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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까? (잠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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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기 목사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졸릴 때 눈꺼풀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자녀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어지간하면 돈으로 할 수 있고, 어지간하면 권력으로 할 수 있고, 어지나간하면 법으로 할 수 있는데, 내 몸에서 난 자식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법으로도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신나는 것이 자식 자랑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자식 자랑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걱정이 큽니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똑똑한 자식을 만들겠다고 아예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부터 교육합니다. 소위 태아 교육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태아 교육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태아는 몇 주만 자나면 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해 기분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머니의 느낌에 따라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태아 교육이 잘되면 저절로 아이가 제대 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아기는 후천적인 영향 곧 자라면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지금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의 과제는 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주며, 이 주변 환경에 대해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게 하느냐 하는 겁니다. 할 수만 있으면 좋은 환경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부모가 간섭하여 모든 것 다 치워주면 아이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약해집니다.
해방 5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의 체격은 켜졌는데 체력이 약해졌습니다.
지금 4. 50대는 기다렸습니다. 배가 고파도 기다렸습니다. 낮에 손님이 오셔서 과자라도 주고가면 저녁에 아버지 오셔서 보시고 먹으라는 허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밥 주세요” 그러면 말 떨어지기 무섭게 해주어야 합니다. 기다릴 줄 모릅니다.
욕먹으며 자랐습니다. “나가 죽어라” 그래도 나가 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자라면서 “나가 죽어라” 그런다고 나가 죽었으면 지금 살아남은 사람 몇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가 죽어라” 그러면, 나가 죽든지 아니면 나가 죽어라 한 사람을 죽이든지 합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겁니까? 다 부모들이 만든 겁니다. 그래 놓고는 “우리 아이는 약해서 내가 해주지 않으면 안돼” 그럽니다. 그러면 결국 그 아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환경에서도 바르게 적응하며 살도록 해야 합니다. 보세요.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는 겁니다. 어떤 환경이 중요하냐가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맹모삼천’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의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세 번 이사했다는 겁니다. 결국 학교 주변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 주변은 어떻습니까?
어려서부터 볼 것 안 볼 것 다 보고 자랍니다. 인터넷은 말 할 것도 없고, 길가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만 보아도 야한 그림, 야한 글이 있어 늘 오고가며 봅니다. TV만 켜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성공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사회는 근거리에 있는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목사님, 우리 선생님, 동네 통장 등
지금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됩니까?
어떤 아이가 가족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싶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의 대답은 “뒤에 그렸습니다.” 그래서 뒤를 보니 아버지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왜 뒤에다 그렸느냐?”고 묻자, 아이는 “아버지가 늘 늦게 들어왔다가 일찍 나간다. 그래서 뒷방에 가두어 두었다.”고 대답하더랍니다.
현대의 아버지들, 자식이 “아버지!” 하고 부르면 천원을 줍니다. 아들이 자기를 부른 이유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몇 학년 몇 반 몇 번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의 담임선생님 이름이 무엇인지, 여러분의 자녀가 무슨 책을 즐겨 읽는지, 무슨 음식을 즐겨 먹는지 요즈음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아이의 욕구를 채워 준다고 부모의 일을 다 한 것 아닙니다.
어느 아버지는 큰 공장에서 일 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아이가 노는 날, 그 아이를 직장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따라 다니며 신기한 듯 둘러보았습니다. 또 노는 날, 일하러 나가는 아빠를 보고 딸이 함께 놀아 주지 않고 일하러 간다고 불평할 때, 그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애, 아버지 하시는 일은 정말 굉장해. 아버지께서 그 일을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단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브리핑을 해야 합니다.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는 왜 늦게 들어오는 지를 자식들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존경하는 것 아닙니다. 아버지의 하시는 일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면 자식은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케네디 공항 옆에 나가디아 공항이 있습니다.
나가디아는 미국 뉴욕시장 하셨던 분입니다. 그가 법관일 때, 남의 것을 훔치다 잡힌 할아버지를 담당했는데, 할아버지의 말이 “며칠 굶었더니 눈이 침침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벌을 받더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훔쳤다.”는 겁니다.
나가디아 재판관은 “벌금 18불”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벌금은 내가 낸다. 이런 분이 있는데 같은 시민으로서 난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냈다 내 책임을 느낀다.” 그러면서 모자를 벗어 서기에게 주어 법정 안에서 모금했습니다. 48불. 나가디아 재판관은, 벌금은 자기가 내고 48불을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뉴욕의 민선시장이 되었습니다. 공항을 만들고 그 공항 이름을 만들 때 온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나가디아를 외쳤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 때 한국인에 대해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달 동안 한국을 알아본 결론이 “걱정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1.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식적인 사고는 있으되 기발한 아이디어가 없다는 겁니다.
2. 공동 물건을 아껴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것만 아낀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팀워크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자투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일본인을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구정신이 몰려온 한국도 개인주의가 넘쳐나는데, 어른들의 이런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니 존경하고 본 받을 어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새 번역은 “부모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여 잘 기르시오”
많은 연구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부모의 욕망을 자녀들을 통하여 만족감을 얻으려고 할 때 자녀들은 대리만족의 희생물이 되기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준은 있되 다양성도 있어야 합니다.
“너는 반드시 집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원칙입니다. 그러나 집을 이루려면 나무, 돌, 유리 등등 다양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옛날 집, 지금도 시골 집 가면 장독대가 있습니다. 장독대에는 큰 장독, 작은 장독이 다 필요합니다. 큰 장독은 큰 장독대로서 의미와 가치가 있고, 작은 장독은 작은 장독대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삶에서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삶의 의미가 있는 사람은 삽니다.
오래 전, 광산 매몰에서 살아난 사람 양창선씨가 있습니다. 그가 살아난 비결에 대해 기사들은, 점심도시락 반찬으로 싸 준 조개젓, 떨어지는 물방울, 소변을 받아먹은 것 등으로 l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요한 것은, 끊어졌던 전화선 연결입니다. “파 들어간다.” 라든지, 부인의 “여보, 아이들과 살아야지요.” 등의 이야기가 힘을 내게 한 겁니다.

심리학자 콜은 말하기를, “가장 이상적인 자녀 교육은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 가정에 대하여 프라이드를 갖게 하는 것이다.”
소위 아이들의 기를 살려 주는 가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 살려 주어야 한다는 말을 오해를 합니다. 잘못 했는데도 야단치지 않는 것은, 기 살리는 것이 아니라 뭐가 옳고 그른 지에 대한 가치관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어떤 절도범이 수 없이 감옥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있는 이 절도범을 면회한 아버지는 “네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통곡합니다.
그때 아들의 말이 이렇습니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옆 친구의 크레파스를 훔쳐 집에 갔고 갔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게 웬 거냐고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때 웬 거냐고 물으셨고, 훔쳐 온 것에 대해 야단치셨더라면 제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7절, “제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잠언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니,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그 대표적인 예가 사무엘 2장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 집입니다.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저들이 먼저 건져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 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집인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제사장 아들들에게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가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 하니라.” 이런 정도였습니다.
이 엘리 집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가 2:29인데,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엘리제사장의 죄는 다른 게 아닙니다. 그 아들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데도 그냥 두었다는 겁니다.
프라이드를 세운다는 것, 곧 기를 살린다는 것은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잘못 했는데도 웃어 주는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잘못했을 때 다짜고짜로 따지자는 것도 아닙니다.
영국의 한 가정에 있었던 일입니다. 잼을 만드는 어머니는 어린아이가 먹고 싶은데 주질 않는 겁니다. 며칠이 지나 어머니가 잠간 나간 사이에 이 어린이가 잼의 뚜껑을 열고 먹었습니다. 그리곤 어머니가 들어오자 “엄마 나 잼 안 먹었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가까이 보니까 아이의 앞에 잼이 묻은 자국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 애야, 나도 네가 잼 안 먹었는지 안다.” 그리곤 대화하는 겁니다.
그런 대화도 기왕이면 긍정적이고 좋은 말로 하십시오.
한 아파트의 주차장.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들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서, 관리인에게 요청했습니다. 관리인이 프랭카드를 걸었습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오다가 아이들이 그 프랭카드를 보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는 그곳에서 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라고 썼을까? “훌륭한 어린이는 이런 곳에서 놀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은 영어로 disciple입니다. 이 말의 뜻은 “행동을 통한 훈련”을 의미합니다. 즉 내 삶을 통해서 교육시켜 나가는 것이 곧 교양입니다. ‘훈계’는 영어로 instruction입니다. 이 말의 뜻은 “말을 통한 훈련” 즉 주의 말씀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훈계이다. 따라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은 부모들이 주님의 정신과 신앙으로 살면서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삶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을 드립니다.
아이들 보고, “교회 가서 예배 조용히 드리고 설교 말씀 잘 들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주일 저녁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누가 설교했는지, 본문은 어디인지, 제목은 무엇인지,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십시오. 매 주마다 반복해서 물어보면, 아이가 대답하기 위해 예배시간에 귀를 세우게 됩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분반공부 시작할 때마다 매번 반복해서 물어보세요. 그리고 대답 잘하면 칭찬해 보세요.
이건 어른들도 해 보세요. 예배 후 저녁에 혼자 생각해 보는 겁니다. 본문은? 제목은? 내용은?

어떻게 어린이를 양육할 것인가?
오늘은 많은 예화를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예수 믿는 가정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좀 구체적인 언급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의 최고의 부자가 되고, 지금도 세계적 재벌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 존 다이비슨 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1839-1937)의 손자들은 하버드 대. 다트머스 대. 예일 대. 프린스톤 대 등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 졸업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회에 진출해서 뉴욕 주지사, 은행총재, 대학 총장, 41대 부통령 등 미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로 크게 활약했습니다.
어떻게 자녀교육에 성공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록펠러는 “자신의 성공의 원동력은 청교도 신앙의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는 것,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는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힘이 그를 성공하게 하였고, 신앙의 힘이 그의 자손들을 성공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본문이 그 원리 5가지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1절)
2) 인자와 진리로 내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마음 판에 새기라 것입니다.(3, 4절)
‘인자’는 ‘헤세드’(히)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에메이드’(히)로서 ‘진실하다.’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복을 받은 신앙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깨달아 늘 잊지 말고 마음 판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영원히 잊지 말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의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5, 6절)
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은 유럽 정복하고 집에서 쉬다가 애완용 원숭이에게 물려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답니다. 헤롯 왕은 벌레에 의해 죽었고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지도하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4)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7, 8절)
‘경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같이 하라는 겁니다.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면 본인이 강건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됩니다.
5) 물질의 첫 소산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9, 10절)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로 하나님을 위해 쓰라는 겁니다.
록펠러는 처음 십일조를 15센트부터 시작했답니다. 그러나 결코 빼먹어 본 적이 없답니다. 결국 수십만 불, 수천만 불의 십일조를 드리게 되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잘 양육하십시오.
무엇보다 여러분이 신앙과 삶의 본이 되시고, 무엇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가르치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언제나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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