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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누가 크니이까 (마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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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 목사 

나이지리아의 노예시장에서 한 소년이 담뱃잎 한 푸대와 교환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도 모두 노예로 팔려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노예 상인들은 그 소년을 노예선에 태워 미국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던 중 불법노예선임을 알게 된 영국 군함에 의해 나포되었습니다. 군함의 군목은 수백 명의 노예들 속에서 총명하게 보이는 그 소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양자로 삼아 교육과 철저한 신앙훈련을 시켰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나이지리아 교회 최초의 감독 취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취임하는 감독은 세계적인 성서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 크로우더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바로 30년전 노예선에서 군목에게 양자로 선택을 받았던 그 소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한 어린이가 훌륭한 양부모를 만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아이의 인생은 어른들이 어떻게 대하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쓸모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 제자들은 예수께 ‘누가 크니이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제자들은 서로 비교의식을 가지고 천국에서 누가 더 크며, 또한 주님의 보좌 좌 우편에 누가 앉을 것이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질문하는 제자들 앞에 한 어린아이를 불러 가운데 세우고 “누구라도 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즉 큰 자의 개념을 자리가 아닌 자격의 문제라고 교훈 하십니다. 어린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며 큰 자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당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예수님께서 새롭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른이라고 무조건 어린이들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어린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며 오히려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은 제자들이 추구하는 세속적인 개념의 큰 자가 아닌 주님이 말씀하시는 큰 자의 모습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큰 자가 되려면,

첫째로 어린이처럼 순수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닷가에 어떤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 바닷가에 나가기만 하면 날아와서 어깨나 손위에 앉곤 했습니다. 그는 해오라기 얘기를 아내에게 했습니다.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잡아 올 마음을 먹고 이튿날 바닷가에 나갔더니 해오라기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해오라기를 잡으려는 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심이란 겉으로는 아닌 체하면서 속으로 품고 있는 사심을 말합니다.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갔던 소원세자에게 굴씨 라는 궁녀가 있었습니다. 굴씨는 휘파람으로 온갖 새를 불러들이고, 불러들인 새를 손가락 끝으로 마음대로 다루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지 물을 때 그녀는 기심 없는 순수한 경지에 들어가면 새도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답니다.

3절을 보면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영어 번역은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children...”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단어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change’ 이고 다른 하나는 ‘become’ 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데에 있어서 먼저 ‘change’ 인 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감을 버림으로 어린이 같은 순수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질을 대하려면 반드시 고정관념과 선입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모습으로 돌이킬 때 신앙의 사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become' 입니다. ‘become’ 이란 말은 계속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로써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되는 것을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즉 선입감과 고정관념에 좌우되지 않고 순수함을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영접하라는 강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오히려 용납하고 영접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분위기와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돌이켜' 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교활하고 약은 인간적인 신앙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함의 신앙으로 돌아가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어지기 바랍니다.

둘째로 어린이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꽃을 든 남자’ 라는 화장품의 강석창 사장의 간증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 때문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가정형편이나 개인적인 상황을 봐서는 그에게는 아무런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화장품 회사에 취직을 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실적을 인정받아 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강 사장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믿음을 가지고 회사 이름을 ‘소망화장품’ 이라고 붙였습니다. 제품이 생산되자 회사는 나날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교만해져 자기는 사업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녔다는 자만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승용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는데, 강 사장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후로 그는 교만한 마음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고백하며 지금까지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운영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낮아졌습니다. 그후 사업은 더 축복을 받아서 7년 만에 100배 이상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를 하나님은 들어 쓰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어린 아이들은 겸손합니다. 자신을 높이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 연약하여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음 알고는 철저히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 앞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고 순간 순간 주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새 날이 시작되면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그리고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라도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바로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날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항상 낮아져야 합니다. 자기를 낮출 때 하나님이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어린이를 실족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옆에 살고 있는 여자 집사님이 외출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모님에게 아이 셋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사모님은 아이들을 맡아 주었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아이들을 위하여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이 말합니다. “얘들아! 밥 먹자. 근데 너희 집에서 밥 차려 놓고 매일 하는 대로 해봐!” 내심 사모님은 아이들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눈만 껌뻑거리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얘들아! 밥 차려 놓고 엄마가 하는 대로 해보라니까.” 사모님이 독촉하였더니 둘째 아이가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새끼들아! 싸우지 말고 빨리빨리 쳐 먹어!”. 아이들은 부모가 한 대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실족케 하는 것은 전적인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자녀의 잘못은 전적인 부모의 책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기도, 말씀, 경건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의 ‘실족케 하다’인 ‘스칸달리조’ 는 ‘넘어지게 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 을 뜻합니다. 어린 아이를 타락하게 하여 죄를 짓도록 실족케 하는 것은 가장 큰 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저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에 ‘저희 천사들’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어린이들에게 수호천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자기를 지킬 수 없기에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시어 저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에게 보고 받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아이들은 철저히 보호의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저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것은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 저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어 실족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집사 한 분이 주일예배가 시작되기 바로 전 연세가 많은 목사님에게 불평을 했습니다.“목사님, 목회가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어째서 한해동안 겨우 어린 소년 한 명밖에 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가슴이 아팠지만, “그러나 저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배를 마치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워 사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그 소년이 다가오더니 “목사님, 저도 목사님처럼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그럼, 될 수 있고 말고”. 여러 해가 지난 후 아프리카에서 많은 야만인과 추장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유명한 선교사 한 분이 스코틀랜드로 돌아 왔습니다. 많은 귀족들이 이 선교사를 가정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는 주일날 목사님을 찾았던 바로 그 소년, 로버트 마펫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영적 도움입니다. 이 도움을 베풀지 못하여 어린이로 하여금 실족케 하는 것은 마땅히 멸망 받을 행위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본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진정 어린아이 같이 순수함을 회복할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자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이며, 언행심사에 본을 보여 어린이들을 실족치 아니하도록 만드는 자들입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들은 이미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어진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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