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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남의 증거 (요 6:39-40,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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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영복 목사

사람이 이 세상의 삶으로 끝이 나버리고 만다면 100년 미만의 일생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영원한 세계가 있으며,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생을 얻게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허무하지도 않고, 심지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거듭난 성도가 얻게 될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기에 이땅에서의 삶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참된 믿음으로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사형집행장에서 근무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책을 보면, 유두영이란 사람은 아주 잔인한 살인범인데 새까만 눈썹이 맞닿은 듯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것이 마주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는데, 어느 날 불러다가 상담을 하는데 살기가 등등해서 냉소적인 태도로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기도하자고 하니까 눈을 빤히 뜨고 째려보더랍니다. 그래도 얼음이 언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 영혼이 불쌍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역사로 유두영의 얼굴을 얼싸안고 울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완악한 유두영도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울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사형집행 날이 되면 사형수들 대부분이 “난 안가, 죽기 싫어.” 한다던지 “어머니, 엄마” 하며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치거나, 바지에 대소변을 보며 벌벌 떨기도 하고 별별 사람이 다 있는데 유두영은 예수님 믿고 거듭난 후부터는 만나는 죄수들마다 “죽을 준비 돼 있어?” 라고 말하며,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했다고 합니다.

사형집행 날이 되어 유두영이도 끌려가는데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연발하더랍니다. 그래서 “유두영이 겁이 나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마침 박 장로님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두영아, 잘 가. 먼저 가.”하면서 더듬거렸더니 도리어 “예, 장로님 먼저 갑니다.” 하고 힘차게 말하더랍니다.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영적 권위와 능력 때문에 흠칫 물러서게 되더랍니다. 사형장에 도착해서 소장님이 “오늘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유두영씨의 사형을 집행합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집행 선고를 했더니 유두영은 “아멘” 하더랍니다. 소장이 이름, 생년월일 등 인정 신문을 끝내고 끔찍한 죄상을 요약해 읽어 가는데 유두영이 손을 쳐들더니 “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하니까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소장님, 지금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제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기억도 아니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고 말할 때에 형장 안이 숙연해지더랍니다. “이제 예수님 믿고 8년이란 긴 세월을 살다가 아버지나라도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아니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다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 받은 깨끗한 영과 몸 그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그 부끄러운 죄를 읽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 소장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눈에 눈물이 흐르더랍니다. 임종 예배를 드리는데, 유두영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고 자기의 온몸을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 기증한다고 하더랍니다.

“유언을 남기겠느냐.”고 물으니까 잠시 있더니 “소장님, 그리고 검사님, 제 마지막 부탁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밧줄 올가미를 목에 거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려오는데 누가 부르나 하고 살펴보니까 바로 유두영이 부르더랍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찬송을 부른 뒤 “덜커덩” 하고 지하실로 떨어지더랍니다.

거듭난 사람은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그의 삶은 놀랍게 바뀝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을 보증하게 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의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유두영 같은 잔인무도한 죄인이 죄사함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만민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3일 만에 무덤 문을 박차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도 없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도 없습니다. 부활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희망의 멧세지 이며, 기쁨의 소식입니다.

① 부활은 신약 성경의 중심 교리이며, 초대교회 설교의 헥심이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진리의 요소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처녀의 몸으로 탄생하셨으나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활이 이루어 졌으며, 부활 사건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사건인 것입니다.

②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가 부활 설교였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6장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믿는 자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 즉 부활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또 40절에도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었다가 마지막 날 즉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란 말씀입니다.

44절에도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 끝 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성경에서 빼 버리면 계란에서 노른자를 빼 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③ 수제자 베드로의 중심 메시지도 부활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전 제자들의 설교 중심은 바로 부활입니다. 사도행전 2장 23~24절에도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했고, 사도행전 2장 31~32절에도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했고, 사도행전 3장 14~15절에“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제자들은 겁에 질려 다 도망가 숨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환희에 차서 순교했습니다. 유대인 학자, 핀카스 라피데(Pinchas Lapide)라는 사람은 “예수의 부활”이란 책에서 “골고다의 죽음 직후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부활이 없고 영생, 천국이 없다면 고생하며 핍박을 받으며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4세기 경의 그레고리 나지안첸(Gregory Nagiangen)은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돌아가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④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박해혀,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도 바울의 중심 메시지도 부활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뒤부터는 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이 기나긴 장 전체를 통해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봄에 옥수수나 콩을 심으면 죽어 없어지고 맙니까? 다시 수십 배, 수백 배로 다시 사는 것을 보면서 어찌하여 사람은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사람들아! 라고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카이로에서는 3,000년 된 완두콩이 살아나서 열매를 맺었고, 불란서에서는 2,000년 된 무덤에서 찾아낸 꽃씨를 심었더니 싹이 나고 잎이 나서 꽃이 피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했고, 15절에서는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했고,

17~18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본문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부활과 내세가 없다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부활을 믿고 영생,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떤 고난도, 희생도 감수하며, 위로부터 받을 상급과 칭찬을 바라보며, 쓰임받는 도구가 된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충성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죽을지라도 재림 나팔소리가 들릴 때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던 자들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홀연히 부활의 몸과 같이 변화되어 들림 받게 됨을 믿고 소망 중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전 메시지의 중심은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영원한 천국에 대한 선포입니다.

부활을 통해 약속하신 부활에 동참하는 성도, 영생을 소유하는 복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귀한 축복은 아무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2. 부활은 거듭난 자(重生)에게만 일어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않고, 건성으로 교회에 다닌 사람이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무정란을 부화기에 넣고 병아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계란에는 무정란, 유정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정란은 수탉이 없이 암탉만 가두어 키워서 낳게 한 계란입니다. 유정란은 암탉이 수탉과 함께 살면서 낳은 알입니다. 깨뜨려 보면 그 안에는 생명의 끈이 있습니다. 이런 알은 건강에 좋기 때문에 값도 비쌉니다. 그런데 병아리가 되는 것은 반드시 유정란이어야 됩니다. 무정란은 그 안에 생명의 씨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병아리로 부화하지 않습니다.

계란이 한 번 태어나서 닭이 될 수 없고, 엄마 달기 그를 품은 따뜻한 열을 가할 때 다시 한 번 태어나야 닭이 되듯이 사람도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하나님도 볼 수 있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실 때,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즉 육신이 한 번 태어나고, 성령의 역사로 영혼이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고(에베소서 2장 1~3절, 로마서 1장 18~32절), 마귀를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이고(에베소서 2장 2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장 3절). 또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장 3절, 예레미아 17장 9~10절, 예레미아 13장 23절). 육신이 태어날 때는 세상에서만 살 수 있는 육신의 생명을 갖게 되고, 영혼이 태어날 때는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부활을 알 수 없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요사이 복제동물, 복제인간을 만들 때 그 사람 혹은 동물에서 DNA를 떼어 접합시키듯이 영적으로 기독교의 신적 DNA를 심령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우리는 신의 성품을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고 말씀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첫 열매되시는 주님을 따라 부활에 동참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이 나를 죄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시고,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심을 믿고,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며, 입으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3장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가 기록된 목적, 특히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멸망할 죄인들이 거듭나서 영생을 얻었다가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는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거듭나는 역사는 인간의 노력이나 도덕 선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 속에 성령의 감동이 오는 것을 묵살해 버리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거듭나게 됩니다. 물론 육의 사라이 죽어야 여의 삶으로 거듭납니다. 날마다 바울처럽 십자가에 정과 요심을 못받고 나를 죽이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이것으 소극적인 방법이며, 적극적으로는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는 방법이 잇스빈다.


3. 거듭남으로 얻게된 부활의 축복을 받은 성도가 해야될 사명이 무엇입니까?

거듭난 성도로써 적극적으로 헌신해야 할 일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본문 35-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로 나아가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삶의 보장을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본문 36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절망적입니다. 예수께로 오는 자가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해도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도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있지만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보고도 예수님께로 나아오지 않으면 구원받을 방법이 없답니다. 예수님을 보는 자도 안 오고, 안 믿으면, 후에 보지 않는 사람들은 더 못 믿을 것이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과연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려했던 대로 넒은 길로 가는 사람들은 예수님를 구주로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볼수도 없는 예수를 어떻게 믿느냐?고 합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37-39절 말씀은 그런 걱정 염려 싹 사라지게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39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실수하거나 실패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실패한 구원자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예수를 통해 구원시키고자 하는 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예수께로 보내어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낸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은 다 예수께로 나아오며, 그들은 다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습니다. 전도하기만 하면 도저히 예수 믿을 것 같지 않는 자가 예수 믿겠다고 교회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씨가 있어냐 싹이 나오지 않습니까?

복음난 전하면 씨가 생명이 있어 열매를 맺듯이 저 사람은 꼭 지옥 갈 것 같은 사람도 예수 믿고, 훌륭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지금도 교도소에서, 군대에서, 기업체에서, 관공서에서도 또 세계 각국에서 믿는 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상의 벽과, 국경의 벽과, 인종의 벽을 뛰어넘어 전해지고 있으며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믿는 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다.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고, 그 부활과 여생의 희망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우리 곁에 있으며, 주님은 내가 전도하고자 하는 그가 믿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베드로후서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볼 때는 더디고 안타깝습니다. 큰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믿어서 언제 다 믿을 수가 있을까? 우리 가족들 믿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상심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는 다 예수께로 나아오게 하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셨음을 의심치 말고, 믿고 우리는 부지런히 전도합시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도 염려만 하지 말고, 쉬지 않고 복음을 위해 전도하며 일합시다. 입술로 전하고, 복음전파를 위해 물질을 투자하고, 나의 재능과 기술과 경험을 사용하여 오직 복음을 위해 헌신합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은 복음증 전하는 일, 즉, 전도를 위해 헌신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며, 전도에 무관심하다면 중생의 확신이나, 구원의 확신, 부활에 대한 소망이 소멸된 상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쉬지 않으시고 외치시는 말씀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11:25-26)고 안타까움으로 호소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구원의 초청이 멈추지 아니하였으니 더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부지런히 부활을 확신하며, 거듭난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복음을 전합시다.

요한복음 20장 21절 부활하신 주님이 부활의 확신을 주시며 “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선언하셧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은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명령>과 <부탁>은 다른 것입니다.

명령은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병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인사회에서 명령은 생명과 같습니다. 즉, 어기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부활을 본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널리 증거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왜 이런 명령을 하십니까???부활은 나의 부활인 동시에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 신앙을 소유했다면(거듭남의 확신이 있다면)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번도 예수 부활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그만큼 확신에 찬 부활 신앙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큰 기쁨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그 기쁨을 반드시 말하게 되어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이 아직도 없기에 전해 줄 힘도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남들이 다 부활의 증인이 되었는데 아직도 회의 속에 빠져 있는 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마가 그랬습니다. 도마는 어디에 갔다 왔는지 다른 제자들이 다 주님을 만난 기쁨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지만, 그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여드레를 지난 후 주님이 친히 자기 앞에 보여준 후에야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아빠, 엄마라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만일 때가 지나는데도 말을 못한다면, 얼마나 부모 마음이 답답하겠습니까???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적인 장애자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자는 다 주님께로 와 구원받는다고 약속하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낸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날에 다 살리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 귀한 사랑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전도에 최선을 다합시다. 전도하는 일이 더디다고 느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는 다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계속 전도합시다. 누구든지 우리가 전한 예수 믿기만 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함을 얻어 영생을 얻고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습니까? 물론 전도된 그들이 중생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듣지도 못한 예수님을 어덯게 믿겠습니까?

중생한 사람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받은 사랑, 빚진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헌신으로 갚아야 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부활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광을 위해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충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 가장 귀한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하는 일이기에 전도에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부활의 확신과 영생의 소망과 영원한 천국에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며, 작은 일에서 부터,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봉사하며, 최선을 다해 충성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복음을 알려주는 전도에 우선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거듭남의 증거인 영생과 부활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멧세지를 전하는 일에 다시 한번 주력합시다. 중생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계속 희망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간곡히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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