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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와 자녀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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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인덕 목사

성경은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고 전도서 12 장 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정직한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 아름다운 말로 전하기를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잠언 25장 11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이라고 모두 말이 아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고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로 해야 진리도 빛나는 것입니다.
사실 언어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인간 관계를 메마르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정 언어는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생기가 나게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감정언어만을 사용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언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언어보다는 감정언어를 많이 쓰는 사람이 성공을 만들고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구 사회는 감정 언어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듣는 첫 소리가 바로 감정 언어입니다.
"Hi!"  "Thank you!"  "Sorry!"  "OK!"  "Very good!"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만나도 "하이!" 조금만 실수해도 "쏘리!"라고 합니다. 물건을 사지 않고 나와도 점원은 "땡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감정 언어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인사는커녕 눈치를 살피고 멀뚱멀뚱 훑어봅니다. 길을 가다 부딪쳐도 아무 말도 안 하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서로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게 한국 남자들이라 합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멋있습니다" "잘했습니다" "최곱니다"
이런 말들이 감정 언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면의 정은 많으나 딱딱하고 비판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감정 언어를 많이 듣고 살면 사람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긍정적이고 관용적이며 따뜻한 사람이 됩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우리는 지금 나를 낳아주신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왔다고 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자라난 환경이라든가 부모의 교육방법이라든가 하는 것 때문에 부모에게 어떤 불만이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의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마음이야 누군들 없겠습니까 마는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한들 내 인생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부모가 내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탄식하고 반항하고 몸부림쳐 봐야 그건 괜한 시간 낭비요 헛된 힘만 빼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 시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전해준 계명들이 있습니다. 특히 돌판에 새겨서 전해주신 명령을 우리는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10계명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계명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계명 두 부분으로 다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명으로부터 시작해서 네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계명이고 다섯 번째로부터 열 번째까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계명입니다. 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계명 중 첫 번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은 효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혹평을 하곤 합니다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말일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가운데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계명 중 첫 번째가 부모 공경일 정도로 성경은 부모 공경을 무수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못되게 구는 자식은 돌로 쳐죽이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세 분의 부모가 계십니다. 한 분은 나를 낳아주신 육신의 부모이고 또 한 분은 나에게 생명을 알게 해주고 더 풍성해 지도록 가르쳐 줌으로 신앙을 길러주는 영적인 부모로서의 목회자 그리고 우리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 세분의 부모는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영적인 부모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기에 육신의 부모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영적인 부모를 바로 섬길 수가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를 어찌 바로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부모 공경은 하나님 공경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듯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에게 효를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할 때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 모든 우리들의 모습을 하나님은 가증스럽게 여기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못된 부모 마음에 안 드는 부모라면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씀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주 안에서 부모에게 복종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부모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라고 하는 아니라면 우리는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믿지 말라던가, 나쁜 짓 하라든가 뭐 이런 것이 아니라면 부모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렇게 성경이 권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도 되는 것입니다.

서구 사회는 언어에 있어 감정언어가 흘러 넘치지만 우리 사회는 감정언어가 충만한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언어만 무성하고 감정 언어가 메마른 가정, 학교, 사회속에서 성장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감정 언어가 몸에 익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서 감정 언어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무슨 말로 이 사람을 기쁘게 해줄까?"를 생각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감정의 언어를 사용해 보아야 합니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인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하는 말이라고 거짓된 말을 해선 안됩니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기분 좋은 내용을 말해야 합니다. 비록 하루아침에 잘 될 수는 없겠지만 반복하여 훈련을 하면 됩니다. 낙숫물에 바위가 구멍이 내듯이 계속 감정의 언어를 쓰게 되면 인격도 변하고 삶도 변할 것입니다.

사례로 본 감정 언어와 사실 언어를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실언어 사례
○ "생각나면 널 위해 기도하겠다."
(기도하겠다는 말이며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듣는 이는 기분이 좋기보다 씁쓸합니다.
왜냐하면 '생각나면' 기도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인상이 딱딱하게 보이네요."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상대는 기분이 상하기 쉽습니다.)
○ "넥타이가 유행이 지난 색상입니다."
(이런 사실 언어를 들으면 말은 맞지만 듣는 사람은 마음이 좋지 않죠.)

② 감정언어 사례
○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 (자녀들에게)
○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 "인상이 좋으시군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 "역시 당신이야말로 최고야" (일하는 모습을 보며)
○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방문해서)
○ "넥타이 색상이 좋습니다" (새 넥타이 맨 동료에게)
○ "난 당신밖에 없어요" (남편에게)
○ "당신 갈수록 멋있어." (아내에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부모임을 공경해야 하겠습니까?
부고 공경은 한 마디로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왜 부모에게 복종하라고 하느냐 하면 그렇게 복종할 때 부모가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어릴 적에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그런 자식이 부모에게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말 잘 듣는 자식보다 더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니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게 되면 그런 자식을 보면서 부모는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는 자녀가 부모에겐 희망입니다. 거기다가 성적이야 어찌됐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나이가 들게 되면 직장 생활 잘하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만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거기다가 가끔 안부전화라도 해 드리고 아니면 직접 찾아  뵙고 인사드리면 그런 자식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은 또한 기쁘며 흐뭇합니다. 거기다가 용돈까지 드린다면 금상첨화가 되겠죠? 노년에는 무언가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오인이라고 그냥 집구석에만 앉아 계시라고 하지 말고 오히려 자유롭게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려야 하고 아니면 여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건 입을 즐겁게 해 드리고 귀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모와 자녀간에도 사실 언어보다는 이런 감정 언어를 많이 나눠야 합니다. 또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을 함께 나눌 상대가 없어서 더 힘이 들어 합니다. 그러기에 시간을 일부러라도 내서 한 자리에 앉아서 별 것 아닌 이야기라도 함께 주고받을 수 있다면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고 참된 효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처럼 부모와 자녀가 따로 사는 가정이라면 전화를 통해서라도 이런 저런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지를 않습니까? 오히려 마주 보고는 이야기하기 힘들어도 전화를 통해서는 더 쉽지를 않습니까? 그래서 격려도 해 드리고 칭찬도 해 드리며 위로도 해 드릴 때 그것이 진짜 부모 공경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사랑의 고백입니다. 부부간에만 사랑의 고백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께 드리는 사랑의 고백이야말로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 말씀에 복종하고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감으로 그리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나가며 부모의 좋은 말벗이요 격려자가 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 6장 2절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내가 하는 말에 가장 크게, 가장 빨리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기 전에 바로 내 자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 입의 말이 나를 얽고 내 입의 말이 나를 잡는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일지라도 사실 언어를 버리고 감정 언어를 많이 사용하면 부정적, 비판적 마음이 녹아지고 긍정적이고 관용적이며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을 지나치게 사실대로 말하여 마음을 상하게 하기보다는 밝고 환한 말,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말,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때 우리 삶에 활기가 넘치고 나의 삶도, 나의 가정도, 나의 직장도 궁극적으로 내가 가는 모든 곳이 밝고 환하게 바뀔 것입니다.
감정언어는 우리에게 성공을 만들어 주고 행복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게 될 때 주어지는 상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지는 일반적인 소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땅에서 잘 되며 장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마디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해야 내가 잘 될까 하기 이전에 먼저 부모에게 잘하십시오. 육신의 부모를 잘 섬기며 영적인 부모를 잘 섬기십시오. 그리고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 뜻에 복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하신 대로 우리들의 삶이 열려질 것입니다. 풍성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잘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그랬으니까 계획하는 대로 열려질 것입니다. 필요한 것에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몸도 건강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땅에서 잘 되고" 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부모 공경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 공경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공경 하나님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도록 그렇게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귀한 복을 다 누리시는 효자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중요합니다. 미국 카톨릭대학의 클리프 노타리우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00년 해로한 부부나 파경을 맞은 부부나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서로 주고받는 언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감정 언어를 많이 구사하는 반면 실패한 부부는 100마디 중 10마디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언어를 구사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 가정 법원의 조지 사바스 판사는 가정 법원 판사로 이혼을 청구한 많은 가정을 화해시키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의 사례에 의하면 가정의 파경은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는 남편이 직장에 나갈 때 문밖에서 "잘 다녀오세요"하고 인사를 나누고 또 돌아와서도 "잘 다녀오셨어요?" 하고 맞이하며 부부간에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하루 몇 번만 나눈다면 가정 불화는 사라질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옛 속담이 있듯이 말 한마디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부모 공경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바로 가르침으로 이 모든 것이 훗날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냥 오냐 오냐 하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에게 복종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그 자녀들이 꿈을 키우기에 앞서서 먼저 주의 종을 섬기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주의 종을 섬기는 모습을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광 돌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그렇게 행하며 그렇게 본이 되어 가르칠 때 자녀들을 부모를 자연스럽게 공경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복된 성도요 자녀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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