가 네 앞에 문을 하나 열어 두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다.”
이 말씀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향해 교회의 문이 열려 있다는 해석입니다. 즉 누구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겁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마치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옵니다. 거기 27절에, “그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 회중을 불러 모으고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에 들게 되도록 그 문이 열겠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6:9, “나에게 큰 문이 활짝 열려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방해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고린도후서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리니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니.”
골로새서 4:3,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문이 열겠다는 것은 복음의 문이 열렸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물쇠로 채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의 말씀, 사랑, 소망 등이 교회로부터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따라서 이 문은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누군가, “그거야 당연하지요.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문을 누가 닫겠습니까?” “또 사람들이 예수 믿으려고 교회 나오는데 누가 그 문을 닫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문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14,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왜 그랬습니까? 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문을 닫았습니까?
그들은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데, 그 속은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말해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 보다 제단 위의 제물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리면서도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습니다.
그들의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의 문에 막아서 있는 겁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누군가 예수 믿고 싶어 하는데 오히려 나 때문에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없겠습니까? 오히려 내가 교회 문 앞에 서서, 이 교회를 향해 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요. 우리들 어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이나 나나 다를 바 없지요. 그러나 달라지려고 애써야 합니다. 발버둥쳐야 합니다. 죽음과 죄의 구덩이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완전한 사람으로 바꾸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애쓰고 발버둥치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 향해 “예수쟁이들, 말로만…….” 그래요. 우리도 죄인입니다. 우리도 죄 짓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거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거룩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나는 깨끗하고 거룩하고 죄가 없기 때문에 예수 믿는 거라고, 마치 나는 깨끗하고, 거룩하고, 죄가 없기에 교회 다니는 거라고, 행여나 그런 착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런 착각에 빠지면 자기를 의롭다 여기고, 그러면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해석은 하늘을 향한 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강과 복이 내려오는 문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 입니다. 그냥 모여와 주일 예배 한 번 드리고 마는 곳이 아닙니다. 문이 열려 있는 곳 입니다.
이사야 59:1-2,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오직 죄악이 너희와 너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게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하나미의 구원, 하나님의 응답은 어디든지가 아닙니다. 죄악이 잇는 곳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돌리시게 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귀를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손을 펼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늘 문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하늘 문이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죄를 용서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곧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에 들어 온 것은 건물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 안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 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늘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 향한 문이 열려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는 찬양을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드리는 제물과 시간과 헌신을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와 사랑과 평강과 복을 주십니다.

2)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힘써 지켰습니다.
무엇이 적었다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교인들의 믿음이 깊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교인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신분이나 재산 이런 것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그들은 그 적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사모했고, 그 말씀에 귀 기울였으며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 구언의 문이 열려 있음을 확신하고, 오직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10절을 보면, “인내하라는 내 말을 네가 지켰으니” 그랬습니다. 그들 역시 인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또한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신앙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교회는 그 믿음도 약하고 믿는 사람의 숫자도 적고 그들의 신분이나 재산도 별거 아니었지만 동요가 없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을 얻게 하는 이름인 것을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1:11-12,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을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행전 4:1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그랬어요.
빌라델비아교회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꼭 예수 믿어야만 되는 거냐?”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해서 예수 믿은 겁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7:24이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마치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집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사람도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집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홍수가 나면 그 무너짐이 심했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도 무너지는 사람들 그 속에 주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에 신앙생활들 유지하게 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렇다더라.”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설교할 줄 모릅니다. 웃기기도 하고 울리게도 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려고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이 곧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빌라델비아 교인이 비록 능력은 적지만, 힘은 적지만, 그래도 그들이 예수님의 칭찬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들로 하여금 칭찬 받는 믿음이 되게 하신 것 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듣지도 않고, 예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면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도 모르고, 그러면서도 그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빌라델비아교회는 하늘로부터 그리고 세상을 향해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3)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또 다른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a)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빌라델비아교회에는 자칭 유대인라고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율법을 강조했고 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겁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유대인의 주장 때문에 늘 싸워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넘어갔습니다.
사실, 갈라디아 같은 교회도 그래서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해 하신 주님의 말씀은, 끝내 그들이 돌아와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리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내겠다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이 주변에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야! 저 사람은 정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구나.” 그렇게 말 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b) “인내하라는 내 말을 네가 지켰으니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을 받을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인내 없이는 지키기 어렵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등등. 모두가 다 인내로 지켜야할 말씀들 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을 인내로 지킬 때,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을 받을 때, 주님께서 지켜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내로 말씀을 지키십시오. 그래서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 시험하려고 닥치는 시험이 있을 때 오히려 주님의 지켜주심을 경험하시길 빕니다.
c) “너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서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면류관은 먼 훗날에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구원은 먼 훗날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구원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것 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은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면류관은 이미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서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겁니다.
“내가 곧 가겠다.”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주님께서 곧 오십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신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네가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d) 집을 바치고 있는 것은 기둥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 말씀을 지키는 사람,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e)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또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의 몸에 새겨 두었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곧 하나님나라 시민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이 몸에다 새겨 두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됨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힘도 적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은능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기에 더욱 그리스도의 말씀 지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도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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