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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완전한 신앙고백! (마 16: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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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고백”이라함은 숨김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고백이라 함은 사랑하는 감정을 그대로 숨김없이 상대방에게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학에서는 자기의 내적인 생활과 외적인 생활의 과실이나 약점을 문학의 형식으로 기탄없이 폭로하여 밝히는 것을 “고백문학”이라고 합니다.

고백문학에서 “과거의 생활 또는 범죄행위, 마음속의 번민” 같은 것을 신 앞에나, 만인 앞에서 서슴없이 고백하는 형식을 취한 자서전 같은 것을 “고백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거스틴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같은 것을 일컬어 말 할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이란 “자기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정확하게 표명하는 일”을 말합니다. 신앙과 신조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되 성경과 신학의 범위 안에서 오류가 없도록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봉사생활 그리고 성역에 동참하는 일에는 반드시 완전한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기독교는 완전한 신앙 고백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1. 성경적인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16:13)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더이다”(마16:14)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한 사람의 선지자”로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고백은 지극히 부분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정확한 성경적인 신앙고백은 못됐습니다.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시험해 보신 겁니다.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베드로의 이 대답은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을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지극히 성경적이었고, 신학적이었습니다. 예수님도 흡족해 하셨고 만족해 하셨습니다. 

2. 주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인정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로 신앙고백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위에 자신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부터 기독교회가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Loraine Boettner는 “Roman Catholicism”이라는 책에서 마태복음16장18절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Boettner는 “베드로는 헬라어로 “Petros”인데 이 말은 남성 형으로써 “Mr Rock, 미스터 반석 즉 돌, 굴릴 수 있는 돌”을 말한다. 즉 베드로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반석”은 헬라어로 “Petra”인데 이 말은  여성 형으로써 “Miss Rock, 미스 반석 즉 움직일 수 없는 바위, 만세 반석을 말한다.  즉 이 반석은 베드로가 방금 고백한 그리스도의 신성이 되는 기본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치고 외친 진리로 다져진 터가 바로 교회의 터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도들의 대표가 되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이 지식의 열쇠(율례와 법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11:52)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사들은 지식의 열쇠(율법과 계명의 열쇠)를 가지고 천국 문에 걸쳐 앉아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이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저주받을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천국 열쇠를 받았습니다. 열쇠는 “열고 닫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이 경우에는 복음 선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천국 문을 여는 말씀의 권세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에서 사도들이 천국 열쇠인 복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의 종들은 천국 열쇠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천국 열쇠라는 믿음을 가지고 성심 성의껏 준비하고 다듬어서 때와 장소 그리고 모인 무리들에게 가장 필요 적절한 말씀을 선포하고 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3. 신앙고백대로 살아야 합니다.

독일 교회중 “고백교회”가 있었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국가주의적 정책을 강행하기 위하여 독일 교회의 동조를 요구하자 이에 대항하여 독일 복음주의 교회 안에 이룩된 교회였습니다. 니묄러(Niemőller) 등을 지도자로 하여 권력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바른 신앙을 대담하게 고백하고 그대로 실천하는데 큰 의의를 두었던 교회였습니다. 고백교회는 독일교회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목사이며 시인이었던 John Donne은 “Batter my heart(내 마음을 두들기소서)”라는 시를 지어서 자기의 엉거주춤한 신앙의 상태를 고백했습니다.

“내 마음을 두들기소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여

노크하고 숨 쉬고 빛내고 고치려 마시고

내가 살 수 있도록 나를 넘어뜨리고, 깨뜨리고,

불고, 태워서, 내가 새로워지게 당신 힘을 기울이소서.

나란 것은 적에게 점령되어 포위된 도시,

당신을 맞으려 하나 오~  소용이 없나이다.

내게 있는 당신의 섭리와 이성이 나를 막아야 하나

오히려 포로 되어, 약하옵고 참되지 못하나이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은데

당신의 원수에게 팔려가게 되었나이다.

나를 떼어놓아 그 매듭을 풀고 찢어주소서.

당신한테 나를 끌고가 옥에다 가두소서.

당신에게 투옥될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고

강탈될 때 나는 비로소 정숙할 수 있사옵나이다.”

일종의 “Paradoxical한 역설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John Donne은 청교도 목사임을 자처했지만 사실은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는 자신이 오히려 역겨울 정도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차라리 하나님께서 때려 눕혀 주시면 일어나려고 몸부림이나 쳐보겠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세상에 포로된 자기 자신이 하나님에게 포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조금 전의 신앙고백과 정반대되는 행동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대속의 사역 없이는 신앙고백도, 천국열쇠도, 교회도 그림의 떡 무용지물이 되고 말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백대로 사는 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맺는 말

완전한 신앙고백은 성경적인 정확한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통한 말씀의 능력을 받아 신앙고백대로 경건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완벽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 /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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