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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인 (눅 2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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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경동 목사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행동하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인사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잘해주기도 하고 못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람과 달라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배반할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눅21:61에서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돌이켜 베드로를 자비로운 눈으로 보셨습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재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4가지가 있습니다.
  1) 믿다가 실족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실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믿다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 믿다가 자살하는 것입니다.

위의 4가지 일의 배후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때문에 예수님 안 믿게 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반대로, 성령이 역사하면 감당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은 부인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에 대해, 또한 그로 인한 중요한 교훈들을 배워봅니다.

  1) 우리가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니밍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부인하게 됩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믿으면 구원을 얻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정말 조심할 것이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주님을 부인하면 안 됩니다. 만약 공산군이 나타나서 믿는 사람 죽인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믿는다는 사실이 손해가 될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담배 때문에, 작은 이익 때문에 교회 안 다닌다고 부인하지 맙시다. 오히려 솔직하게 믿음이 약함을 고백하기 바랍니다.

  2) 신앙생활은 각오와 결심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측을 잘못하면 안 됩니다. 감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뭐든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장사를 할 때는 정확한 예측이 필요합니다. 며칠은 데이터를 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서 사업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혼자 버는 사람보다 둘이 버는 사람이 부도율이 더 크답니다.
크게 벌이는 것만큼 크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확한 예측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장사를 시작하려면 잘 되는 집에 가서 점원으로 배우다가 실력이 갖추어 졌을 때 개업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업은 장난이 아닙니다. 목회도 마찬 가지 입니다. 여기서 주일학교를 잘해야 개척해서 잘하게 됩니다.
베드로처럼 각오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 맞는 객관적 실력이 필요합니다.

  3) 부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옥천에서 공부를 잘 하는 어떤 학생이 대전에 와서도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나쁜 학생들이 시험답안을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주다가 걸렸습니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수는 별 것 아니지만 그 다으멩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애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한번도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실수보다 그에 의한 충격이 더 심각합니다. 권투에서 쨉을 맞고 어찔어찔 할 수 있으나, 그 상태로 계속 있으면 어퍼컷을 맞고
KO를 당하게 됩니다. 실수 다음에 베드로는 다시 일어났지만 유다는 자살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때 저주를 쏟아 부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실수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주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사람이 실수해서 죽는 게 아니라, 실수 후유증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실수 했더라도 다시 용서해주시는 주님에게 나가야 합니다. 실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가? 그 배후에 사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까불어서 알곡인지 쭉정이 인지를 계속 시험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도 예외가 없었듯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럼, 사단의 시험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1) 근신하라 깨어라.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요즘은 도둑도 비신사적이어서 깨워서 도둑질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약해졌습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전신갑주를 입어라. 말씀의 검이 있어야 합니다. 기침소리로 도둑을 잡을 수 없는시대이기에 캡스를 걸어놓고 가스총을 준비해야 합니다.
3) 기도해야 합니다.
4) 예수님은 왜 부인하지 못하게 기도하지 않고, 돌이킬 수 있도록 기도를 하셨는가?

또한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못 먹게 지키지 않으시고 생명과일을 못 먹게 지키시는가? 조심스런 생각입니다만 그것은 인간의 실수 통해서, 회개하는 인간의 강력한 힘을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실수한 베드로와 실수 없는 베드로를 볼 때 누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주의 할 것은 하나님이 베드로를 써먹으려고 실수 시킨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한 베드로가 회개하고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며, 그 실수가 고난의 흔적이며, 더욱 주를 위해 살게 된 명분이 되었다는 겁니다. 즉,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생긴 실수가, 은혜를 받고 나서는 전화위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하지 않게 기도하지 않고, 돌이키게 기도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해석을 해 봅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십니다. (고전10:13) 주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의의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주님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시23:3~4) 환란 날에 주님을 부르면 주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시50:1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이 말씀들이 여러분에게
큰 힘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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