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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만유의 주재, 하나님 (행 17: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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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석공 목사 I 2005년5월1일 설교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가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내일의 주인공들에 대해서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다른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라도 적어도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과연 자기 자식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식의 성품과 적성, 그리고 재능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자기 자식이 처해 있는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입니까? 어쩌다가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을 하게 되었습니까? 물론 자기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잘못되고 있지 않습니까? 남의 일이 아닙니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제대로 기를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야 하겠지만 오늘은 간단히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그렇습니다! 첫째, 어린이들은 쉽게 노여움을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눈높이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른들이 생각할 때는 별 것이 아닌 것도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어린이들은 노여움에 그치지 않고 낙심하기 쉽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종종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린이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어른들의 생각이나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상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더욱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지극히 기초적인 이야기지만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빌립보 전도를 성공적으로 마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늘 하던 대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극심한 방해 때문에 밤에 그곳을 떠나 베뢰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베뢰아에 이른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참으로 끈질긴 방해 공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베뢰아를 떠나 아덴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작년 여름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역사상 최고의 도시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아덴은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우상이 지배하는 불쌍한 도시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의 숫자가 삼만 개가 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덴 사람들의 수보다 신의 수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덴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를 또 하나의 새로운 신을 소개하는 것쯤으로 알았습니다.

  하여간 서양 문명의 발상지답게 아덴에는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덴에서 가장 크게 세력을 떨친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였습니다. 그들은 논쟁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사도 바울과도 심한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사도행전 기자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들과의 논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에게 ‘말쟁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과의 논쟁에서 명쾌한 결론을 얻지 못하자 그를 이끌고 가서 아레오바고에 세웠습니다. 그 당시 아레오바고는 주로 재판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동시에 연설을 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기능도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이 아레오바고가 사도 바울의 설교를 위한 강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성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는 좀 더 설득력있게 자기 주장을 전하기 위해서 아덴 시민들이 잘 알고 있는 시인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사람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각각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우며 맞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도 바울은 지나치게 지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의 높은 지적 수준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에...

  그런데 사도 바울만 그런 실수를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실수는 오늘 우리 주위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 동문들은 10여 년 전부터 총동문 신우회라는 것을 조직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전국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고교 동문 신우회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 년에 두 차례 집회를 하는데 그 집회의 강사들의 설교가 별로 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박준서 박사,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목사,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 심지어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그런 강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 까닭을 듣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한 가운데 섰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부터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셨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생의 최고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 행복은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유물론을 낳았으며 향락주의를 만연시켰습니다. 반면에 스토아 학파는 범신론을 주장하며 금욕주의와 도덕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운명의 지배 아래 몸을 맡겼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창조의 하나님을 소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덴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나라의 경계를 정하시고, 그 나라들을 친히 다스리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연대를 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많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연방 국가를 이루더니 다시금 그 연방 국가가 해체되고 또 다시 독립 국가들로 서지 않았습니까? 어제의 세계 지도는 오늘 그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들의 경계가 새롭게 바뀝니다. 누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을 친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나라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해방을 누가 짐작이나 했습니까? 6.25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에서 오늘의 발전된 조국의 모습을 꿈엔들 그릴 수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 지르고 있는 휴전선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몰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용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아덴 사람들을 향해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며 그 심판자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 아덴에서 행한 사도 바울의 설교는 지나치게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의 주제는 매우 중요한 진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통치자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명백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까요? 온갖 우상 숭배가 난무하는 자리에는 결코 진리가 설 수 없습니다. 마치 아덴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설교를 새로운 지식으로 들으려고 했을 뿐 믿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바르게 앎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서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받아 누리고 장차 저 천국에 가서도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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