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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교회는 가정처럼 가정은 교회처럼 (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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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몬 1: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몬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서로 인사합시다. "행복하십니까?" 다시 인사합시다. "저는 참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여러분 정말 행복하십니까?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나라보다도 행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삿짐을 나르면서도 행복 나르기, 심지어 김치에도 해피김치, 아무데나 행복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전에는 집집마다 똥개를 기르면서도 이름을 전부 메리 아니면 해피라고 지어 불렀습니다. 그런데 실제 행복은 개가 다 물어갔는지 자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피부로 느끼는 행복지수는 별로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의 기준을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건강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위가 높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잃으면 정말 불행할까요? 물론 돈이 많으면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으니 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침대를 살 수는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습니다. 최고급 요리는 살 수 있지만 식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책을 살 수는 있지만 돈으로 지혜와 지식을 살 수는 없습니다. 본래 돈에는 구멍이 뚤려 있었습니다. 줄로 꿰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라고 구멍을 뚤은 줄 알았는데 정작 이유는 다른데 있었답니다. 돈에 뚤린 그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사람이 돈의 구멍을 죄 막아 놓아 세상은 보이지 않게 되어 돈만 바라보다가 모두가 다 돌아 버렸습니다.

건강하지 못하고 병들면 모두 불행합니까? 어떤 사람은 건강할때는 모르고 살던 하나님을 질병에 걸려 큰 고통중에 만났습니다. 병이 들어서야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만한 자신의 모습을 질병을 통해서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위가 높아야 행복합니까?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면 완벽하게 행복해집니까?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면 빨간엉덩이가 잘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허물이 더 잘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지위가 낮을 때는 별로 드러나지 않던 허물이 높은 지위에 발탁되니까 얼마나 잘 드러납니까? 그래서 언론과 여론의 공격을 받고 망신을 다 당하고 내려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행복을 발견하고 찾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을 통해 주시려는 큰 행복을 깨닫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순종하여 가정안에서 행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에 라이샤라는 각료가 있었습니다. 클린턴 정부의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관이었는데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어느날 출근하는데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아빠, 아빠가 돌아와서 내가 잠들어 있으면 꼭 깨워주세요." "왜 그러냐?"고 여러번 다그쳐 물었더니 그러더랍니다. "내가 잠들었을때 아빠가 내 곁에 같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잠들고 싶어서요."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끝에 장관직을 사임하고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클린턴도 그를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불행해졋을까요?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를 주무르는 장관직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샘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1. 가정은 최선의 선교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슴하신 선교지가 어디입니까?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아주 먼 곳 까지 다양합니다. 순종하려면 가까운 곳만 해도 안되고 먼곳만 해도 안됩니다. 적당히 먼곳만 돌아다녀도 안됩니다. 자기 입맛대로 편리한대로 하여서는 온전히 칭찬들을 수 없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먼저 가까운 곳만 생각해 봅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입니까? 가정입니다. 내 집입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누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한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간수와 온 가족이 다 믿고 다 구원받았습니다. (행 16:33, 34)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고넬료도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베드로를 청하여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놓고 기다렸다가 말슴을 듣고 모두 다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노아도 자기 가족들을 방주로 이끌어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가족만은 모두 구원했습니다.

빌레몬 역시 가족들을 모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선교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들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중 믿지 않는 가족들은 미전도종족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보다도 먼저 가슴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며 그리스도께 인도하여야 하는 전도대상자입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열매를 맺으려면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선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전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핀잔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고생하며 애를 써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늘 경계합니다. 여러번 전도해도 반응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원주민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더 기도하고 더 사랑하며 다시 문을 두드립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까지 복음을 들고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사명이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교사가 "이 사람들은 내가 몇 번 전해 보았지만 소용없어. 믿지도 않을 것이 뻔한데 스트레쓰만 쌓이도록 뭐하러 전도해?" 하고 복음을 전하기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선교사는 거기에 더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모국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정에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들을 구원할 사람은 너 밖에 없다. 네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권하여 구원받도록 도와 주어라." 여러분 진심으로 예수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을 소개하십시오. 여러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나는 너를 사랑해' 이 말을 경상도 버젼으로 해 보십시오. 예, '내 아를 낳아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슴하십니다. "내 아를 낳아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를 낳아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요? 영적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가족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여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들어가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여러분이 기도하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가정에서 선교사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님께, 형제들에게 예수 생명을 심는 일을 시도하여 열매맺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복음이 들어가고 확산될 때 가정이 온전한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은 최상의 훈련장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곧 바로 순종하십니까? 어디에 가서 하십니까? 예를 들어 사랑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누구에게 달려가서 사랑을 실천하십니까? 가정에서 제일 먼저 실천해야 될 줄 믿습니다. 가족들에게 먼저 적용하여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영적 훈련장입니다.

어느날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이 가정을 통해서 많은 훈련을 시키고 계심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많이 싸웁니다. 싸우면서 울기도 하고 속상해 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안타까와 처음에는 형제간에는 싸우면 안된다고, 때리면 안된다고 야단을 많이 쳤습니다. 벌도 세우고, 때려도 주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싸울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힘이 센 놈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맘이 고약한 놈도 만날 것입니다. 머리가 비상한 놈도 만날 것입니다. 그런데 싸워보지도 못하고 자라다가 어느날 갑자기 싸울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형편없이 깨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큰 상처를 받아 살 의욕을 잃어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가서 싸움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부터는 싸워도 웬만하면 모른척하려고 하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버려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형은 형대로 힘으로만 밀어부치기 보다는 동생을 배려하고 참는 것 같더라구요. 동생은 동생대로 힘이 약해도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힘이 센 형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지키는 지혜를 짜내느라고 애쓰더라구요. 제가 조금만 일찍 그것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가정은 작은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기 앞서 가정에서 많은 것을 훈련하고 배웁니다. 사랑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 말하는 법,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 사람을 이해하는 법, 위기를 극복하는 법 등 참 많은 것을 배우고 훈련합니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많아서 배우기가 훨씬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가족의 구성원이 적어지고 자녀가 적어서 과보호하여 배울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정에서 꼭 배워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영적인 훈련을 가정에서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사회에서 또는 교회에서 참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참된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가족을 용서해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먼저 네 가족부터 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빌레몬에게 바울은 오네시모를 돌려 보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였는데 어느날 주인의 재물을 훔쳐 도시로 달았습니다. 도시에서 죄를 짓다가 잡혀 감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구원받았으며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출감하게 되자 먼저 빌레몬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라고 편지를 써서 그의 손에 들려 보냅니다. 빌레몬은 그의 가정에서 먼저 그리스도의 용서를 큰 죄를 짓고 달아났던 노예에게 베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훈련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있으면 먼저 가족에게 달려가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여러분이 먼저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주의 명령을 따라 섬기기 시작한다면 가정이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큰 행복이 찾아 올 것입니다.

3. 가정은 최고의 교회입니다.

빌레몬의 집은 작은 교회였습니다. 아마도 빌레몬이 부유한 사람인지라 그의 집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빌레몬의 믿음이 성숙하여 자원하여 성도들의 모임 장소로 자기의 집을 기꺼이 드려 헌신하였던 것 같습니다.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서 본문을 살짝 바꿔 읽어 봅시다. '동역자된 문기태와 및 자매 권세영과 우리와 함께 군사된 한빛 인성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우리 집에는 우리 가족만 있지 않고 교회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어떤 느낌이 듭니까? 참 영광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가정에 기도가 있고 우리의 가정에 예배가 있으며 우리의 가정에 그리스도가 주인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면 우리 가정을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이 교회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사모님이 어느 주일날 이부자리를 싸들고 설교하는 목사님 강단으로 올라오더랍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라 "아니 여보 뭐하는 거요." 하니까 "여기서 삽시다. 당신이 여기서 설교할 때는 천사같은데 집에 오면 매일 짜증이고 신경질로 가득차서 난 집이 지옥같은데 여기서 살면 천국 같을 것 아니오." 하였답니다. 사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누가 지어낸 얘긴지는 모르지만 일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앞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조심하고 경건하고 은혜스럽게 서로 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정에 돌아가서는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가정도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연장입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시요 식사때마다 함께 하시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손님이시라는 어떤 글귀처럼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주장하셔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자기 형님 가정을 지켜 보면서 깨달았다고 하며 말하기를 "확실히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더라. 아이들이 안정되어 있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세대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격는 아이들과는 달리 바르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 확신있게 주장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는 교회가 있습니까?

여러분 가정은 여러분을 행복하게 세워주기 위해 하나님이 내려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가정안에서 행복을 발견하십시오. 가정을 통해서 행복을 가꾸어 가십시오. 가정에서 행복을 충분히 누림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행복을 확산시키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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