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디모데 훈련(6) : "인격이 문제입니다" (딤전 3:1-7)

  • 잡초 잡초
  • 342
  • 0

첨부 1


- 설교 : 김흥규 목사

<아, 쉽지 않은 말 '인격'이여!: '난사람,' '든사람,' '된사람'>
'인격'(人格)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다 자신이 없습니다. 저 역시 인격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격'이란 말만 나와도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 나라에도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분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특히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 선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은 흥사단(興士團)을 만들어서 민족 계몽과 독립 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도산은 비록 어린 아이와 한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지키려고 애썼으며 평생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도산 선생이 어렸을 때였습니다. 어느 해 여름 참외가 몹시 먹고 싶었습니다. 다짜고짜 원두막으로 뛰어든 도산은 원두막 주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할아버지가 나를 붙잡아 때리려고 쫓아오시니 야단났어요. 저 밭고랑 속에 좀 숨겨주세요." 인정 많은 주인이 숨겨주었고 도산은 참외 넝쿨 밑에서 실컷 참외를 맛보았습니다. 문제는 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어머니가 부지깽이가 동강이 나도록 도산을 때리며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훈계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도산은 꿈에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도산의 고상한 인격을 말해주는 일화는 수없이 많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난사람,' '든사람,' '된사람'입니다. '난사람'은 재주가 아주 빼어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 난사람이야" 할 때, 이미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 달리 천부적인 은사(恩賜)를 타고난 사람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든사람'은 비어 있지 않고 뭔가 속 알갱이가 꽉 차 있는 사람을 뜻할 것입니다. 겉은 번지르르 해도 속이 비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해 '든사람'은 안으로 실력을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된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인격이 바로 된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속이 꽉차서 실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됨이 바로 되어 있지 않으면 참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의 세 가지 직제: '감독,' '장로,' '집사'>
이런 점에서 인격은 참 중요합니다. 모든 삶의 기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감독'이 갖추어야 할 인격적 자질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바울은 딤전 1-2장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가 3장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다운 인격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지요.

초대 교회에는 크게 세 가지의 기본 직제(職制)가 있었습니다. '감독'(episkopos)과 '장로'(presbyteros), 그리고 '집사'(diakonos)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 직제들은 오늘 우리의 직제와는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오늘과 같이 감독은 목사들 중에 지도자급이거나, 장로나 집사는 평신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그런 성격의 직분이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모호했을 때 교회를 함께 이끌어간 연합체 성격을 띤 리더십이었을 뿐입니다.

오늘의 눈으로 이 세 직제를 해석할 경우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는 모두 목회자 급에 해당되는 교회 지도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연합감리교회(UMC)의 경우 초대 교회의 직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목회자들을 집사 목사, 장로 목사, 감리사/감독 등으로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초대 교회는 오늘과 같이 복잡한 성직 제도가 생겨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매우 단순한 지휘 구조를 가졌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교회를 이끌어 간 지도부는 장로회와 집사회의 이원직제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장로회는 남자들로만 구성되었으며 특히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딤전 5: 17 참조). 다시 말해 설교와 교육에 치중했다는 말씀이지요. 한편, 장로회 예하에는 집사들이 있었는데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집사가 될 수 있었으며 장로들을 도와 교회의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맡아서 했습니다(딤전 3: 11 참조).

여러분, 그렇다면, 감독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이 장로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감독이었습니다(행 20: 28; 빌 1: 1; 딤전 4: 14; 딛 1: 7 참조). 장로들 가운데 우두머리로서 장로회를 이끌어 간 리더가 감독이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바울이 말하는 감독은 오늘 우리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그런 감독의 직제와는 많이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교회, 특히 디모데 전서의 배경이 된 에베소 교회는 오늘에 비해서 대단히 소박하고 단순한 교회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어떤 영예스러운 교단 지도자로서의 감독을 연상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지요.

<감독이 갖추어야 할 14가지 덕목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인 감독이 갖추어야 할 덕목, 즉 자질(資質)에 대한 말씀입니다. 모두 14 가지의 덕목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 누구나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14가지의 덕목들은 모두 여러분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14 가지 덕목들은 무엇입니까?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근신(신중)하며," "아담(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난폭)하지 아니하여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해야 하며," "새로 입교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며," "외인(外人)들, 즉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조금 복잡하지요. 이상의 14 가지의 덕목들은 모두 관계성 속에서 갖추어야 할 인격적인 자질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편의상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대별해 봅시다.

① 자신과의 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있습니다(對自己 관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아닙니까? 천군만마(千軍萬馬)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진정한 인격은 자신과의 대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드와잇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0는 "진정한 인격이란 우리가 어둠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남이 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여기에 우리의 진짜 모습이 있다는 것이지요.

바울이 열거한 14 가지 덕목들 가운데 한 4 가지 정도가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길러야 할 덕목들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절제하며," "근신(신중)하며," "아담(단정)하며," 그리고 "새로 입교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절제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조절을 잘한다는 것 아닙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잘해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지요. "과도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절제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인격자가 되기 위하여 기초가 되는 덕목입니다. 오늘날 절제하지 못해서 파경에 빠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술에 도박에 인터넷 게임에 증권에 과도하게 빠져서, 절제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파국을 맞고 있습니까?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근신, 신중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생각을 깊이 한 후에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나의 가벼운 말 한 마디가 이웃을 실족시키고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의 가벼운 처신 하나 때문에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킬 때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근신해야 합니다.

아랍인들의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반드시 세 개의 대문을 통과한 후에 나가야만 한다. 첫째, 이 말은 거짓이 아니고 진실한 말인가? 둘째, 이 말은 친절한 말인가?, 셋째, 이 말은 반드시 해야만 할 말인가?" 오늘부터 여러분이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신중함에 바탕을 두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아담, 즉 단정해야 합니다. 본문 2절의 '아담하며'라는 말은 희랍어로 'kosmios'라는 말인데 딤전 2: 9에서 여자들이 '아담한 옷으로 단장한다'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담하다는 말은 외모가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행실을 보인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품행이 단정하고 깔끔해지도록 애쓰십시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교회 지도자인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초심자(初心者)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 교회 지도자로 피택되어야지 신앙 연륜이 짧은 사람이 감독이 될 경우 교만해져서 마귀가 받을 심판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요. 교회의 지도자로 부상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믿음의 연륜이 필요합니다. 신앙 경륜이 짧은 분들을 교회 일꾼으로 세워서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 어느 정도의 연륜은 필요한 법입니다!

②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있습니다(對內 관계).
먼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직 자기 아내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남자들이 밖에 나가면 딴 여자들에게 눈길을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 아내 한 사람에게만 정절을 지키고 딴 여성에게 한 눈을 팔아서 안 된다는 말이지요.

  그 다음에 구타하지 않고 오직 관용해야 합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 말씀을 "난폭하지 아니하고 너그러우며" 라고 번역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굳이 이 덕목을 가족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품성으로 분리시킨 것은 구타가 많은 경우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난폭한 남편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주부들과 자녀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폭력을 행사해서 안됩니다. 할 수 있으면 너그럽고 온유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좋은 지도자,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4-5절을 보세요. 14 가지 덕목들 가운데 이 가정을 다스리는 덕목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놓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이 말은 꼭 공자님이 했던 유명한 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연상시킵니다. 사람이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린 연후에 나라를 통치하고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나라와 세계를 평정하기에 앞서 자기 가정 관리부터 바로 하라는 말씀이지요.

아무도 자기 가정과 자기 자식들에 대하여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식 문제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목사님들 가정이나 장로님들 가정에도 망나니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는 바른 가정을 위하여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정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자기 가정 하나 돌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느냐는 바울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뼈아픈 일침(一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큰 일을 하기 전 가정부터 바로 다스려야 합니다. 질서 있는 가정,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장 근사(近似)한 닮은꼴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지키십시오! 아버지의 권위, 어머니의 권위를 회복하십시오!

③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있습니다(對外 관계).
크게 5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책망받을 만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은 완벽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인인 이상 그 누구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공평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처리해서 누구로부터 원망 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으면 책망받을 짓을 하지 마십시오!

둘째로, 나그네 대접을 잘 해야 합니다. 세계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초대 교회에서 사람들을 파견하고 영접하는 일은 아주 다반사(茶飯事)였기 때문에 대접을 잘 하는 일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아주 중요한 덕목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전 16: 18과 몬 7절에서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 하는 말이나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는 말은 모두 대접과 관계되어 있습니다(롬 12: 13; 히 13: 2; 벧전 4: 9 참조). 할 수 있으면 이웃을 환대하십시오. 좋은 인격자는 이웃을 잘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사실 감독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사항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딤전 5: 17에서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장로들이 두 배로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넷째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인격자는 호전적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평화적이고 젠틀합니다. 초대 교회는 교회내에 이단이 일어나서 종종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 때 교회 지도자가 평화롭게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지 불에다가 기름을 끼얹듯이 싸움을 촉발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좋은 인격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할 수 있으면 분한 감정을 잘 억누르고 대화를 통하여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투기를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로,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그런 대로 괜찮은 사람인데 밖에 나가서는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사람들로부터도 좋은 소문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 밖에 사람들로부터 "야비하다, 부정직하다, 못돼 먹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윤리적으로 사십시오. 정직하고 충성되게 사십시오! 

④ 물질과의 관계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있습니다(對物 관계).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술을 즐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술은 포도주를 말합니다. 희랍어 원어 'PAROINOS'는 완전히 포도주에 탐닉해서 알코올 중독 증세까지 보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포도주가 신약 시대에는 오늘날의 '포도 쥬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포도주는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옳은 말이 아닙니다. 바울 선생은 분명히 포도주를 즐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남몰래 술을 마시는 분들이 있으면 차제에 단주(斷酒)하시기 바랍니다! 영성 생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말이 아닙니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여기서 바울은 돈을 미워하라, 증오하라고 말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소극적 부정형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돈이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일어납니까? 누구 말대로 돈에 환장이 되어서 보험금을 타먹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죽이고 친부모까지 죽이는 일이 백주 대낮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딤전 6: 10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옳습니다. 돈은 필요한 만큼 쓰면 되는데 돈에 탐닉해서 사랑하게 되면 모든 죄악들이 바로 그 물욕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좋은 인격자는 수전노(守錢奴)가 아닙니다. 열심히 돈을 벌되 그 돈을 아름답게 선용할 줄 아는 사람이 인격자입니다!

<인격이 문제입니다! 인격을 기릅시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저는 저의 변호사나 재단사, 시중드는 사람들, 심지어 제 아내까지도 모두 하나님을 믿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을 경우 제가 재산에 손해를 입는다든지 속아넘어가는 일이 훨씬 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명 높은 무신론자였던 볼테르까지도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더 인격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나, 그러나 오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우리를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목사고 장로라고 해서 우리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직분 때문에 좋은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목사고 장로고 권사고 집사라는 이유 때문에 부정적인 인상을 줄 때가 더 많습니다. 분명 기독교의 위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의 인격입니다. 우리의 인격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진실함과 겸손함, 정직함, 이런 것들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인격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 배양에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인격 훈련, 여기에 초점을 모아야 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