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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복된 삶을 위해 필요한 것 (눅 9: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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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 행복한 가정을 만드십시오 >

1863년 이른 봄, 미국 남북전쟁 중에 북군 밴드가 자신들의 군가인 성조기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군은 이에 대응해 딕시(Dixie)를 연주했습니다. 그렇게 노래 싸움이 벌어지다가 북군 밴드가 갑자기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연주했습니다. 그러자 곧 주위가 조용해지더니 남군 밴드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살벌한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이 모두 목 놓아 ‘즐거운 나의 집’을 불렀습니다. 그날 그들은 24시간 동안 휴전을 약속하고 전 병사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위해 많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자녀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남겨주면 자녀들은 이 땅에서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를 얻게 됩니다. 그런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녀는 훌륭한 자녀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 자녀의 복된 삶을 위해 필요한 것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일입니다. 자녀 교육은 가장 거룩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녀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그 자녀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복된 자녀로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복된 자녀가 천국을 확장하고,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을 살릴 것입니다. 그처럼 복된 자녀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 교육

한국 부모들은 교육열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인성 교육은 잘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1등을 하면 좋습니다. 며칠 전에 첫딸 은혜가 난생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공부가 아닌 달리기에서 1등을 했는데, 달리기라도 1등을 하니까 그날 몇 시간 동안 교회에서 말씀 준비를 하면서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마 공부를 1등 하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자녀가 공부를 잘해주면 부모는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 책만 파고들면 편협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의 안목을 넓혀주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가끔 고액과외를 시키는 분들을 봅니다. 차라리 그 돈을 가지고 여행을 한번 보내주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운동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체력은 국력이고, 체력은 실력입니다. 앞으로 많은 것이 자동화되고 기계화 될 때에는 더욱 체력이 실력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에게 순종하는 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자녀 교육의 성공사례로 유명한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꺾어버려라.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자녀들의 잘못에 눈을 감는 부모는 잔인한 부모이다. 그러면 자녀는 악습을 끊지 못할 것이고, 결국 자녀는 멸망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순종하는 성품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반항할 때는 반드시 그 고집을 꺾어 놔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자녀는 나중에 윗사람에게도 고집을 꺾지 않고 하나님께도 고집을 꺾지 않게 됩니다. 결국 그 자녀는 사회와 교회에서 적응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 좋으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자녀가 좋으라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 훈계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마음아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를 훈계하면서 누가 좋겠습니까? 부모는 자녀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입니다. 자녀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에게도 무서운 죄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훈계가 없으면 자녀는 부모 위에 군림하게 되고 부모는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자녀에게는 불행이 시작이 됩니다.

아무리 자녀가 사랑스러워도 엄하게 훈계할 때는 훈계해야 합니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더 머리가 크기 전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의 앞날이 행복해집니다. 일찍 마음이 아프면 나중에 마음이 아픈 일이 적게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순종심과 존경심을 길러 주고 좋은 습관을 길러 주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들을 바람처럼 키우지 말고 반석처럼 키우려고 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별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수시로 학원을 바꾸고 자녀들의 불평소리를 듣고 쉽게 유치원을 바꾸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 조치는 머리에는 플러스가 될지 몰라도 마음에도 마이너스가 됩니다. 성적은 올라도 태도는 나빠지고, 지식은 조금 올라가도 지혜는 많이 떨어집니다.

자녀가 불평할 때가 어떻게 보면 자녀에게 있는 약점을 치유할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그때 참지 않고 금방 환경을 바꿔주면 인내를 배우고 고난을 극복하는 좋은 교육 기회를 잃게 되고, 선생님과 윗사람을 존중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얼마나 그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바람처럼 떠돌면 결국 불행하게 되고 반석처럼 뿌리를 내리면 결국 행복하게 됩니다.

가끔 자녀들이 “교회가 재미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는 재미로 다니는 것이 아니란다.”고 하면서 꾸준히 다니도록 격려하고, 자녀가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아도 그 현장을 회피하지 않도록 해야 상처 치유의 능력과 문제 극복의 능력이 커지고, 나중에는 자녀의 약점도 장점이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조금 불평해도 금방 교회를 옮기게 하면 나중에 커서는 이미 통제하기 힘든 자녀로 자라나게 됩니다.

결국 부모의 통제를 받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사회의 통제, 환경의 통제, 그리고 하나님의 통제와 시험을 받게 됩니다. 거기에서 고난이 시작됩니다. 결국 부모가 자신의 리더십을 포기함으로 자녀를 고난과 시험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셈이 됩니다.

우리는 자녀의 교육을 학교나 학원에 맡기지 말고 우리 자신이 부모로서 최고의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보게 하느냐? 무엇을 듣게 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앞날이 결정됩니다. 일전에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스캔들이 많았는데, 그 바람둥이 기질은 그가 핫 스프링이라는 유명한 온천 유원지에서 현란한 네온사인과 퇴폐적인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부모가 인터넷을 통해 도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술 먹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험한 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비소’를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비소를 조금 먹으면 처음에는 아무 영향도 없고 오히려 피부가 좋아지지만 계속 먹으면 결국 죽게 됩니다. 부모가 함부로 행동해도 자녀에게 아무 영향이 없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자녀들도 그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불평했습니다. “야! 우리 집 꼰대 말야! 잔소리 때문에 미치겠어!” 그러자 옆에서 친구가 듣고 말했습니다. “정말 너희 꼰대! 아주 심하더라!” 만약 자녀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책임의 거의 대부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가 말을 잘하면 절대로 자녀에게는 그런 말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욕을 하니까 자녀도 욕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자녀들이 고집 부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하고 고집 부리며 산 죄를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실상 자녀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신앙과 인격을 비쳐 주는 가장 정확한 거울입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아빠의 흰머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빠! 흰머리는 왜 생겨요?” “네가 아빠 속 썩이니까 생기지.” 그때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흰머리는 아빠가 속 썩여서 그렇게 많이 생겼어요?” 우리가 본이 되지 못하면 자녀도 그대로 됩니다. 결국 나중에 다 자신에게 고통으로 돌아옵니다.

저도 약 3년 전에 어떤 문제로 아내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아직까지도 그 일을 기억합니다. 저도 그때 은혜의 눈이 난생 처음으로 아주 불안한 눈빛이 되었던 것을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녀 앞에서 항상 언행을 조심하고 본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2. 사랑

자녀를 바르게 잘 키우려면 교육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교육이 없는 사랑도 문제이지만 사랑이 없는 교육도 문제입니다. 물론 부모들은 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랑법이 문제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사상만 주려고 하지 말고 사랑을 주려고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려올 때 제자들은 “애들은 가!”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분노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아이들을 가볍게 여겼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그처럼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옛날에 서울 동대문 운동장 앞 광장에서는 거의 매일 약장사가 온갖 화려한 무술과 차력을 선보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는데 앞자리는 주로 아이들 차지입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아이들을 그냥 놔두다가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 약장사들은 “애들은 가!”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왜냐하면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약은 하나도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은 “나는 아이들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습관적으로 아이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들을 훈계할 때는 엄하게 훈계해야 하지만 존중할 때는 힘써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아이들은 헌금도 안 하고 귀찮게만 한다고 소홀히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앞의 계산만 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내일의 희망입니다. 그런 시야를 가진 교회가 희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48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어린아이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사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 건강한 영혼일수록 어린이와 약자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은 욕먹을 행동도 많이 하지만 장애인과 노인과 어린이들의 천국입니다. 그처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대할 때 상품으로 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나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는 한풀이의 도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야!”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그렇게 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녀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권리를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고 우리의 의무와 사명만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잘 이끌어 주되 협박하지 말고, 공부를 가르치면서 대가를 기대하지 말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녀에게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야 합니다.

요새 한나가 입에서 “컥컥!”하는 마른기침을 합니다. 듣기에도 안 좋고 성대도 상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합니다. 그래서 몇 번 그 얘기를 하다가 그쳤습니다. 너무 많이 하면 잔소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잔소리가 되면 교육효과는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만 됩니다. 그래서 요새는 적절하게 때를 가려서 그 소리를 하려고 조심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잔소리를 절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런 절제는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왜 부모가 잔소리를 합니까? 분명히 자녀를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절제가 없는 잔소리는 자녀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잔소리로 자녀의 실패를 다 막아보겠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자녀에게 실패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잔소리 한 마디를 더 절제하는 모습이 자녀에게 훨씬 유익이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자녀의 형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소중한 한 인격체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말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 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자녀를 유능한 사람으로 키우기 전에 먼저 유쾌한 사람으로 키우고, 세상의 유명한 사람으로 키우기 전에 먼저 세상의 유일한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3. 비전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고 하는 문제로 다퉜습니다. 그러나 사실 “누가 크냐?”하는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누가 지금보다 더 자라서 크게 될 것이냐?”고 하는 문제입니다. 어른은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쑥쑥 자랍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우습게보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원형극장에서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형을 받아도 결코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때 어린이들도 대부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처럼 어떤 때는 어린이들이 더 담대하게 순교하고, 더욱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녀를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만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 자녀들은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희망을 잃지 않으면 자녀들도 자신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은 한 자녀가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어느 날, 미국 트루먼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고향 미주리 주의 한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인기 있는 반장이셨지요?” 그때 트루먼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정반대야! 내가 어렸을 때는 눈이 나빠서 안경이 없으면 보지도 못했고, 재주도 없었고, 운동도 못했고, 누가 큰소리만 쳐도 벌벌 떠는 겁쟁이였단다.”

그러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 그때 트루먼이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을 믿고 무슨 일이든 중단 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단다. 너희들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어.”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 자녀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손자들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용기와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내일의 주인공이 되면 됩니다. 사실 오늘의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내일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훨씬 큽니다.

그러므로 지금 작은 존재라고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48절 하반부 말씀에서 주님은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 이가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작은 자임을 자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작은 작은 자에게 더 관심을 주시고, 큰 자로 보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스스로 큰 자라는 생각이 들면 회개에 나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작게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되십시오. 그러나 항상 작은 자를 자처하십시오. 크게 된 사람이 작은 자로 자처해서 생기는 그 거리의 차이가 행복의 크기입니다.

예를 들어, 100미터의 성공을 이룬 사람이 50미터만 간 사람처럼 자처할 때 50미터의 행복이 주어질 것이고, 1000미터의 성공을 이룬 사람이 50미터만 간 사람처럼 자처하면 950미터의 행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100미터의 성공을 이룬 사람이 200미터 간 사람처럼 자처하면 100미터의 불행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힘써 성공하고, 반대로 힘써 작은 자를 자처해야 합니다.

요새 왕자병, 공주병이라는 유행어가 떠돌아다닙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만 왕자병은 불행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 병에 걸리면 소망이 없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작은 자를 귀하게 여기고, 작은 자임을 자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작은 모습이라고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내일의 가능성을 보고 내일의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에게서 숨겨진 가능성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와 우리 서로를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끊임없이 희망을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자를 기필코 큰 자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4. 기도

우리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하고 잘 교육해도 자녀의 앞날의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결코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달라는 기도만 하지 말고 아이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부모의 축복, 이 두 가지입니다.

본문 4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부모가 무엇보다 잘해야 할 일은 자녀를 데려다가 주님 곁에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두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가진 부모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쓰 대장의 사모님은 6자녀를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녀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 사모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귀가 자녀들에게 손을 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드려서 길렀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어렸을 때에는 반 강제적으로라도 신앙적 태도를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성수, 감사생활, 봉사생활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시야도 열어주고,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얘들아! 우리가 선교사님 한분을 선택해서 같이 기도하자!”고 하면 그 한 마디가 아이들의 정서와 영혼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용돈을 통한 십일조 생활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 용돈의 십일조가 교회에는 큰 보탬이 되지 않아도 정작 아이들 자신의 영혼에는 큰 보탬이 됩니다. 그처럼 어렸을 때부터 십일조를 드리며 자란 아이가 탐욕스런 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탐욕만 없으면 행복은 상당히 가까워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어렸을 때부터 헌금생활을 잘 가르치는 것은 교육 중의 최고의 교육입니다.

그처럼 어렸을 때에는 반 강제적으로 신앙생활을 시키다가 사춘기가 되면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성인이 되어가는 자녀에게 강제적인 모습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는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는 부단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자녀를 제대로 키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100점 만점의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가 비뚤어지는 데에야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속수무책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 자신마저 제대로 콘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녀를 제대로 콘트롤하겠습니까? 우리의 잔소리가 무슨 큰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부모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입니다.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먼저 천국에 가면 아이들은 어떻게 살까?” 아마 천국에 가신 저희 아버님도 한때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다 잘 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은 앞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부모님이 아닌 영원하신 부모님인 하나님이 우리 뒤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가끔 자녀들이 잘못하는 점이 보이고 자신의 약점을 쏙 빼닮은 점이 보이면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의 기도를 먹고 자란 자녀는 누구보다 잘 자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를 위해 할 일은 염려하는 일이 아니라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우리가 천국으로 가도 우리가 했던 기도는 영원히 남아 자녀의 앞날에 큰 축복의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처럼 자녀를 사랑으로 잘 교육하고,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함으로 자녀를 잘 양육해서 여러분들의 각 가정들이 복된 자녀를 배출하는 거룩한 산실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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