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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바른 성장 (눅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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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어린이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다 들어있습니다.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도 수천만 명을 죽게 하는 사람도 다 어린이 속에 있습니다. 그 안에 구세주도 마귀도 다 들어있습니다. 예술가도 있고 스승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고 세상에 폐나 끼치는 인생도 다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정말로 잘 키워야만 합니다.

신자들을 하나님의 어린이라고 한다면 역시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얼마나 잘 성장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어린이이기 때문에 계속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잘못되었다면 그때부터 다시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나이 늙어 80이 되었을 때 모세는 늙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을 날만 남았어요. 사실 40세 이후는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르쳐주는 대로 배웁니다. 그는 급속도로 성장해 엄청난 일을 합니다. 세상에서의 배움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배움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1. 교육: 상층부를 향한 몸부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잘 자라게 합니다. 건강하게 만드는 거지요. 그러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주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습득하도록 훈련시킵니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의 집단에 속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그 시대 그 문화의 상층부를 이룹니다. 권력과 부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이 사회 상층부에 들어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합니다. 자녀들이 높아지면 자신도 그렇다는 만족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굶어도 자녀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록 모든 힘을 다합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서 돌아와 높은 위치에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아니 아예 세계의 상층부인 미국 귀족사회에 도전도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나 세상의 삶은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좋은 대학에 준하는 교육과정이 있고 또한 상층부에 해당하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노력하고 도전들을 합니다. 이 점은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서울 대학을 마다하고 유학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하나도 안 달라요.

예수 믿는 사람도 죽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들어갑니다. 또한 사회에서도 죽도록 노력해야 좋은 직장을 얻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인간관계도 잘해야 합니다. 교회에 간다고 회사일을 우습게 본다면 절대로 상층으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하나님이 먹여주기만 기다린다면 언제나 남의 신세만 지다 말지요.

그러나 신자는 세상 사람들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보다 나아야지요. 신자들이 욕먹는 이유가 안 믿는 사람보다도 못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어떤 점이 그들보다 나아야 하나요? 가장 좋은 모델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신자들에게 모든 면에서 모범입니다. 그저 “이럴 때 예수는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해보는 연습하면 됩니다.

예수는 어떻게 성장했나요? 혼자서 명상하는 특별한 아이였나요? 하나님과 대화하며 산속에서 이상한 행동하면서 보냈나요? 그저 기도만 했나요? 아니면 공부만 했나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아이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많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세상 아이들과 모든 게 같아서 그들 중 하나였나요?

성경에 그 내용이 설명됩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앞부분까지는 보통 아이들도 합니다. 특별히 잘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뒷부분이 함께 있어야 중요합니다. 뒷부분만 있으면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강하고 지혜로우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뒷부분이 먼저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세상에서도 잘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은 돈 많이 벌고 높은 사람 되고 그래서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생각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것보다는 몸이 건강하고 삶과 영적인 지혜가 충족하며 특별히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2. 신자의 교육

“어린이는 어른의 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시인 워즈워즈의 시 “무지개”에서 나왔습니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은 설레노니/어린 시절 그러했고/다 자란 오늘도 매 한가지/늙어서도 그러리라/안 그러면 차라리 죽어야지/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매일의 모든 일이/자연에서 찾는 경건으로 매어지기를. 신앙인의 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시발점이 되어서 모든 것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욕심이 시발점입니다. 목적지는 세상 구조의 상층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오르기를 원해요. 복권으로 단번에 이르려 합니다. 사기나 강도짓도 남의 것을 빼앗아 상층부에 가려 하는 겁니다. 거기 가면 대접받고 행복하리라 믿는 거에요.

자연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5월의 태양과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은 분명히 상층부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거기에 도달할 길은 전혀 없어요. 다음의 상층부는 산입니다. 거기 도달하려면 땀을 흘리며 올라가야 합니다. 단번에 거저 가고 싶지만 아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위의 바위 하나 꽃 한 송이 아래에서는 만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을 말하고 있어요. 무조건 위를 향해서 올라가려합니다. 왜 그럴까요? 공부하는 아이들은 왜 공부하는지를 몰라요. 그저 막연히 대학가고 돈 많이 벌려고 그래요. 그렇게 고생하며 올라가 보세요. 여전히 더 높은 산이 저 앞에 있습니다. 힘드는 데 그만할까요? 너무 허무하지요. 무조건 올라가기만 할까요? 자연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서서 걷게 하셨나요? 짐승은 몸 위에 머리가 있지 않아요. 원숭이와 사람의 구조적 차이입니다. 비슷하게 생겼어도 원숭이는 머리 중간에 목이 붙었어요. 사람만이 목 위에 머리가 얹혀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늘을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짐승과 다르게 사람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보고 있어요. 둘을 다 보아야 제대로 됩니다.

얼마나 자주 하늘을 보십니까? 하늘을 보아야 무지개도 봅니다. 가슴이 꿈으로 넘쳐 뛰게 됩니다. 하늘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아무리 세상 산이 높아도 하늘에서 보면 다 같습니다. 인간 것이 아무리 훌륭해도 하늘에서 보면 큰 차이가 없어요. 나이가 들어 이제 하늘 보기를 중단했나요? 그러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겁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을 보면서 자라났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몸도 건강합니다. 지혜도 넘칩니다. 무엇보다 무지개처럼 은혜가 그 위에 있습니다. 하늘의 축복 속에 땅의 것들이 다 유익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그저 땅의 것으로 충만한 사람은 짐승보다 나은 게 없어요.

“어린이는 어른의 부모”입니다. 어른은 어린이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 순수함과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면서 도전하는 겁니다. 특별히 예수의 어린 시절은 모든 사람의 귀감입니다. 그는 하늘에도 땅에도 치우치지 않았어요. 물론 순서는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로부터 힘을 받아 사람들을 사랑했어요.

3. 우주적인 상층부의 사람

예수는 모두가 보고 부러워합니다. 우주의 최상층부입니다. 아무 것도 안 가진 것 같아도 모든 것을 가졌어요. 믿음으로 무엇이든 다 불러올 수 있어요. 원하는 모든 것은 다 누릴 수 있어요. 분명히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입니다. 그는 이 땅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통 털어 영원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장하는 모습에서 배워야만 합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영어 위해서 혀를 수술해 주면서 하나님과 관계는 무관심합니다. 어때요? 영어 못지않게 신앙 실력도 늘려주려고 노력하나요? 하나님 잘 믿으면 영어도 잘합니다. 아니 영어 좀 못해도 하나님 잘 믿으면 잘 살 수 있어요.

교회 나와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순전히 땅만 보면서 그럴 수 있어요. 목사가 되어서도 관심은 순전히 물질이요 명예일 수 있어요. 하나님이 보시는 상층부는 세상적인 위치가 아닙니다. 상층부에 해당하는 믿음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늘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사람의 사랑 받으려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있는가?”

하나님 사랑을 받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지식과 믿음이 상층부로 이끌어줍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알고는 완전히 방법을 바꾸었어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이 지식이 그를 즉시 최상층부로 올려줍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8)

최상층부의 기쁨과 능력은 누리고 써먹어야 합니다. 예수처럼 하면 됩니다. 예수는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거나 휘두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려와 섬겼어요.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처럼 무조건 상층부에 있다고 존중하지 않으셔요. 거기서 그 위치와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십니다. 믿음으로 행동해 열매를 많이 맺을수록 귀하게 여기십니다.

내 힘으로는 산에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내 힘으로는 안 되지요. 하나님이 올려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로 불러올리십니다. 에녹이 그러했고 엘리아가 그랬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고 했습니다. (엡2:6)

세상이나 하늘에서나 상층부는 섬기기 위해서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세상적인 힘만 있지만 하늘에서는 영적 초자연적 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할수록 세상의 삶도 더 질서와 능력을 발하게 됩니다. 세상을 비추고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초대교인들처럼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성장이 우리 속에서 계속 되기를 기원합니다.

QT질문: 1. 나이 많은 모세가 어떻게 큰일을 했나요? 2. 세상 교육과 신앙 교육의 목적 차이는? 3. 하늘과 땅을 동시에 보기란? 4. 우주의 상층부에 이르는 길은? 5. 신자가 상층부에 오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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