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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잠언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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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글에 보니까 아내의 마음이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 그리고 셋일 때 각각 다르게 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하는데 아이가 하나일 때에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맛 없어? 내일 기다려봐. 맛있는 것 만들어 둘게" 애가 둘일 때 "이만하면 괜찮은데, 왜 그래? 애들도 아니고…" 애가 셋일 때 남편이 반찬을 투정하면 투정 부린 반찬을 확 걷어가면서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배 불렀군!"

TV 채널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아이가 하나일 때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보고 싶은 것 봐. 난 애기 재울게" 애가 둘일 때에 "남자가 어찌 TV에 목숨 걸어? 쪼잔하게." 애가 셋일 때 무심결에 아내가 보던 채널 돌려놓으면, 두말 없이 째려보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셋 센다. 하나, 두∼울…"

멋진 남자 탤런트를 보는 태도에 있어서 애가 하나일 때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성은 별루일거야, 자기가 젤 좋아. 홍알홍알∼" 애가 둘일 때 "애들만 없어도 저런 남자와 연애도 해 볼 텐데." 애가 셋일 때에 멋진 남자 탤런트를 보다가 갑자기 말없이 남편을 한참 뚫어져라 꼬나보다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실시!!"

어쩌다가 남편이 감기에 걸렸을 때에 애가 하나일 때에는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식구가 안심하죠, 약 드세요." 애가 둘일 때 "밤새 술 푸고, 줄담배 피는데 안 아픈 게 용한 거지" 애가 셋일 때 남편이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만 들려도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애들한테 옮기면 죽을 줄 알어∼!"

오늘 이 시대에 힘없는 남편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등장한 단어 가운데 사오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45세에 정년 퇴직을 한다는 말입니다. 오륙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56살이 되어서도 퇴직을 안 하면 도둑이라는 말입니다. 부인되시는 여성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의 내 남편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알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여러분을 위해서 얼마나 땀흘려 일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남편에게 보내는 영상의 편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존 하워드 페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번도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 방랑자였습니다. 그는 고향과 조국을 떠나 돈 한푼 없이 프랑스 파리의 어느 낯선 거리를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거닐다가 "나에게도 가정이 있다면 …"이라고 울먹이면서 하나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낯선 남의 나라 알제리에서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하게 인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가 지은 노래는 세계인이 애창하는 노래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애창하는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입니다. 우리 다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내 집- 뿐이리"

클린턴 가드너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가정이 있으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우리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가정에 성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고 출세하는 것도 좋습니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서 진급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은 가정을 세우는 일입니다. 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가정은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전서 5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러니까 내 가족과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한 자라고 했습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직분자를 선택할 때에도 그 가정을 보라고 했습니다. 가정을 건강하고 화목하고 복되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교회 안에서 절대로 직분자로 세우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면 교회 역시 제대로 돌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가운데 제일 먼저 사역을 시작했던 곳이 가나의 혼인 잔치 자리였습니다. 그만큼 기독교는 가정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가정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화목이 깨어지고 가정의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성공을 했다고 할지라도 가정에 실패하면 결국 인생의 전부를 실패한 것이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성도 여러분 모두가 보다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보자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은 건강한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코 부끄러운 욕망이 아닙니다. 문제는 좋은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한 건강한 개념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바라고 소원하는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꿈꾸고 바라고 소원하는 세상은 뜻밖에도 너무 단순합니다. 어쩌면 그 단순함이 지나쳐서 어리석기까지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고 꿈꾸고 소원하는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은 소위 돈 많은 부자로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좋은 옷을 입고, 근사한 집에서 좋은 것을 먹으며, 좋은 자동차를 타고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소아적인 생각이요,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참으로 힘듭니다. 남들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걱정하게 된다면 다른 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심각한 가난은 정말 우리를 못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요, 건강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십시오. 가난할 때에는 가난이 문제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가난만 벗어나면 천국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보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난 못지 않게, 아니 가난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못살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정의 허물어짐입니다. 화목이 사라진 가정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풍유로움 속에 닥쳐온 가정의 위기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돈이라고 하면 천국 하나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습니다. 결국 인생의 행복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한 가정입니다.

성경의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세상적으로 본다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많은 나라가 그에게 와서 조공을 바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지혜자도 솔로몬에게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정에서는 실패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실패한 부분을 놓고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며"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산해진미 차려 놓고 서로 미워하느니,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눠 먹으며 서로 아끼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런가 하면, 잠언 21장 9절에서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며"라고 했고, 19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물론 가난이 행복의 조건은 아닙니다. 분명히 가난은 삶을 힘들게 합니다. 어떤 때에는 그 가난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가정이야말로 복된 가정이라고 믿습니다. 아무리 부유할지라도 화목이 깨어진 가정은 정말 불행한 가정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목이 깨어지고 다툼이 있다고 한다면 화려한 왕궁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과 좋은 차와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어서 화목이 깨어진다고 한다면 그 가정을 도망쳐 나와서 움막이나 광야에서 혼자 살고 싶은 것이 남자들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재물과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리면서 살았던 솔로몬이 그의 인생 말년에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고백하고 있는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고 했고, 17장 9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그렇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있어도 덮어줍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자꾸 그것을 드러내서 결국 이간시키게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 자식은 희망 없는 자식이고 망나니다"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아들을 그렇게 희망 없는 망나니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달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 지금 우리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옛 속담에 "불붙는 집에 키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화목하게 사는 사람은 그렇게 남의 집에 키질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통 때는 가만히 있습니다. 구역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시간이 바빠서 못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점심 싸 가지고 돌아다닙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닙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한 강물 흐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으로 화목한 가정, 사랑으로 화목한 교회를 위해서 모두가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화목하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은 분쟁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화평한 가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화평한 교회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서로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색깔이 아름답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양성의 조화입니다. 각각 다른 일곱 가지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다운 겁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이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니까 아름답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획일된 색깔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온 세상이 빨간색으로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새빨갛게 보일 것입니다. 정말로 눈이 아플 것입니다. 답답할 것입니다. 색깔을 잃어버린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은 하나의 색깔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색깔이 아름답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색깔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음이 좋아야 듣기 좋습니다. 불협화음이 되어 보십시오. 조금만 들어도 짜증이 나서 다 나가고 말 것입니다. 음은 화음을 이루어야 하고, 사람들은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축복된 가정입니다.

솔로몬은 잠언 5장 18절에서 중년기에 접어든 아들에게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네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고 그녀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렇습니다. 지치고 힘든 남편이 아내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공급받고 새로운 능력을 공급받는 보금자리가 됩니다. 그래서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편은 아내와 함께 즐거워하십시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즐거워하십시오.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즐거워하십시오. 이런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화목한 가정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서로 손을 맞잡고 김종찬의 '사랑으로'를 함께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설교/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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