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디모데 훈련(7) : "집사와 아름다운 지위" (딤전 3:8-16)

  • 잡초 잡초
  • 666
  • 0

첨부 1


- 설교 : 김흥규 목사

<지도력의 위기에 처한 에베소 교회>
오늘 우리는 초대 교회의 또 하나의 직분, '집사'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감독'(episkopos)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초대 교회의 직제는 오늘날의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아주 소박하고 단순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아직 안수받은 성직자나 일반 평신도와 같은 이중 구조가 없었습니다.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었던 에베소 교회, 그리하여 바울이 디모데 전서를 쓰고 있는 배경이 된 에베소 교회는 주로 나이 많은 원로들이 장로 역할을 했고, 장로들 중에 지도급 인사가 감독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젊은 남녀들에게 집사직을 맡겨서 교회 재정관리나 구제 등과 같은 실제적인 일을 돕게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에 해당되는 희랍원어 'DIAKONOS'는 흔히 'HELPER,' 즉 '조사'(助師), 즉 '돕는 사람' 혹은 '봉사자'로 번역을 합니다. 장로들을 도와서 교회의 실질적인 살림을 맡아 했다는 말씀이지요.

어쨌거나, 사도 바울이 말하는 집사직을 꼭 오늘날의 집사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집사에 대한 자격은 성직자나 평신도나 불문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교회 안의 여러 직분들 가운데 특히 집사와 권사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 집사와 권사 직분을 정한 이유가 바울 선생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딤전 3장 전체는 교회의 지도력(leadership)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이 질서는 언제나 지도력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크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첫째로, 교회 지도자들 중에 일부가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보였습니다. 딤전 5: 19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 안에 장로들에 대한 고발이 종종 일어났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5: 22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가 아무나 경솔하게 안수해서 지도자로 세우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들 지도자들이 무엇인가 죄를 저질렀는데 그 죄에 끼어들지 말라고도 경고합니다. 딤전 5: 1에 보면, 사실 디모데는 나이 많은 이들, 즉 장로들을 꾸짖고 싶어했는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들을 나무라지 말고 마치 아버지를 대하듯 잘 권면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 중에 일부가 그 인격과 윤리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에베소 교회 안에는 적어도 바울이 볼 때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력을 확보하려고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들 거짓 지도자들은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교훈'을 가르쳤으며(1: 3), 자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가운데 스스로 '율법 교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1: 7).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여자들이었습니다. 딤전 5: 13 말씀으로 보건대 이 여자들은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빈둥거릴 뿐 아니라 수다를 떨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볼 때 이런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주에 살펴 본 것처럼 교회 지도자들 중에 먼저 가장 우두머리 격인 '감독'이 갖추어야 할 인격적, 도덕적 자질들에 대하여 자세히 열거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주로 '설교'와 '교육'에 치중했던 장로들, 혹은 감독과 달리 교회내의 실질적인 살림을 도맡아 했던 집사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볼 때 집사들 역시 교회 안의 아주 주요한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에 감독 못지 않은 자질을 구비해야만 했습니다.

<집사가 구비해야 할 덕목들>
그렇다면, 집사가 갖추어야 할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자질들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기 전에 먼저 행 6: 1-6에 나타난 집사직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자기 출신 과부들이 자꾸만 구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 12 사도들은 하나님 말씀 전하기에 바빴는데 이와 같은 교회 안의 문제를 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도무지 여력(餘力)이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專務)하기로 하고 7 집사를 뽑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사직의 기원은 초대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집사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모두 3 가지 자격요건이 특히 필요했습니다. '신망이 있고,' '성령이 충만해야 했고,' 그 다음에 '지혜가 충만해야'만 했습니다(행 6: 3). 여기서 '신망'은 교회 안팎으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 즉 인격적으로 무난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믿음이 좋아서 성령이 충만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혜, 즉 교회 일을 다루는 솜씨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의 7 집사로 뽑히기 위해서는 인격과 신앙과 실무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바울 선생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집사의 덕목들도 이 세 가지 영역으로 대별해서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1절 말씀에 보면 집사 가운데는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남자들에게는 주로 안수 집사 직분을 주고 남자에게는 권사 직분을 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여성들에게는 권사직분을 줍니다. 그 성서적인 근거를 바로 여기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장로교와 달리 우리 감리교는 남자나 여자나 다 집사나 권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본문 8-13절 전체를 남녀 구분 없이, 또한 집사나 권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입니다.

① 자 그렇다면 집사 혹은 권사가 갖추어야 할 인격적인 덕목은 무엇입니까?
감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실 바울이 언급한 집사의 자질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의 인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집사가 되려면 8절에 보면 '단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1절에 보면 여자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 역시 '단정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 새번역 성경은 '단정하며'라는 말을 '신중하며'로 번역했습니다. '외모가 단정한 것'과 '신중한 것'이 어떻게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 확신이 가지 않지만 두 뜻을 절충한 번역을 우리는 개역 개정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정중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외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신중해서 정중하고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좋은 집사, 좋은 권사들이 되시길 원합니까? 먼저 단정하십시오. 신중하십시오. 정중하십시오. 그리하여 위엄을 잃지 마십시오!

둘째로,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않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해서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한 입으로 두 말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에서는 저렇게 말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분명 이것은 지키기 참 어려운 말이지만 초대 교회에서 집사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집사는 주로 중매쟁이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장로들과 일반 신도들 사이에, 혹은 성도들 사이에 중재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이들이 상황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꾸면 결코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언어 문제는 특히 여자 집사들의 경우 더욱 심각했는데 본문 11절에 보면 '참소(讒訴)하지 말며'라는 말이 나옵니다. '참소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남을 헐뜯는다는 말이 아닙니까? 모함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에베소 교회 안에 여성 지도자들, 즉 여자 집사들의 경우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떨고 다른 사람 흉보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딤전 5: 13 참조). 바울이 볼 때 집사가 언어 문제에 순결하지 못하면 자격이 없습니다! 약 3: 2이 말씀하듯이 우리는 다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지만 말에 실수를 줄이는 것이 경건의 첫 출발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좋은 집사, 좋은 권사, 아니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원합니까? 혀를 길들여야 합니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해서 안됩니다!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듯이, 짠 샘이 단 물을 낼 수 없듯이, 좋은 그리스도인은 언어 사용을 바로 해야 합니다(약 3: 11-12 참조). 좋은 그리스도인의 외적 표현이 언어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술에 탐닉해서 안 됩니다. 여자 집사의 경우 11절에 보면 '절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술에 인박인 사람이 좋은 집사, 좋은 권사 되기는 어렵습니다. 누구는 적당히 반주(飯酒) 정도로 드는 술은 약주(藥酒)라서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도 말하지만 점점 알코올에 중독될까봐, 그것이 걱정입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말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경건에 유익합니다.

여러분, 술에 취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새술에 취하시기 바랍니다(행 2: 13 참조). 성령의 새술은 술값 안 써서 좋고 맑은 정신이라서 좋고 건강에 좋고 두루 좋은 것뿐입니다. 좋은 집사, 좋은 권사는 술에 인박인 사람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더러운 이를 탐해서 안 됩니다. 욕심 사나워서 부정한 이득에 눈이 멀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여성 집사의 경우 돈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초대 교회 안의 재정 문제는 주로 남자 집사들이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헌금을 수납(受納)하는 집사들이 돈 문제에 정직하고 투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왜 돈에 대하여 욕심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8절에 보면, '더러운 이(利),' 즉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당한 것이 아닌 이득에는 눈이 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에베소 교회는 교회 헌금 다루는 일을 집사들이 맡아서 했는데 특히 가난한 과부들을 돕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집사들이 교회 재정을 운용함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것은 교회 공동체 전체에 큰 폐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 문제에 투명한 것은 참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좋은 집사, 좋은 권사들이 되시길 원합니까? 물질 문제에 깨끗하십시오! 딤전 6: 5의 말씀을 특히 귀담아 들으십시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② 집사 혹은 권사가 갖추어야 할 신앙적인 덕목은 무엇입니까?
집사가 구비해야 할 자격 요건은 대부분 개인의 인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9절을 보면 신앙적인 덕목이 나오는데 이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비밀'이 '깨끗한 양심'과 굳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이 선한 양심과 굳게 결합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 선한 양심을 갖고 공통 선을 추구하지 않고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쫓을 경우 믿음은 형편없이 곤두박질 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믿음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제가 볼 때 이 '믿음의 비밀'은 16절의 '경건의 비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읽어볼까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이 딤전 3: 16을 흔히 '기독론적 찬송'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6 가지 모습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지요. 즉, 예수께서 육신으로 태어나셨고(1), 성령으로 의롭다 인정받으셨고(2), 천사들에게 보이셨고(3), 만국에 전파되셨고(4), 세상이 예수님을 믿었고(5), 영광에 싸여 들려 올라가셨습니다(6). 바로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본문 15절 말씀처럼 우리가 모인 이 집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로 만들어 주는 줄로 믿습니다!

디모데 전서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가 '하나님의 집'(oikos theou)입니다. 이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부활, 승천의 비밀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나 교회 안의 모든 직분 맡은이들이 바로 이 '믿음의 비밀,' 즉 '경건의 비밀'을 붙들 때 우리가 모인 이 집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크도다, 즉 위대하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좋은 집사, 좋은 권사가 되시길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믿음의 비밀, 경건의 비밀을 붙드십시오!

③ 집사 혹은 권사가 갖추어야 할 실무 능력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교회에서 7 집사를 선택할 때 중요했던 것이 '지혜의 충만'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혜를 실무적인 행정 능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열거한 집사의 덕목들 가운데 어떤 것이 정확하게 이 실무 능력과 일치할까요? 먼저 여자 집사의 경우, 11절 맨 끄트머리에서 말하는 '모든 일에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인격과도 관련이 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이든지 척척 잘 해낼 수 있는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실무 능력과 관련해서 제가 진짜 주목하고 싶은 구절은 12절 말씀입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어떻게 교회의 살림살이하는 것, 즉 실무 행정 능력과 관계 있을까요? 제가 볼 때 가정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교회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직접 세워주신 가장 소중한 기관들이요 하나님 나라와 가장 닮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신성하게 잘 다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정절을 잘 지키고, 자녀들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교회 일도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바울의 확신이었던 것입니다.

옳습니다. 한 가정, 즉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도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좋은 집사, 좋은 권사가 되시길 원합니까? 가정의 관리 능력(OIKONOMIA)이 교회의 관리 능력과도 직결되어 있음을 믿으십시오!

<집사가 받을 상: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0절에서 이와 같은 자질들을 먼저 시험해보고 책망 받을 일이 없으면 그 때 집사의 직분을 주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덥석 직분부터 주어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그 기간이 얼마라고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 사람의 인격이나 신앙, 관리 능력 등이 충분히 드러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단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사도 바울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직분을 맡기는 일에 성급하거나 경솔해서는 안 됩니다!

자 그렇다면,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3절을 보세요.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지위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합니다. 초대 교회 안에 있었던 위계 질서, 즉 집사, 장로, 감독 등의 직분이 있을 때 높은 직분으로 한 단계 더 상승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의 위험성은 직분을 하나의 계급이나 신분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아름다운 지위'는 성도들이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게 될 존경과 칭찬 혹은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얻게 될 상급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 다음 둘째로, 집사 직분을 잘 감당할 경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충성되이 잘 감당할 때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의 비밀, 즉 경건의 비밀을 깨달아 더욱더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교회 안에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위치를 잡아간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여기 계신 분들, 특히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은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좋은 집사님들 좋은 권사님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