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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는 아이 (삼상 2: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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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양인 목사

오늘은 5월의 첫 날입니다. 5월, 참 좋은 절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5월에 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좋은 일들이 많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 시대의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는데 엘리는 사사와 제사장을 겸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의 뒤를 이은 사무엘은 최후의 사사입니다.
사무엘 다음에는 사울이 등장해서 왕국시대를 엽니다.

사사 시대의 말기에 이스라엘의 형편은 매우 어지러웠습니다.
사사기는 모두 21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장에서 삼손이 죽는 것으로 사사들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17장부터는 사사 시대 후기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나 하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쓰이는 말을 빌면 성직매매와 성직의 타락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의 한 떠돌이 청년이 돈에 팔려 미가라는 사람의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돈에 팔려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는 청년은 강한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니까 얼른 그 편에 붙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걸음 더 나가서 동성연애가 성행한 것을 알려주는 내용, 끔찍한 집단 성폭행 이야기가 나오고  이에 따른 잔인한 보복과 동족상쟁,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되다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 25)라는 말로 사사기가 끝납니다.
그리고 사무엘상이 시작되는데 형편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 때 지도자인 엘리는 노쇠하였습니다.
그 때 사사나 제사장은 세습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지도자들의 자녀들은 성실함과 경건함에 있어서 본을 보여야 하는데 엘리의 두 아들은 반대였습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배로서 온갖 못된 짓을 다 하였습니다.
흡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는데(삼상1: 3) 이 모양이었습니다.
늙은 아버지 엘리가 두 아들에게 그렇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면합니다,
25절을 보세요.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얼마나 간곡한 권면입니까?
사람에 대한 범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 앞, 10절, 한나의 기도시 가운데에도,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3장 1절의 말씀은 그 때 사회의 절망적인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 참 큰 문제입니다. 제일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공기가 있어야 살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희박했다는 것은 영적인 공기가 매우 부족했다는 말입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이 말은 신비체험의 하나인 환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소망을 가질 수 없었다, 이상을 품을 수 없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상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때는 꿈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형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되는 말씀이 한 줄, 오늘 본문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26절의 말씀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이것은 단순히 사무엘이라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커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어두움을 밝게 해 줄 어린이가 자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설교의 핵심이요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우리의 어린이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도록 하십시오,
교회는 교회학교의 어린이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도록 힘써야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어려운 시대, 어두운 시대에 사무엘이 그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어린이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학교의 어린이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도록 힘써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되어야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은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 대해서는 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한나는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어머니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있습니다.
사무일의 아버지 엘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상 1장 1절은 엘가나의 조상을 네 대에 걸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성경에 조상들의 이름이 길게 나오면 집안이 좋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언자들 가운데는 스바냐가 네 대에 걸쳐 집안이 소개되고 있는데(습1: 1) 스바냐는 왕족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자기가 사는 라마다임소빔에서 실로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삼상1: 3)
온 집안이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렸습니다.(삼상1: 21)

엘가나는 이해심이 많고 너그럽고 매우 성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한나가 임신하지 못해 울고 먹지 아니할 때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삼상1: 8b) 위로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 시대의 소망으로 자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좋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였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 11)

서원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들을 두고 이와 같은 서원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주님께 드린다는 것은 꼭 목사 만들고, 선교사 만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어닙니다.
‘이 아이를 구별된 아이로, 성별된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아이에게 ’너는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늘 알려주겠습니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아기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아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약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유아세례와 아동세례 식을 행하는데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 가운데는 유아세례대신에 ‘이 아기를 주님께 바칩니다.’ 하는 헌아식을 갖는 교파도 있습니다. 
유아세례 식도 하고 헌아식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일 년에 한 두 번, 때를 정해 그 기간에 출생한 아기들을 데리고 나와 ‘이 아기를 주님께 바칩니다.’ 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사무엘이 그 시대의 소망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이와 같은 서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 시대가 어둡고 어려울 때 사무엘처럼 소망으로 자라는 아이가 있었던 것을 알려주는 한 줄 기록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한 모세가 자라고 있었습니다.(히11: 24~25)
오늘 아침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에서 말씀드린 일인데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예언운동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끊어졌습니다.
말씀의 공백상태, 말씀의 진공상태가 깊어갈 때 성경은 한 아기가 그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의 말씀입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이 아이 세례 요한은 드디어 그 공백을 깨뜨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 1) 외칩니다.
말씀운동의 불씨를 일으켰고 예수님이 그 불씨를 이어받아 말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성경에는 꼭 두 군데에만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는 누가복음 1장 40절입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또 하나는 누가복음 1장 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두 말씀은 모두 ‘예수가 그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앞으로 될 일을 슬쩍 암시하는 것을 복선이라고 하지요.

저는 지난 주간에 몽골 출장을 잘 다녀왔습니다..

몽골 출장에서 먼저 깨달은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에 떠나서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사흘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금요일에 돌아왔습니다.
화요일에 울란바토르에서 45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의 몽골인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희 내외와 이상규 장로님과 권청자 권사님 내외분, 현지 선교사 세 분, 선교사 자녀 한 명, 몽골인 통역, 아홉 명이 일행이 되어 갔습니다.
450Km이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이겠는데 도로 사정이 너무 나빠서 승용차로는 가지 못합니다. 지프차를 가지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녀올 수 있었는데 권청자 권사님이 싼 김밥 도시락을 중간에 먹으면서 하루 종일 갔습니다.
아르바이르헤르라고 재작년 저희 교회 단기선교 팀이 가서 한글학교를 아주 성황리에 개최했던 곳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이름이 영원한 구원의 별 교회인데 저희 교회 단기선교 팀이 갔을 때는 교회 건물이 작고 초라했습니다.
지금은 붉은 벽돌 교회당이 거의 완공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그곳의 숙박시설에서 잤는데 시설이 너무 빈약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배를 드리는데 바울의 선교여행을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바울이 혼자 일을 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사역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몽골의 선교사들은 서로 잘 협력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계속해서 더욱 잘 협력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해외에 나갈 때 어디 선교여행이라고 하지 않고 어디 출장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것은 제가 교회 밖의 기관생활을 오래 하면서 출장이라는 말을 많이 써서 그 말에 익숙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지만, 요즘 선교여행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어디 놀러가면서도 선교여행이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 날 역시 하루 종일 걸려서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돌아와서 바로 감리교 선교사님이 담임하고 있는 어린양교회의 수요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역시 저희 교회 단기선교 팀이 방문했던 교회입니다.
어린양교회와 목양교회, 이름이 비슷해서 친밀감을 갖도록 하면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는 이상규 장로님이 부총장으로 수고하고 있는 후레정보통신대학, 이용규 집사님이 교수로 수고하고 있는 몽골국제대학, 이용규 집사님의 부인인 최주현 집사님이 소장으로 수고하고 있는 몽골영양개선연구소, 연세대학교에서 세운 연세친선병원 등 여러 선교기관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상규 장로님 내외분이 출석하고 있는 울란바토르 한인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드렸고, 감리교 선교사님들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 셋을 방문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들 스무 분을 모아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고, 후레정보통신대학총장님과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후레정보통신대학 총장은 김영권 박사님인데 내외분이 감리교 장로입니다.

짧은 시간인데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도들의 기도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상규 장로님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많은 수고를 하고, 현지 감리교 선교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협력해 준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성도들의 기도 때문입니다.

금요일 오후에 교회에 돌아와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주보원고를 작성하고, 교사양성교육 강사를 영접하고, 남자속회 인도자와 속장 교육을 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금요심야합심기도회 사회를 보기 위해서 단에 올라 합심통성기도를 하고 있는 성도들을 보는 순간에 그것이  깨달음으로 확 다가 왔습니다.
사실 아르바이르헤르에서 돌아오는 길에 위험한 일도 있었습니다.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성도 여러분의 기도 때문이었다는 것도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너무 강렬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욱 더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이런 모습으로 응답 받습니다.

이제 몽골 출장 중에 오늘 설교와 관계있는 내용입니다.
몽골은 샤머니즘과 라마 불교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 심성이라고 하는 샤머니즘이 몽골에서 온 것입니다.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소 떼, 말 떼, 양 떼, 이런 가축 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와 함께 언덕마다 우리나라 성황당과 거의 같은 돌무더기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몽고말로 어워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은 이제는 종교적인 기능보다 민속문화가 되어버린 느낌도 있는데 몽골에서는 이 어워가 종교적인 기능이 강합니다.
그런 가운데 선교사들이 들어가 많은 선교기관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활발하게, 뜨겁게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기관들 가운데는 기독교 교육기관들이 많습니다.
후레정보통신대학, 몽골국제대학, 울란바토르 대학 같은 고등교육기관들뿐만 아니라. 각급 교육기관들을 많이 세워서 기독교장신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치원도 여럿 있습니다.
이상규 장로님 내외분이 사시는 아파트 제일 아래층에 한 집사님이 경영하는 유치원이 있습니다. 원장인 집사님은 할렐루야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인데 꼭 몽골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그 집사님이 지방에 갈 때 같이 갔는데 저는 그 분이 몽골인 통역인 줄 알았습니다.
설교하기 전에 오늘 설교의 내용은 이런 것이고, 설교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런 뜻이니까 어떻게 통역해야 하는지 준비하라고 알려주려고 하니까 한국 사람이랍니다.
일행 가운데 꼭 한국 사람처럼 생긴 자매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몽골인 통역이랍니다.
이 집사님은 여름 방학이 되어 유치원이 쉬게 되면 지방에 나가서 교회를 중심으로 자비량으로 유치원을 통한 단기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것을 보면서 몽골이 지금은 기독교 인구 1% 정도인 3만 명으로,  영적으로 매우 약하고 힘들지만 앞날은 무척 소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몽골은 1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32.6%이고 15세에서 24세 까지가 전체 인구의 22%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교육기관들 가운데 초, 중, 고의 정규과목을 모두 가르치는 기관이 있습니다.
예능과 외국어도 가르치고 농장도 운영하는 학교인데 1997년 9월에 아시아문화개발협력기구(IACD)라는 선교기구에서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의 설립목적을 보니까 첫 번째가  기독교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회복을 지향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국제화된 교육을 지향하고 영적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인 10명과 현지인 30명이 교직원으로 수고하고 있는데 이 학교의 이름이 밝은 미래학교입니다.
이름이 참 상징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몽골의 미래를 영적으로 밝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 가운데 26절을 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우리의 자녀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랄 때 하나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호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랄 때 사람들의 은총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성소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홉니와 비느하스가 행패를 부립니다.
제사를 드리려고 가지고 온 고기들을 먼저 빼앗습니다.
속이 참 상하는데 보니까 착실한 소년 하나가 여호와의 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년을 주목하고, ‘아 저 소년이 자라서 성소의 일을 맡으면 우리가 참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겠다.’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무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얼마 뒤, 이스라엘은 큰 위기를 만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전을 당하고 생명보다 더 귀한 언약궤를 빼앗깁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 때가 가까웠는데 이 소식을 듣고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절망적인 말을 하고 죽습니다.

이스라엘은 존망의 위기 앞에 놓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던 아이 사무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7: 3)

그리고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회개의 기도, 구국의 기도 운동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왕국시대라는 새로운 역사가 열리게 해 주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기 하나님의 등불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성막에 켜게 되어 있는 등불을 말합니다.
이 등불은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으로 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아침이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어두운 때였지만 이 시대의 소망인 사무엘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 교회의 어린이들이 이 등불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불빛이 더욱 밝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자녀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도록 하셔야 합니다.
젊은 성도들은 자기의 자녀들이, 나이든 성도들은 손자 손녀들이 그렇게 되도록 하세요.
이 교회의 어린이들이 이 시대의 소망으로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은 부모, 좋은 교사, 좋은 모범을 보이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자녀들을, 어린이들을 하나님께 드려진 아이로, 성별된 아이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하여 우리 모두가 이 세대와 다음 시대에 대해 소망을 갖고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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