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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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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용호 목사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효행의 가르침은 많은 종교에서도 가르치고 성현들이 가르쳐 온 주제가 됩니다. 특히 사서삼경의 맹자편에 보면 '효'를 가르친 많은 교훈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윤리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속이 가르치는 효

  한 구절을 소개하면 불효유삼(不孝有三)하니 무후위대(無後爲大)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땅위의 수만가지 불효 중에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불효가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첫째는 아버지를 불의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가 좋아한다고 하여 녹(뇌물)을 받는 벼슬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선조의 제사를 이어주지 못하고 후대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낳아주지 못하는 여인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칠거지악이 생겨났습니다.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일곱 가지 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시부모에게 불손한 경우, 둘째는 자식을 못 낳는 경우, 셋째는 음탕한 경우, 넷째는 질투하는 경우, 다섯째는 나쁜병이 있는 경우, 여섯째는 말을 많이 하는 경우, 일곱번째는 도둑질하는 경우입니다. 이 일곱 가지가 아내, 며느리를 쫓아내어도 국가의 법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칠거지악입니다. 이 칠거지악이 씨받이 문화를 만들었고 첩 문화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일곱 가지 잣대를 가지고 평가한다면 남아날 며느리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남아 있을 아내도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문화가 우리 가정을 지배해 왔고 수많은 여성들에게 피눈물을 쏟게 한 악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맹자는 효행을 가르치면서 사후 부모공경에 대하여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특히 제사법은 사후 부모를 제사로 섬기는 것이 효의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이 제사를 강조하되 단순히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후대를 이어주지 못하는 자식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시묘문제입니다. 제사와 시묘살이 하는 것에 대하여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고사에 의하면 김자강이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죽었을 때 3년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무덤 옆에 움막을 치고 홀로 그렇게 부모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고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한달 후 아버지가 별세하자 또 3년 시묘에 들어갔습니다. 6년째 되던 해에 그 처자들이 보다 못하여 움막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시묘살이는 두 가지 큰 폐해를 가져왔는데 첫째는 노동력의 낭비입니다. 농경사회는 가장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이라는 사람이 무덤 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그렇게 있으니 노동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찾아오는 두번째 폐해는 가정의 가난입니다. 온 가족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효행의 가르침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 왔습니다.

  효는 도덕의 기본

  효는 보편적인 도덕입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 혼자쯤은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욱 다른 자녀들보다 효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엄격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모공경은 보이는 부모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교나 세속의 효는 부모 섬기는 것을 생전의 부모섬김과 사후의 부모섬김으로 규정하지만 성경적인 효행은 생전에 육신의 부모를 섬김과 동시에 우리에게 부모를 주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은 도덕율임과 동시에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모를 인격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부양과 효도는 다릅니다. 부모를 부양한다고 해서 효를 다했다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요즘 애완 강아지도 부양합니다. 애완 강아지에게 먹이고 입히고 병원에 데려가고 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는 부양의 대상이 아닙니다. 무인격으로 부양하는 것은 애완동물입니다. 그것은 장난감입니다. 악세사리, 취미생활입니다. 부모공경은 그럴 수 없습니다. 계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은 인격으로 섬겨야 합니다.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홀로 사는 아버지에게 명절 때 삼형제가 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기 노후 때에 아버지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짐스러워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립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목공소에 가서 아주 고급스런 궤짝을 하나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황금빛 나는 자물쇠를 하나 사서 갖추고는 그 궤 안에 유리조각을 가득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물쇠로 잠그고는 방안에 두었습니다. 명절 때에 객지의 삼형제, 며느리가 왔습니다. 와 보니 전에 없던 궤짝이 하나 보이므로 꾀가 많은 장남이 살짝 아버지에게 와서 물어보았습니다. "저 궤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지금은 말할 수 없지" 둘째 아들도 궁금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저 궤가 무슨 궤입니까?" "지금은 말할 수 없지" 아들들은 호기심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형제가 같이 가서 아버지에게 졸랐습니다. "저 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내가 죽고 나거든 삼우 지낸 다음 모두 함께 있을 때 이 궤를 개봉해라, 유언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아들들이 아버지를 극진히 모십니다. 상감대접을 받으면서 노후를 잘 보내다가 드디어 임종을 했습니다. 아들들은 온 고을이 떠들썩하도록 장례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을 사람들 앞에 맛있는 음식을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삼우가 지난 다음 아들 며느리들이 둘러앉아 궤짝을 개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마다 '황금이 들었는가 보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풀어보니 유리조각만 가득했습니다. 유리조각을 다 들어내고 맨 밑바닥에 글씨가 있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큰아들, 작은아들이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이럴 수 있는가?" 하고 노발대발합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궤짝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두 형님이 펄펄 뛰며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을 보면서 보다못해 막내아들이 "형님들, 아버지가 오죽 했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우리가 궤를 섬겼지 아버지를 섬겼습니까?" 두 아들은 동생 앞에 또 한번 창피를 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고사는 옛날 중국의 고사이지만 어쩐지 오늘 현실에도 접목이 되는 고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합니다.

  인격적으로 섬기라

  어떤 경우에는 집의 애완 강아지 만큼만 섬겨도 효자소리 듣습니다. 애완 강아지 이하 취급을 받는 부모들이 130만명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전체 노인인구 가운데 40%가 홀로 살고 있답니다. 홀로 사는 노인이라고 해서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건강도 있고 여건도 좋아서 자진해서 홀로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 중에 아주 마음 아픈 통계가 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 가운데 제일 많은 경우는 자식들이 부양을 하지 않아서 버림받은 노인들입니다. 두번째는 같이 사니까 불편해서 홀로 사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오늘 우리가 무겁게 인식을 해야 합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키베드'라는 말입니다. 키베드는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존중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무겁게 모시라는 것입니다.

  부모경시 풍조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도덕적 위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면서 부모에 관한 넓은 의미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관한 여러 계명이 있는데 성경에 여섯 가지 나옵니다. 첫째는 육신의 부모입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입니다. 두번째는 나라의 왕을 부모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나의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세번째는 고용주나 주인에게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종들이 나아만에게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네번째는 스승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나의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다섯번째는 직장의 상관, 지도자들, 교회의 지도자도 아버지라는 개념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나의 자녀들아"라고 불렀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보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여섯번째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연령상 윗 사람들을 아버지 대하듯 하라, 늙은 여자를 어미 대하듯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를 이해하라

  효도는 이렇게 사회적인 측면까지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이해하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는 연구대상, 계산대상이 아닙니다. 부모의 약점, 무식, 허물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공경해야 합니다.

  한 초등학교의 수년 전 미담입니다. 석이라는 아이가 도시락을 가져와서 펼쳐보면 머리카락이나 모래알 등 불순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옆의 친구들이 전부 놀립니다. "얘, 너의 엄마는 장님이냐?" 도시락 때문에 석이는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석이엄마는 장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석이는 말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보호합니다. 한번은 단짝친구가 석이집에 놀러왔는데 석이엄마가 진짜 맹인임을 알고 그 때부터 이 아이가 친구들을 말렸습니다. "얘들아 석이엄마는 진짜 맹인이야. 우리가 이러면 안돼" 하면서 석이를 보호하고 석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학교 안에 알려져서 효자상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약점을 이해하고 감싸안고 묵묵히 감수했던 석이의 자세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성경에도 보면 효자도 많고 불효자도 많습니다. 함이라는 아들은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아랫도리를 벗고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본 아들 함은 밖에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불을 가지고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을 해서 덮어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함은 자손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효행의 복을 받았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입니다. 그는 당대의 미남자요 왕자요 그의 긴 머리카락은 많은 사람들 앞에 자랑거리였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천추의 불효자였습니다. 이 아들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자랑하던 머리카락 때문에 도망가다 나뭇가지에 걸려 푸줏간의 고깃덩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서 다윗의 신하들의 칼날에 비참한 종말을 맞았던 아들입니다. 룻, 이삭, 셈, 야벳, 주님은 효자의 모범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모의 약점을 이해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답지 못해도 부모입니다. 무식해도, 실수해도 부모입니다. 그 자리는 우리 자식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천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무겁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다 알 수 있습니까?

  부모의 사랑과 눈물

  부모의 사랑은 네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첫째는 먼저사랑입니다. 사랑도 값이 있습니다. 먼저사랑이 더 고급사랑입니다. 부모사랑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먼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한몸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자식이 팔을 다치면 내 팔 다친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 부모사랑, 한몸사랑입니다. 세번째는 불변한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은 부모들에게 인터뷰를 해 보면 마지막 한마디씩은 남깁니다. "그놈들 잘 살면 내가 보람을 느끼는 거지요" 버림을 받았는데도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네번째는 끝까지 사랑합니다.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사랑해도 부모사랑에는 비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고 잘되면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들이 아프고 실패를 하면 그들의 불행을 안고 또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고 김용기 장로님은 50이 다 된 아들, 며느리들이 나들이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신고를 받습니다.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장로님은 아들들, 며느리들을 꿇어 앉혀 놓고 세 가지 말씀을 합니다. 예외가 없이 올 때마다 합니다. "기도하고 떠나거라, 누구하고도 다투지 말아라, 빨간불이 켜지면 서고 파란불이 켜지면 건너가거라." 여러분, 나이 50이 다 된 아들을 앉혀 놓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하는 참 유치한 이야기입니다. 유치한 이야기이지만 부모의 그 깊고 애틋한 사랑이 담긴 말씀입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노인의 욕구를 알고 섬기자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세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 젊은세대와 노인세대의 욕구가 옛날보다 열 배가 넘는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으면 정신적인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제는 핸드폰이 지체와 같습니다. 아이들보고 컴퓨터 하지 말고 지내라하면 못 견딥니다. 컴퓨터가 팔, 다리처럼 되었습니다. 카페, 극장에 가지 말라고 하면 못견딥니다. 이제는 젊은 세대들에게 수많은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우리가 젊은 세대를 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인들도 이전보다 몇 배로 욕구가 커졌습니다. 노인들의 욕구를 순위별로 보면 첫번째는 건강입니다. 내가 오래 살든 일찍 죽든 건강하게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욕구입니다. 두번째는 용돈에 대한 욕구입니다. 용돈이 그런 대로 채워지는 노인들은 승용차에 기름이 가득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용돈이 궁한 노인들은 정신적인 안정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기름이 다 떨어져 있는 것처럼 가다가 언제 설 지 모르는 불안한 심리로 산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반려자입니다. 이것은 꼭 부부만은 아닙니다. 대화자입니다. 누군가와 만날 대상이 있고 이야기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홀로 방을 지키는 것은 고문입니다. 친구에 대한 욕구가 강합니다. 네번째는 직업에 대한 욕구입니다. 역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 외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이런 노인들의 욕구를 알고 공경을 해야 합니다. 전부 만족하게 채워드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를 이해하는데는 욕구이해가 상당히 필요합니다.

  부모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자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효도를 해야 합니까? 원리적이면서 실제적인 것은 부모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도의적인 문제, 이것은 효의 근본은 아닙니다. 효의 근본은 신앙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이루어 드리는 영적인 가치가 근본입니다. 그러나 먹는 것, 입는 것, 도의적인 것이 아니고는 부모공경 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부모공경은 먹는 것, 입는 것, 섬기는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큰 것 때문에 맘 상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상합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용돈 문제, 전화 한마디가 부모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이것이 현대적인 효행입니다.

  효부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이 시대 훌륭한 효부입니다. 이 효부는 같은 동네 총각과 결혼했습니다. 이 총각 어머니는 반신불수입니다. 잘 듣지 못하고, 눈도 희미하고 말도 더듬거리고, 기력도 없는 어미니였습니다. 그런 시모가 있는 줄 알면서도 동네 혼인을 했습니다. 20년 동안 시모를 수발하다가 시모는 별세를 했습니다. 이 효행이 알려져 우리나라에서 주는 효부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을 할 때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동안 힘드셨지요, 소감 한마디 해 주세요" "아닙니다. 어머님이 건강하셔서 이래라 저래라 구박하는 것보다 더 편했습니다. 시집와서 나는 첫날부터 안주인 노릇하면서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사회자가 다음 할 말을 잃었습니다. 모든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했습니다.

  맺는 말

  여러분, 효가 무엇입니까? 부모를 대하는 자세문제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자세와 생각이 바르면 어떻게 공경할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절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합니다. 이 자세가 흐트러져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병든 어머니를 모신 그 효부의 마음자세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봅니다. 효행 뿐 아니라 신앙도 우리의 자세, 생각문제입니다. 이것만 바르면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고,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든지 기쁘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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