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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마땅히 행할길을 가르쳐라 (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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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옛날 장터에 약장수가 왔습니다.
  구수한 말 담과 가지고 온 원숭이 춤 꿈들의 춤 등은 시골장터에서 볼만한 구경거리였습니다. 발로 등에 멘 북을 치고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입으로 하모니카를 불며 구수한 말 담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참동안 떠들던 약장수가 갑자기 멈추어“애들은 가라”그러고서는 애들을 쫓아냅니다.
  약장수 입장에서는 애들만 있어봐야 이득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도 애들은 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막 10:13-16절까지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애들은 가라” 고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아이들이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아이들의 접근을 막았을까요?

  1) 고쳐야 할 어른 중심의 사고
  그것은 어른 중심의 사고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이 떠들고 시끄럽게 할 것을 우려하여 그랬습니다. 그러나 떠들고 시끄러운 것은 아이들의 당연한 것입니다. 병든 아이 죽은 아이는 시끄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떠들 때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은 잘 다루지 못하는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어른 중심의 사고가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며 생각하여야 합니다.
 
  2) 어린이의 영성을 이해하지 못함
  아이들의 영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린이의 영혼이나 어른의 영혼이나 영혼의 무게는 주님보시기에 동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이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영성은 어른의 영성보다 더욱 하늘나라와 가깝습니다.
  그래서 막 10:1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늘 나라가 이런 자 즉 어린이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어린이는 하늘나라의 모델입니다.

  순수성 / 때 묻지 않은 순수성이 있습니다.
  진실성 / 거짓을 모릅니다.
  단순성 /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10:15절에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늘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3) 품에 안고 축복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어린이를 안았습니다. 어린이는 품에 안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라”가 아닌 아이들을 품에 안고 축복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미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축복을 받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축복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단지 손을 얹어 안수하신 것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바뀌고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축복의 교육을 합시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주신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올바른 교육을 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본문의 말씀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신 행위가 단지 물리적으로 손을 얹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4)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의합니까?

  ①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에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 1: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법을 가르치면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엡 6:4절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라고 했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발의 등이요 인생길의 빛”입니다. 시 119:105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말씀을 주의하여 보면 주의 말씀이 길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길을 비추는 등과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걸어야할 참된 길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은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걸어야할 참된 길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가출하여 10년간을 방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길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되돌아오지 못하는 길입니다.
  꼭 한번 밖에 갈 수 없는 일방 통행의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번 잘못 들어서면 큰일 납니다. 이 삶의 길은 유일한 생명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참된 길을 찾게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요 5:39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면 그들이 인생의 참된 길이신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자녀 교육에 성경보다 더한 교과서는 없습니다. 
  딤후 3:16절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교육하는데 수많은 교과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만큼 좋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말씀과 훈계인 성경을 자녀교육의 교과서로 삼아 가르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복을 받고 바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② 신앙 생활하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두 번째로 마땅히 가르쳐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면 신앙 교육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기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의 본을 보이며 신앙생활 자체를 가르쳐야 합니다. 왜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와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이 그것을 실천하고 생활화 하는지를 유심히 살피고 지도해야합니다. 어렵고 힘들 일을 만났을 때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르쳤다면 여러분은 자식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른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는 '공부하라'는 소리랍니다. 아마 우리 자녀들이 집에서 가장 많이 듣는 잔소리가 바로 '공부하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한 통계를 보니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예절이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무례함은 용서해도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등학생들을 조사했습니다.
  '너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 50%가 공부문제, 20%가 이성 문제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순위에 문제가 있을 뿐 동일하게 고등학생들에게 고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 생활, 괜찮은 가정을 만들려면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올바른 방향에서 풀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장담합니다.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하지 말고 신앙을 강요하십시오 신앙적으로 말씀대로 사는 훈련을 시켜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인생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 길에 암 흙을 만나도 말씀은 인생길을 비추는 빛이 될 것입니다.

  크리스찬의 가정에서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세상의 공부는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지우고 그것이 자녀들을 잘되게할줄 알고 투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필요한 경쟁과 막연한 기대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자녀 우상, 공부 우상을 부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스승이 되고 자녀가 제자가 되어 새로운 가정교육을 시작되기 바랍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마땅히 행할 길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해야겠습니다.

  나이 10세 어린이 400명에게 아버지에 대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나랑 놀아 주는 분 32.2%,
  사달라는 것 모두 사주는 좋은 사람 30.5%,
  엄하게 혼내는 사람 9.5%,
  돈 벌어다 주고 날 키워 주는 고마운 사람 4.8%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죽도록 돈 벌어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줘도 4.8%의 아이들만이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영성을 심어주고 믿음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지는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공부 때문에 아이들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역사속에 큰 발자울을 남긴 사람중에 한 분은 에드워드 조나단입니다.
  그는 미국의 공황기에 영적 대각성의 큰 영향을 끼쳤고 짧은 기간이지만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을 지낸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 역시 목사의 딸이였습니다. 어떤 분이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계를 연구해 본 결과 873명의 후손 가운데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가 6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부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2명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분이 1명 그리고 평범한 신앙인이었지만 밝고 건강하게 산 후손들이 265명이였습니다.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드가 어렸을 때 그와 함께 지냈던 친구 맥스 쥬크 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나단과 함께 주일학교에 다니다가 도중에 신앙생활을 중지하고 불경건한 삶을 츠구하다가 신앙이 없는 한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쥬크가의 후손들을 추적해 본 결과 1292명의 자손들 가운데 유아로 사망한 자손이 309명 직업적 거지가 310명 질병에 의한 불구자가 440명 매춘하는 자가 50명 습관적으로 도독질하는 사람이 60명 살인자가 53명 무명의 보통사람이 53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에드워드가와 쥬크가의 비교 분석은 부모들의 신앙이 자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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