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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에게도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삿 16: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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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영준 목사

목사님들과 교인 맞벌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두 가지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일 할 사람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맞벌이를 하는 이유가 자녀 교육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외비용이 자녀 한 명당 평균 4-5십 만원이 들어가니 월급쟁이 봉급으로 감당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수입의 대부분을 자녀 교육비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파출부해서 자녀 교육비 대는 사람들이 허다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까지 자기 인생을 거의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되라고 그렇게 눈물겨운 노력을 합니까?
남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어나 수학이나 국어를 배워서 지식적인 능력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피아노를 가르치고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미술을 가르쳐서 예술적인 능력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운동을 잘해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교육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공부 잘하고 능력만 있으면, 다 잘될 줄  알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삼손입니다.
삼손의 부모님은 오랜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서 애를 태우면서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엄청난 힘을 가졌습니다.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일천 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성문을 그 문설주와 함께 메고 가는 괴력을 지녔습니다.

삼손이 힘만 센 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삿 14장에 보면, 삼손이 수수께끼를 내는데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는 낼 수 없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삼손이 사자를 맨손으로 죽이고, 얼마 후 다시 그 사자에게 가보니, 벌들이 사자 사체에 벌집을 짓고 꿀을 모아 놓았습니다.
삼손은 그 꿀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처갓집에 가서 처갓집 동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가지고, 수수께끼를 내었습니다.
‘먹는 것에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여기서 강한 자와 단 것이 무엇인지 알아 맞추라고 하였습니다.
응용을 잘 해서, 수수께끼를 낸 것입니다.

삼손은 외국어를 잘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삼손이 주로 활동한 것은 자기 나라가 아니고 외국이었습니다.
장가를 세 번 들었는데 다 외국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외국어가 안 통했으면 외국인 여자를 쉽게 사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삼손은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단순히 힘만 센 사람이 아닙니다.
지식도 있고 분명, 지적인 능력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힘을 지녔고, 지혜와 능력이 있었지만, 그 인생을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능력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외국인 여자를, 부인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 꼬임에 빠져서, 자기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잘리고 나서, 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눈을 뽑히고, 말이나 소처럼, 등에 멍에를 메고,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고,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그의 인생은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삼손의 인생이, 그 많은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이 났습니까?
그는 그 능력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사람이 가진 모든 능력은, 엔진의 힘입니다.
엔진의 성능이 좋으면, 다른 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높은 언덕도, 잘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엔진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그 차는 위험해집니다.

자동차가, 어디에 고장이 나면 제일 위험합니까?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제일 위험합니다.
엔진이 고장 나면, 차가 멈추면 그만이지만, 언덕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면, 큰 사고가 납니다.

사람에게도,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달아야 할 브레이크는, 절제력입니다.
절제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큰 능력을 지녀도, 사람 노릇 못합니다.
절제력이 없는 사람은, 엔진은 좋은데,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와 같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사람 노릇 못하는 사람들 보세요.
능력이 없어서, 사람 노릇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와서, 한글도 모르지만, 인생을 건전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벌이 없어서, 사람 노릇 못하는 사람들 없습니다.
육체가 불편한 분들도, 열심히 살아갑니다.
눈이 없는 사람, 다리가 없는 사람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아름답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누가 사람 노릇 못하는가 하면, 절제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사람노릇 못합니다.
노름을 절제하지 못하고, 돈과 시간을 탕진하는 사람들은, 사람노릇 못합니다.
돈 쓰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람 노릇 못합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학식과 재능을 키워주세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절제력을 가르치지 못하면, 그 능력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학식과 재능을 키워주는 것보다, 절제력을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능력은 부족해도, 사람 노릇할 수 있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사람 노릇 못합니다.
사람의 능력은, 절제력에서 판가름합니다.

성경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절제하지 못하여, 사나워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이 시대는, 절제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권력의 힘을 절제하지 못해서, 권력의 실세들이 교도소로, 향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서, 카드 빚으로 욕망을 채우려다가,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고, 인생을 망쳤습니다.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무절제하게 신용카드를 쓰다가,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자신과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무엇입니까?
절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절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 해도, 절제력이 없어서, 늦게까지 술 마시고, 제 시간에 출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쓸모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절제해야 합니까?

1. 동물적인 본능을, 절제해야 합니다.

인간은, 동물과 신 사이의 중간자입니다.
동물처럼 살 수 있고, 신처럼, 거룩한 성품을 지니고 살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동물적 본능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이 동물적 본능은, 더 고상한, 신적 능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동물적 본능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짐승이 됩니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됩니다.

동물은, 생리적으로, 절제가 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돼지가 먹는 것을 좋아 하지만, 위의 80% 이상은, 절대 안 먹는 다고 합니다.
사람은, 먹고 싶지만, 절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입고 싶지만, 절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놀고 싶지만, 절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잠자고 싶지만, 절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놀고 싶을 때 다 놀고, 절제하지 않는다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반드시, 인간의 동물적 본성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2. 마음의 분노와 혈기를, 절제해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분노가 치밀고, 혈기가 나면, 열까지 세라’는 말이 있습니다.
10초 동안만 생각해 보아도, 혈기를 멈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고 사는 사람들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큰 사고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화가 나지만,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분대로 살아서는 안 되고, 법과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3. 혀를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제일 절제하기 어려운 것이 혀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

혀를 놀리는 데는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큰 힘을 들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장 놀리기 쉬운 곳이 혀입니다.
혀를 절제하지 못해서, 큰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육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페스탈로찌]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절제력을 키워 주는데, 세 가지 방법을 가쳐 주었습니다.
첫째,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했는데, 기분 좋은 때는 칭찬했다가, 기분 나쁠 때는 ‘저리가 보기 싫어’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규범이나 규칙에, 신빙성을 잃게 됩니다.
부모의 기준이, 와다 갔다 하면 안 됩니다.
똑같은 일인데, 어느 때는 칭찬을 받고, 어느 때는 꾸중을 들으면, 아이들이 가치관을 혼동합니다.
이렇게 해도 야단맞고, 저렇게 해도 야단맞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아이들이 절제력을 배웁니다.

아이들에게 규칙을 정해주면, 부모가, 그 규칙을 어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기는 마음대로 하고, 아이들에게 규칙을 강요하게 되면, 아이들도, 그 규칙을 지키지 않습니다. 
절대 안 된다고 말해 놓고, 너무 떼를 부리면, 못 이겨서 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하 부모님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떼를 부리면 해 주시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계속 떼를 부립니다.   
해로운 것은, 끝까지 거절해야 합니다.
둘째, 꼭 필요한 것은, 채워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별을 못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별하여서, 필요한 것만 채워주어야 합니다.
셋째, 어리광은, 거절해야 합니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받아주면, 아이들이, 동물적 본능을 버리지 못합니다.
좋은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어리광을 거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어리광을 받아 주면, 부모는 불안해 지고, 아이는, 불만이 많아집니다.
가난해서, 별로 해준 것이 없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불만이 많습니까?
넉넉해서, 원하는 대로 다 해 준 집 아이들이, 불만이 많습니까?

성경에서는, 절제는 하는 법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벧후 1:6절에 보면 절제에 인내를 공급하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6-7)

인내를 배우지 못하면, 절제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저절로 인내심을 배우게 됩니다.
과자를 먹고 싶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박스에 메고 다니면서, ‘시원한 아이스 케키’하고 선전하던, 그 얼음과자가 먹고 싶었지만, 사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이스케이크를 먹다가, 잘못해서 한 쪽이 떨어져, 땅에 떨어진 것을, 그 사람이 지나간 다음에, 슬쩍 집어서, 옷에 슬슬 닦아서 먹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 때는 하나에 5원씩 했는데 동그랗게 생긴 풀빵이 그렇게 먹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습니다.
참아야 했습니다.
그게 어른이 되고 나니, 유익한 것입니다.
그때, 절제력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일부러, 인내심을 가르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졸라도, 물건을 사 줄 때는, 하루, 일주일, 한달, 기다리게 한 후에, 사 주어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 5:23절에, 절제는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오직 사랑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법을, 금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되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성령께서, 절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에, 절제력이 생깁니다.

하루에 1시간씩만, 성경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내 삶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석 달만,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 읽고, 기도하고, 경건생활을 충실하게 하면, 술 담배 끊는 것이, 쉬워집니다.
성령이, 절제력을 주십니다.
하루에 한 시간씩만 기도하고, 성경 읽는 시간을 가지면, 화를 내는 것을, 절제하기가 쉬워집니다.

소망이, 절제력을 가져다줍니다.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그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절제합니다.
열심히 살다가 실패하면, 술독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과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이 있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절제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절제의 힘은, 바로 이 소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진실한 신앙을 가르쳐 주면, 절제력이 생깁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태워서, 아이들을 밖으로 내 보내지 않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는, 아무도 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엔진의 성능을 높여 주는 데는 사력을 다하면서, 브레이크를 달아주는데 무관심합니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차도 쓸모없듯이, 사람이 브레이크인 절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소유자라도, 쓸모없습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에게는, 삼손처럼, 비극적인 종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물적 본능을, 우리의 마음의 분노와 혈기를, 우리의 혀를, 절제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절제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 이것은, 우리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인줄로 믿고,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에게, 올바른 능력, 절제의 능력을 키워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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