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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좋은 부모 (막 9:17~29, 마 17: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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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84년 미국무성 교육부는 미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을 선정했습니다. 그 가정은 미국의 백인 가정도, 유태인 가정도, 독일인 가정도, 일본인 가정도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한국인 가정이었는데 바로 고광림, 전혜성 박사 부부 가정이었습니다.

고 박사는 서울대학에서 최연소 법학교수였을 뿐 아니라 장면 정권 때 주미공사를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무려 다섯 개 부분의 학위를 가졌고, 그 부인 전혜성 박사는 예일대학의 교수로 사회학을 가르쳤습니다. 모두 여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인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 자녀 중 삼남은 미국의 인권담당 차관보로 임명이 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조차 혀를 내두르면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가정입니다. 무엇이 그 자녀들로 하여금 명문대학의 박사로 키워내고 미국이민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새벽 3시 52분이면 롱아일랜드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서 새벽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자녀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면 온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기 전에 고 박사의 기도를 받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기도를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노력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참 좋은 부모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 최근에 가정 경영 연구소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 가운데에 상처 주는 말 다섯 가지를 선정했습니다.

'네가 잘하는 게 뭐 있니?'.

'멍청한 자식'. '너 때문에 지겨워 못살겠다'.

'마음에 드는 게 있어야지'.

'썩 꺼져 나쁜 자식아' 순이며,

* 반면에 격려가 되는 말 다섯 가지는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

'늘 너를 위해 기도한다'.

'아빠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난 너를 믿는다'.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로 발표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에게 어떤 말을 주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그냥 혈육만의 부모가 되기보다는 비전 있는 자녀를 만드는 영적인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부모가 아니라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자녀의 운명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막 9: 17, 마 17:14~15절)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이스라엘 야드 바쉠에 가면 유대인 학살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정원에 조각이 있습니다. 조각의 이름은 '마지막 행진'(The last march)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그 조각 가운데 어머니가 손목을 붙잡은 아이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 병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가스실로 끌려간다. 마지막이다. 너를 데리고 가면 죽는다. 너는 병들었으니 누가 돌보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그러기에 너를 하나님께 버린다" 그리고 손을 놓았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 훌륭한 조각가 되어 자기를 주인공으로 하여 조각한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위대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모두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면 문제가 없습니다. 어느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네가 달라고 하는 것을 줄 수가 없다. 재산도 마련한 것이 없단다. 너를 행복하게 하여 줄 수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네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네 손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너에게 억 만금을 물려주지 못 하여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시고 자녀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녀를 돌보는 것보다 더 잘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예수님께 아들을 맡겼습니다. 예수님께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였습니다. 할 수만 있거든 아들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의 병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아들의 운명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의 자녀들을 학원이나 과외 선생에게 맡기지 말고,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 바로 구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예수님께서 권능의 손, 치료의 손, 축복의 손으로 만져주기를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용납하시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모들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만져 주시기만 해도 아이가 고침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믿는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병든 자식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면 복된 자녀들이 될 줄로 믿고, 자녀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와서 전적으로 헌신시키며, 일생을 맡기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신앙의 모범을 자녀에게 보여야 합니다.(22~24)

“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 위에 머무르며 기도하시는 동안에 산 아래에 있는 아홉명의 제자들은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벙어리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고치지 못하였을까요? 아홉명의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 9;19)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는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출발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 성령 충만케 합니다. 믿음은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믿음은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립니다(히 11;6). 큰 믿음은 큰 역사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질문하시는 내용은 “네가 얼마나 배웠느냐?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느냐?”가 아닙니다. 주님은 “네 믿음이 얼마나 크냐?”고 묻고 계십니다. 믿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큰 믿음,산 믿음이 되기 위해 기도생활과 말씀 묵상을 하면서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이 적어지면 실망시키는 사람이 됩니다(막 9;19). 아홉명의 제자는 자신들의 믿음이 클 때에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도 쫓아냈습니다(막 3;15). 그런데 지금은 믿음이 적어졌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 신앙을 약화시켰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비방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얻으면 그 이름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에 걸맞은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아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맛 잃은 소금이 됩니다. 믿음이 점점 적어지면 사람들에게 버려진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마 5;13).

그럼에도 주님의 은총은 변함이 없습니다. 믿음이 적은 아홉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실망시켰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그들을 키워 결국 성령 충만케 하셨습니다. 그들은 후일 무지와 무기력의 세계에서 뛰쳐나와 놀라운 확신과 감격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일당백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을 성령 충만케 하십니다. 큰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래서 귀하게 사용하시고 큰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 모두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써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 믿음을 토해 자녀들에게 좋은 믿음의 유산을 무려줍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할버튼이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이 자기 아들에게 이런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시장님과 아주 친하단다." 그 때 아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아주 친한데."이렇게 대꾸했습니다. 할버튼은 아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또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본을 보이며 어린 시절에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 사역에 있어서 멘토링(Mentoring)은 중요합니다. 교육하는 자가 피교육자에게 가르치고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부모가 자녀들의 멘토(Mentor)가 되어 본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가장 가까운 신앙 모델은 부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들은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배우는 길은 믿는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생활하는 부모에게는 매우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부모가 될 때 자녀들 역시 올바른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아버지에게 하시는 말씀은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믿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버지의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다. 내 믿음이 없음으로 내가 주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구나!" 그리고는 주께 소리 지르며 구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 나의 믿음 없음과 무능력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전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바로 이때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십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의 호령 한 마디에 귀신이 소리 지르며 그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쫓겨났습니다. 주께서 귀신에게 시달려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 아이가 일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광경을 지켜 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며 기이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눅9:43).

이 흥분과 감격이 지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들어가 있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쭙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주님은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귀신들이 나갈 수 없느니라" 이 한마디의 말씀이 오늘날 능력을 상실한 채 모양만 가지고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미국가정사역연구소에서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10가지이유'를 조사했는데

① 주일이나 교회행사를 무시하고 여행을 떠날 때

② 예배시간에 시계를 몇 번씩 쳐다볼 때

③ 자녀 앞에서 목회자의 허물을 이야기할 때

④ 십일조와 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⑤ 교회에 대해 애착심이 없을 때

⑥ 예배시간에 지각할 때

⑦ 문제가 생길 때만 불규칙하게 기도할 때

⑧ 여러가지 핑계로 교회봉사를 하지 않을 때

⑨ 자녀들을 교회에 오래 있지 못하게 할 때

⑩ 실천보다는 말만 앞세울 때 등 이었습니다.

부모는 변함없는 신앙으로 자녀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교회 생활에, 신앙 생활에 거부감을 느끼고 대항한다면 그 이유는 부모된 우리의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아 자녀들을 바로 이끄ㅜㄹ지 못했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너희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지도해야 자녀들에게도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부모의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오히려 판단하고, 심지어 거부합니다. 올바른 부모의 신앙과 좋은 영향력이 교육의 효과로 나타나 성공적인 자녀를 길러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부모 교육의 책임이 대두됩니다. 심은 것을 거두기 때문에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거룩한 결단을 합시다. 믿음의 본을 보이는 부모들이 되어 자녀들을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인물이 만드는 좋은 부모가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셋째, 자녀를 통해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고, 고쳐 업그레이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레나 마리아(Lena Maria)는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주인공으로 우리 나라에도 와서 공연을 가진 스웨덴의 가스펠 가수입니다. 그녀에 대한 수식어들로 "노래하는 천사", "장애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 "장애인 세계 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등이 따라다닙니다. 레나는 1968년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는 보호 시설에 맡길 것을 권유하였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가 그 권유를 거절합니다. "이 아이도 하나님이 주신 저녀입니다. 이 아이에겐 가족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기도하면서 정성껏 카웁니다. 결국 레나는 하나뿐인 왼발로 쓰고, 올갠을 연주하고, 뜨개질을 하고, 운전도 하고, 젓가락질까지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는 업적을 남김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스웨덴이라는 복지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자식을 사랑하여 독립적으로 자라게 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는 왼발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하는 믿음과 신앙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동시에 때로는 짜녀를 통해서고 배우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 5장12절에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맛나를 먹던 그들이 농사를 지은 식물을 먹는 삶으로 업그레드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시기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편하고 익숙한 방법으로만 인도하시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가 원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순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레나의 부모처럼 부모의 믿음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시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모범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정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가정이 파괴된 교육에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반역하던 아들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상투가 걸려 죽임을 당했을 때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신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통곡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통하여 아들보다 자신이 죽어야 할 사람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철저한 회개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부모는 내가 심은 것을 거둔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교훈을 배우는 부모는 천만다행입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아도 배우는 부모는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어려움을 당해도 배우지 못하는 부모는 설상가상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예수님께 "할만하시거든 내 아들을 고쳐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이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부족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 때문에 아들이 낫지 못했다고 깨닫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을 발견함으로 회개하여 마침내 신앙이 한단계 업그레드되어 결국 아들을 낫게 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들 때문에 신앙이 업그레드되어 예수님을 만나고, 아들 때문에 아들도 고침을 받고, 자신의 책망받는 믿음도 응답받는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본문에 믿음 없는 세대라는 책망을 들었던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는 능력을 잃었으며, 말의 능력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앞에 두고 있는 "귀신아 물러가라!" 고 힘을 다해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제자들을 조롱하듯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를 괴롭힙니다. 그 때 제자들이 겪는 당황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을 보면, 이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마을로 보내실 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고 또 그들이 많은 귀신을 내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고친 경험이 있었습니다(막6:7-10). 그런데 오늘은 아홉 명이나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철저하게 무기력함을 드러내고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실패한 제자들이 여러 말로 서기관들과 변론하였습니다. 사실상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는 분명히 귀신을 쫓아냈는데 이번에는 뭔가 이상하다" 하며 자신들의 실패를 부지런히 변명했지만 시간만 허비하고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변명할수록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만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신앙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변론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에 대한 나의 믿음을 나의 삶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삶을 통해 믿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수많은 말들은 허공을 치듯 무의미할 뿐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을 살리는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어떤 능력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능력을 잃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저자들이 이 사건을 다루면서 그 이유를 지적합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물을 때 마태복음에서는 "저희가 믿음이 적은 연고라" 했고(마17:20), 마가복음에서는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29절)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이 믿음이 적었으며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지난번의 경험을 되살려 이번에도 자신만만하게 부딪쳤던 것입니다.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지도 않고 과거의 경험만을 믿고 귀신을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해보고 싶었고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지만 우리 힘으로 멋지게 귀신을 몰아냈습니다" 하고 자랑해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귀신 쫓는 능력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자만했으며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기에 실패했습니다. 분명 제자들은 귀신을 앞에 두고 기도 없이 덤볐든지 아니면 꾸준히 기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너희 믿음을 다시 살펴보아 한번 더 업그레드하도록 기회를 주신 기회의 시간입니다. 주석가 헨드릭슨은 본문을 해석하기를 "귀신의 세계에는 차이가 있다" 고 했습니다. 어떤 귀신은 다른 귀신보다 더 강하고 더 사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이 벙어리 된 귀신을 쫓을 때 이전보다 더 간절한 믿음과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능력의 주께 매달려야 했는데 이전 경험만 가지고 귀신에게 대항했다가 귀신이 물러가지 않자 그만 당황하게 되었고 믿음이 약해져 기도하기를 그쳤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때로는 우리를 안일하게 만들고 방심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곤란을 겪은 원인이고 곧 우리들이 실패하는 원인입니다.

마태복음 17:20 에서 주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시며 제자들의 믿음이 적음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겨자씨가 처음에는 작지만 점차 자라 큰 나무처럼 되듯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즉시 성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곧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계속 키워 나가는 믿음의 업그레드를 통해 생명력 있는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쉼 없이 기도하며, 귀신을 대적할 때 결국 물러갔을 것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결국 제자들의 믿음 부족과 기도 부족이 주께로부터 받은 능력을 잃게 만든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항상 함께 다닙니다. 믿음이 시들해지면 기도의 힘을 잃고, 기도가 없으면 믿음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일 수 없습니다. 이미 얻은 능력이지만 기도를 통해 그 능력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기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더 의지했으며, 한 두 번 기도해보고 쉽게 포기했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나와 내 자녀가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원하는 직장을 얻고, 마음먹은 대로 배우자를 얻게 된다면 사람들은 구태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위기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 순간이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바로하기 위하여 결단해야만 하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 내 인생의 신앙을 업그레드해야만 하는 순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이 내 안에서 하실 수 있음을 진정으로 믿는 한차원 성숙한 믿음으로 바뀌게 되며, 전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며, 나의 삶의 목적이 살아도 죽어도 주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능력을 잃고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과 기도가 부족한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 믿음 없이 교회에 출석할 수 있고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고 허공만 칠 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업그레드된 믿음과 전적인 신뢰기도 없이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선단체가 되고, 기도 없이 윤리 도덕을 강조하면 윤리실천단체가 되며, 말씀과 기도 없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교제하면 친목회는 될 수 있어도 참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영혼을 살리고,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자에게 주시는??증거와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조명해 봅시다. 귀신들린 아이가 귀신의 장난으로 몸부림치듯 우리 사회가 구석구석 사단의 역사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 온전한 곳이 없습니다. 벙어리가 되어 할말을 하지 못하고, 자기의 의지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도 못하며, 땅에 엎드러져 비명을 지르며, 이를 갈면서 불과 물로 뛰어들기를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우리와 이 사회를 몹쓸 존재로 만들고, 죽이려고 온갖 발작을 다하고 있습니다. 차마 눈뜨고 귀를 열어 보고 듣지 못할 해괴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매일 매일 갈수록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이 땅에 추락해 버렸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거룩성과 경건성은 무참히 짓밟히고 신음합니다.

이 질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으며, 소망이 있을수 있겠느냐고 탄식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의지하는 성도들과 교회에게 권세를 주셔서 이 사탄을 물리치고, 믿는자에게 능치못함이 없도록 질병을 물리치고 치료하는 능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절박한 문제를 안고 살면서 주께로 나옵니다. 교회가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과연 우리에게 이 능력이 있습니까? 사단에게 짓눌려 몸살을 앓는 이 사회와 이웃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치유의 능력을 나누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볼 때 현대교회와 같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까? 기도 없이 자기 경험과 의로움을 자랑하며 섣불리 덤벼들었던 제자들처럼 살는 성도들이 아님니까?

누구보다도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졌다고 자랑하면서 말만 앞세우고 형제의 실수를 판단하는 서기관들 처럼 신앙생활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아무런 책임의식 없이 "이 일이 어찌 될까? " 하고 구경만 하는 무리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고침 받기를 소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주님 보시기에는 믿음 없는 세대라고 책망들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능력도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많은 변론을 하지만 그 말에 능력이 없습니다. "고침 받으라!" "회개하라!" 고 외치지만 죄악은 갈수록 더 활개를 칩니다. 마치 우리를 조롱하듯 "너희들 먼저 고치고 회개하라!" 고 하며 믿음 없는 교인, 기도 없는 교회를 비웃고 있습니다. 교활한 사단은 기도하지 않는 교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과거에 이 사회에 대하여 영향력이 있고, 거룩한 능력을 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자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란 재물처럼 저축해둘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런 위기를 느낄 때마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한차원 더 높게 업그레드되어야만 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날 실패했던 제자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저욱 간절한 기도가 필요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만 한다고 다 되느냐?" 하고 반문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도 해보지 않으면서 기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무리들입니다. 한 두 마디 드리고 마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읍시다. 주님의 능력 있는 사역은 한적한 곳에서 묵상하시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부르짖던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3) 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믿음이 없는 이 세대, 능력을 상실한 이 세대가 그 능력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기도에 전심하는 길뿐입니다.

자녀의 아픔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입니다. 자녀를 통하여 자신의 불신앙을 발견하는 부모가 오늘 본문의 아버지 처럼 좋은 부모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통해서도 믿음이 커져야합니다. 오히려 자녀 때문에 부족한 믿음이 커지는 업그레드된 신앙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자녀들 때문에 믿음이 좋아지는 부모가 되어지시기 복빌어 드립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지금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어렸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녀에게도 최선을 다 해야합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합니다. 자식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장성한 자녀, 부모의 품을 떠난 자녀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다른 능력으로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때가 우리의 신앙을 한단계 업할(높일)때 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로서 믿음 없는 것을 회개하고, 쉬지아니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간절히 간절히 기도할 때 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미스바교회 자녀들은 어버이들에게 다시 한 번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그리고 미스바교회 부모되신 여러분들은 좋은 부모들이 되셔서 예수님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뿐만아니라 항상 예수님께 맡기고,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어 따라오게 하며, 자녀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내 자녀처럼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돌아보며, 회개하고, 결단하여 나의 삶의 모습이 신앙안에서 변화된 업그레드 된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도록 노력하며, 자녀를 위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쉬지아니하고 기도함으로 자녀들이 주안에서 잘되어지는 축복을 받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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