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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혼] 더 좋은 배필이 되어 하나를 이루는 가정 (창 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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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선옥 목사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매우 소중한 만남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와의 첫 만남이 있습니다. 이 만남을 통하여 유전적인 성품과 재능 등을 이어받고 후천적으로도 그 성장과 교육 등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자라면서 한 집안에 형제자매들과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많은 만남 중에서 남녀가 만나 부부로서의 인연은 저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평생 만남일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남녀의 만남인 결혼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결혼의 기원은 인간들이 필요와 편리에 따라 둘 씩 둘씩 짝을 지어 결혼하여 살기로 작정해서 생긴 제도가 아닙니다. 동물은 결혼하지 않고 자손번식을 위하여 교미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결혼제도는 자손번식이라는 동물적인 단순한 목적만이 아니라 남녀가 한 몸이 되고 한 운명체가 되고 한 인격체로 피차 더 좋은 배필로 하나가 되게 하는 아이디어로 하나님이 직접 고안하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짝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만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류의 첫 결혼식을 주례를 하셨습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다”하시고“내가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고 하와를 지으시고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배필로 평생을 살게 하시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보시고“심히 좋았더라.”감탄사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결혼의 몇 가지 목적이 분명하게 들어나 있습니다. 사람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내가 없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자만 홀로 사랑할 대상자가 없이 고독하게 지내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수면을 거시고 아담의 가슴에서 갈비 대 하나를 뽑는 수술을 하셔서 하와를 지으시고 두 남녀가 평생토록 부부가 되어 행복의 독소인 고독을 처방하는 부부가 되어 사는(Companionship)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서는 부모와 더불어 살아야 하고 장성하면 남녀가 만나 서로가 더 좋은 반쪽을 만나 사랑하며 평생을 교제하며 서로 돕는 배필로 살아야 행복을 누리게 하는 고독을 처방하는 동거생활(Companionship)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남녀가 결혼하여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여러분, 남자끼리 모여 살면 삭막합니다. 그것은 비정상입니다. 여성들도 여자끼리만 공동체로 살아도 비정상입니다. 성경은 동성끼리 Homo Lesbian으로 사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남남이요 이성간에도 마음도 몸도 인격도 재산도 자식도 공유하는 공동체 온전히 하나 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나의 뼈 중에 뼈’가 될 수 있게 천국을 실습하게 마련하신 것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Completeness(일심동체)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첫 여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으셨는지를 보면 결혼의 목적이 분명해 집니다.“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만드셨습니다.

1) 남자에게 배필이 없어 고독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고 교제하며 살도록 사회적인 동물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의 사회성을 부인할 때 인생은 고독해 집니다.

2)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의학계에서 깊이 자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지요? 수술하기 위하여 마취하여 깊이 수면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배필은 반드시 나의 죽음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자식은 엄마가 죽는 고통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 죽음을 통과하여 얻은 자식은 엄마에게 자신의 생명처럼 매우 소중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목숨까지 내 걸고 대수술을 받고야 맞이한 여인이야말로‘나의 뼈 중의 뼈, 나의 가장 소중한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현대 남녀동등의 시대인데도 여자가 눈물만 글썽거려도 가슴이 저려서 견디지를 못하고 쉬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3) 여자는 흔한 흙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남자의 갈빗대 뼈로 만드셨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서 모양새도 별로이지만 여인은 사람의 뼈로 만들었으니 2단계 가공품이어서 모양새도 아름답고 깨끗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흔히 부부가 서로 You're my Better half라 부르고 소개합니다.
확실히 남녀 중에 여자가 더 예민한 듯합니다. 부부가 다툴 때에도 남자는 질그릇으로 제조되어 그 소리가‘뭘 그래’투덜대는데 아내는 뼈로 만든 그릇이어서 그녀의 소리는 차이나처럼‘당신 그럴 수 있어? 병신같이 ’쨍 소리가 납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칭찬할 때도‘과연 당신이 최고야’뿅 가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비위만 상하지 않으면 영성도 풍부하고 부드럽고 따듯합니다.
4) 아내는 남자의 옆구리에 있는 뼈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담의 신체 중 하필이면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을까?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만약 머리로 만들었다면 여성들은 남자들의 머리꼭대기 위에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발꼬락으로 만들었다면 발에 밟혔을 것이다. 갈비뼈로 만들어 여자가 남편의 가슴에 안겼을 때 평안을 누리도록 한 것이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의 뜨거운 피가 생산되는 심장을 보호하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으니 남자는 자기 생명처럼 여인을 사랑하고 보호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자기의 심장이 상처를 받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속상하게 하면 남자의 심장이 썩어서 제대로 사람 노릇을 못 합니다.

저의 말씀은 오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은 기질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흙인 무기물질로 지어졌고 하와는 갈비뼈인 유기물질로 지어졌습니다. 무기물질인 남성들은 유기물인 여성보다 염색체 수도 하나 두개가 모자라는 것이 당연함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첨단 재료로 만든 제조품일수록 그 취급에 주의가 더 필요합니다.

1. 한 자매가 결혼해서 부부싸움 끝에 친정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화가 난 남편은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별렀다. 친정에 온 딸을 보는 부모 마음도 편치 않았다. 며칠 쉬게 한 다음 딸을 돌려보내며 친정아버지가 편지 한 장을 건넸다. 두말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는 즉시 사위한테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편지부터 내밀었다. 신랑이 편지를 받아 들자마자 기겁을 했다.

2.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다. "취급주의: 깨지기 쉬움"
베드로는 아내를 '연약한 그릇'(벧전 3:7)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내들은 실제로 연약하기 짝이 없어요. 마치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아요. 한번 깨지고 나면 다시 붙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귀히 여기라"고 왜?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취급주의를 어기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복습을 하겠습니다. 교육의 효과는 반복할 때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행복한 결혼의 본질은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을 다주는 사랑입니다. 마음들이 하나 되는 참된 섬김에 있습니다. 22,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그 여인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을 느꼈고 저 여인은 나의 뼈 중의 뼈, 내 사람이라는 소유욕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담은 말합니다.‘그대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풀이한다면 “그대는 내 뼈 속에 넣어도 시원치 않고 나는 진정 당신 없이는 못 살아”라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성경에는 언제나 남자가 먼저 사랑의 고백을 하고 남자 편에서 청혼을 해야 정상입니다. 남자가 여인에게로부터 청혼을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남자입니다. 그것은 간사한 정부들의 술책에 속는 것입니다.

남자 성도 여러분, 고백하기 싫어도 남자가“당신은 나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다”고 말을 해 보면 아내가 사랑스러워 집니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으면 사랑스럽던 여인도 덤덤해 질 수 있습니다. 결혼은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신비로운 연합입니다.

그리고“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나님께서 하와를 친히 아담과 더불어 사는 배필로 여자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두 인격체가 상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서로 보완(Help mate)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서로 도우며 섬기며 나아가 서로가 배우자의 부족을 보완하면서 성숙한 하나의 인격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혼생활의 성공은 전 인생의 성공입니다. 결혼생활이 저절로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성공에는 어떤 비결과 노력이 있듯이 결혼생활의 성공도 그 원리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결을 잘 알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1)결혼생활 성공의 개념은 어떤 완성품을 갖는 순간에 발표하는 성명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시험에 합격하여 합격증을 수여하는 것도, 물건을 완성하여 내놓는 상품도 아니며 높은 산을 정복한 기쁨도 아닙니다. 결혼생활의 바람직한 개념은 "과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바로 결혼하는 순간부터 행복의 그림을 두 사람이 그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로가‘행복’이라는 작품을 놓고 한 팀이 되어 최선을 다해 윤곽을 잡고 색칠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그림을 중단하고 싶은 충동도 느끼고, 어느 경우에는 지루해서 성의 없이 그리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성의 없이 그렸던 부분을 다시 손질하여 좀 더 멋있게 다시 손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행복이란 주제에 충실하게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그림을 그려 나가는 그 "과정"이 바로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입니다. 말하자면 결혼한 그날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부부관계에서 겪는 갖가지 희로애락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해하며 느끼며 바람직하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결혼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즉 결혼생활의 성공은 전 일생을 놓고 평가하는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출세나 넉넉함 혹은 쾌락 등을 일시적으로 얻었다고 그 사람의 결혼생활이 성공했다고 볼 수 없고 그것은 다만 영양제 주사나 아니면 마약 주사와도 같이 한 때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2) 부부관계는 서로 돕고 협력하는 Better Half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관계는 어디인가 모자라는 사람들 간의 만남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약점을 어떻게 채워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배우자의 약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어떻게 이해하고 보완해 줄까 하면 그 부부는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약점을 싫다하고 심하게 비판하면서 자기 비위에 맞추려고 완력을 행사하면 불행이 찾아옵니다. 나의 약점을 숨기거나 속이지 말고 서로 인정하고 진실하고 성의 있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도울 때 상대의 사랑을 느끼고 서로 신뢰하게 됩니다. 반면에 사람은 강점, 좋은 점들이 있지요. 이런 점들을 서로가 절하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격려하고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인이 미술을 잘 한다면 같이 음악회에도 가주고 그림 감상도 하고 영화도 같이 가주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정원을 잘 가꾸고 집을 잘 수리하면 함께 거들어 주면서 칭찬도 해 주고 테니스를 좋아한다면 같이 운동도 하고 서로가 따로 놀지 말고 동참하면서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갈등을 서로 배우고 훈련받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갈등이 있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생 자체를 너무나 모르는 사람입니다. 서로가 다른 성격과 생활 습관과 이상을 가지고 만난 이상 부딪치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부딪친다고 느끼지 말고 서로의 다른 점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차이점을 배우도록 힘써야 합니다. 갈등은 서로의 차이점을 조화로 승화시키는 기회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분방이나 독선으로 풀지 말고 조화와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갈등 속에서 양보를 배우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아량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갈등은 보다 더 높은 삶으로 이끌어 올리는 좋은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갈등이 서로 관계를 멀게 하는 것은 너무나 소심한 짓입니다. 진정 성경이 말하는 결혼 관계는 예수님과 신자의 관계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믿는 우리의 약점과 수치스러움을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덮어 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민의 처세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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