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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 (행 17:2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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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요즈음 서점가에 잘 팔리는 책이 있다. “성경이 만든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라는 책이다. 워너메이커는 미국 백화점의 창시자이요, 백화점의 왕이라고 불리운다. 탁월한 아이디어,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전 세계 곳곳에 YMCA 건물을 지어준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이를 사랑해서 그들을 섬기고 가르치는 교회학교 교사를 가장 큰 사명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대통령이 장관직에 임명하려 할 때에 조건이 있었다. “나에게 교회학교 교사를 계속할 수 있게 해 준다면 하겠다”고 할 정도이었다.

믿음의 사람 워너메이커가 이런 글을 남겼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 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 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합니다.”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이 왜 없는가? 텔레비전을 보는 일, 게임을 하는 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일, 등 기도보다 즐거운 일이 많을 것이다.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가 얼마나 많은데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주님의 식탁보다 이 세상에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왜 굳이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우울한 식탁을 대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위기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한 내용이다. 다양한 철학이 이야기가 되고, 다양한 종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을 믿는 진리를 따르기 보다는 다양한 신이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다양한 신이 나오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쓰여진 내용이다. 바울이 이렇게 전한다.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도 새긴 단도 보았다.” 우상을 섬기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도 섬기는 그러한 모습이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를 믿으라고 전한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물론 불상이나,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예수님보다, 성령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이 생겼다. 기도로 주님과 대화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채팅하고 전화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고, 거룩한 말씀으로 내 자신을 찾기 보다는 텔레비전 앞에서 멍하게 보고 있는 시간이 훨씬 많고, 주님의 식탁보다는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더욱 좋아한다.

아테네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온갖 잡신을 향하였다면, 이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주일용으로, 내 삶에 필요할 때만 찾고 평상시에는 구석에 몰아두는 식의 신앙생활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우리를 향하여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이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나라는 사람이 이 땅에 생기게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힘을 얻어서 살고 있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수고해서 얻은 물질의 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잘 해서 성공한 덕에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나에게 물려준 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소생이라는 말은 그 몸에서 나왔다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여기에 기록된 낳고라는 말이 곧 소생이라는 의미이다. 창세기를 Genesis라고 말하는데, 소생에서 말하는 낳고의 의미와 창세기의 Genesis가 같은 어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여기에 기록된 낳고, 낳고를 통해서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이 말씀은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 나의 뿌리는 곧 하나님에게 있다. 나는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이 말씀은 곧 나의 뿌리는 하나님에게 있다. 내 인생의 뿌리는 하나님에게 있다. 내 인생의 시작도 하나님에게 있고, 내 인생의 진행도 하나님에게 있고, 내 인생의 마지막도 하나님에게 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우리는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선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이의 특징은 무엇인가? 엄마 아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엄마 아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힘을 얻어 살고 그를 통해서 움직일 수 있다는 신앙의 고백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소생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얼마전에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관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얼마나 엄청난 숫자인가? 이 영화의 감독은 우리 서울남 연회 수표교 교회의 집사이다. 자랑스런 감리교 상도 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실제 인물을 영화로 만들었다. 22세의 초원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이 청년은 5살의 지능을 가진 자폐아이다. 스스로 자기의 세상이 있어서 그 다섯 살 연령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안에 갇혀 산다. 엄마가 아들을 키울 때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겠는가? 그런데 이 아들이 달리기 할 때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엄마는 아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엄마는 아들에게 자신감을 준다. 그 영화 속에서 나오는 대사 중, 요즘 최고의 유행어가 되고 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초원이 몸매는 끝내줘요~’라고 하는 말, 그리고 ‘방귀는 나가서’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초원이 엄마는 기회 있을 때마다 “초원이 다리는?”하고 묻는다. 그러면 초원이는 “백만 불짜리”하고 응답합니다. 그리고 다시 엄마가 “초원이 몸매는?” 하고 물으면 “끝내줘요~”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을 잠깐 보자.....

초원이의 엄마는 자기의 아들이 이렇게 어두움의 세계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들이 세워지기를 원했다. 결국에는 마라톤에 승리를 하고 얼마 전에는 그 실제 인물이 대통령을 만나는 일까지도 벌어졌다.
초원이 엄마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이기 때문에 그렇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는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세우기 위해서 돕고 계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본문의 말씀을 보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아간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곁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세우신다. 우리가 실패자로, 우리가 어두움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성공자로, 밝은 빛의 세계에 살기 위해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

부모가 자녀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희생하고 도와준다. 왜 그런가? 앞으로 자식이 고생하며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식이 반듯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고 싶어서 그렇다. 이것이 곧 부모의 마음이요,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신다.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면, 이러한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본문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지 다른 것으로 바꾸지 말라. 물질이 소중하다. 물질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물질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많은 정보가 있어야 한다. 정보의 힘을 높이 평가한다. 정보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이 돈이다. 그것이 힘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이 곧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의 권력이 있으면 힘이 있어 보인다. 안되는 것이 어디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와서 굽신굽신 거린다. 신난다. 그러나 그 권력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지 말라.” 하나님만 철저히 의지하고 살라는 말씀이다. 내 아들이 옆 집 아저씨 찾아가서 우리 아버지 보다 아저씨가 더 능력있네요. 아저씨가 더 멋있네요, 아저씨가 더 잘 생겼네요. 그러면 열받아서 어떻게 살겠는가?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맞은 아이는 발 뻗고 자고, 때린 아이는 웅크리고 잔다. 맞은 아이는 맞을 때 아프기는 했겠지만, 때린 아이는 때리고서 불안하다. 때리고서 내일 어떻게 될지 참으로 불안하다. 그래서 그 아이는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불안해서 웅크리는 아이는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불안할 때에 나도 모르게 어머니 뱃속에서 웅크린 모습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세상에서 불안한 일을 당하고, 세상에서 당혹스러운 일을 당할 때에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웅크리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의 뿌리가 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있을 때에 불안이 사라지고, 절망이 사라지고, 어두움이 물러가고, 괴로움이 사라지게 될 줄로 믿는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이다. 이 세상에는 가치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재미있는 게임도 얼마나 많은가? 맛있는 음식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철저히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이 내 생명의 젖줄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살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 어두움 속에 갇혀 사는 우리를 하나님이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 이렇게 고백하자.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습니다.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은 없습니다.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 주님이 베풀어 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은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하여 “너는 백만불짜리 사람이요, 너는 끝내주는 사람이야”라고 응원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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