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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스러기 사랑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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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의 한 쪽 눈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년은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가슴을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 청년은 이미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멀쩡하던 두 눈을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고 지냈습니다. 바로 곁에서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사람이 한 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청년은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쪽 눈 이식 수술을 받은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로 살아가냐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었습니다. 풍대를 모두 풀고 앞은 본 순간, 청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그의 앞에는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한 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울고 있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의 장님 몸뚱이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두 눈을 잃어버린 자식을 위해서 두 눈이라고 다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앞을 못 보는 나 때문에 자녀가 마음 쓸까봐, 그 남은 몸뚱아리로 인해 자식에게 짐이 될까봐 한 눈으로도 세상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어머니의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는 귀신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인이 나옵니다. 그 어머니는 얼마나 그 딸을 보면서 가슴아파했을까요? 흉악한 귀신에 들려서 소리 지르고, 넘어지고, 상하고,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딸을 보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되뇌였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만약 여러분이 그 딸의 입장이라면 우리는 어머니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왜 나를 이렇게 낳았느냐? 왜 내가 이렇게 귀신들려야 하느냐?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낳아놓은 부모님 책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원망하며 세월을 보내야 할까요? 이것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기 가장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만약 그 딸의 입장이라면 모든 것을 그래도 받아들이고 오히려 어머니를 보면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 들린 것이 나의 잘못도 아니요 어머니의 잘못도 아니라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오히려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요? 딸은 비록 귀신들렸지만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지만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부모님을 통해서 오늘도 딸은 그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무리 힘든 고통의 나날을 산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숨쉴 수 있다면, 볼 수 있다면, 말할 수 있다면, 느낄 수 있다면 여러분의 부모님을 사랑하십시오. 왜냐하면 오늘 내가 누리는 그것은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로 왔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부모님을 통해서 보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나의 존재의 통로입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두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서 귀를 갖게 되었고 세상의 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입술을 갖게 되었고 말하며 노래하며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을 통해서 눈을 주시고, 귀를 주시고, 입을 주시고, 팔과 다리를 주시고 몸을 주셨고, 부모님을 통해서 영혼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직 볼 수 있다면, 아직 말할 수 있다면, 아직 들을 수 있다면, 아직 걷고 뛸 수 있다면,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내가 아무리 무능하다고 느껴져도, 다른 사람에게 어떤 멸시를 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부모님을 사랑하십시오. 부모님을 통해 주신 것을 헤아려보십시오.

2. 밥그릇의 비밀

  한 어머니는 홀로 6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이 어머니는 생선 장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식들 입에 밥술이라도 떠 넣어줄 수 있는 길은 생선 다라를 머리에 이고 이집 저집 다리품을 파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행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봐야 6남매 한 끼 식량을 사기도 빠듯한 벌이였습니다. 그래도 팔다 남은 생선 한 마리와 봉지쌀을 팔아 돌아오는 저녁이 되면 어머니의 발길은 가벼웠습니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고만고만한 어린 6남매는 반갑게 어머니를 맞았습니다. 아이들의 소원은 하얀 쌀밥을 한 번 양껏 먹어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밥은 언제나 모자랐고 먹을 것만 보면 허겁지겁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서로 많이 먹겠다고 늘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밥을 반 그릇씩 남겼지만 남은 밥은 절대로 자식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막내가 숟가락을 빨며 더 먹겠다고 합니다.
“엄마, 내가 엄마 밥 더 먹으면 안돼요?” 그러면 여기저기에서 똑같은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나도 더 먹고 싶은데...” “나도 나도...”
  그러나 언제나 어머니는 손으로 밥그릇을 막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야단을 치셨습니다.
“이건 안 된다고 했잖니.”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면 어머니는 상을 얼른 치워버렸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막내와 실랑이를 하는 통에 그만 밥상이 흔들렸고, 기우뚱 기울어진 밥상에서 어머니의 밥그릇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밥그릇에서 허연 것 하나가 툭 튕겨져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어머니가 자기들에게 밥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엎어진 밥그릇에서 나온 것은 남은 밥이 아니라 큼직한 무 토막이었습니다. 밥그릇에 쏙 들어 나게 모양을 내 깎은 무 토막위에는 밥알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배부르게 먹게 하려고 무를 깎아서 어머니의 밥그릇의 반을 이미 채워놓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납작 땅에 엎드려 절하며 처절하게 간청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철저하게 낮아져 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온전함을 위해서 자신은 마치 아무 것도 아닌 티끌과 같이 엎드려 절합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기쁨을 위해서 자신은 “저를 도와 달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도 여러분을 키우실 때 다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들의 배를 더 부르게 하기 위해서 부모님은 덜 잡수셨고, 우리들의 입에 좀 더 맛있고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부모님에 입에는 언제나 맛없고 거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입히기 위해서 부모님은 언제나 똑같은 옷을 1년 12달 걸치고 계셨습니다. 자식들에게는 무식한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우리 부모님은 사람들로부터 무식하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웃고 있을 때 우리의 그 웃음을 위해서 부모님은 남몰래 눈물 흘린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나의 평안을 위해 부모님은 마음 졸이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내가 오늘 누리는 것을 위해서 나의 반대편에서 부모님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3. 불효자식의 때늦은 귀향

  홀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늘 허름한 옷에, 한 쪽 발까지 저는 자기 어머니를 볼 때 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그런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은 스무 살이 된 후로 집을 뛰쳐나와, 이름도 바꾸고 어머니의 자식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손톱만한 양심은 남아있어서, 가끔씩 그리 넉넉지 않은 돈을 생활비조로 부쳐드리기는 했습니다.
  아들은 부잣집 딸과 결혼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음에도, 고향마을 시장 통에서 나물 몇 가지 자판을 벌여놓고 그것을 팔아 연명하시는 어머니를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집 가정부가 왠 초라한 할머니를 걸인 취급을 하면서 막 내리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초라한 할머니가 무너질 듯 다가오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만, 아들은 마치 겨 묻은 개를 대하듯 뒤로 물러나며 ‘사람 잘못 보았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아들의 어깨를 한 번 감싸 안아보지도 못하고, 절룩거리는 불편한 한 쪽 다리를 이끌고 다시 시골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아들은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대고, 누가 들을세라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뭐야, 이젠 여기까지 찾아와서 저 궁상을 떨어?”
  그래도 어머니의 폭삭 늙으신 뒷모습에 마음이 짠했던지, 며칠 뒤 아들은 스무 살이 넘은 후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어머니의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 허물어져 가는 판잣집! 그런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대문간에 상가임을 알리는 조등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20년 전에 제 어미 곁을 떠난 ‘불효자식’임을 금방 알아본 친척 아저씨는 “몹쓸 사람, 왜 인제 왔는가?” 한 마디 합니다. 그리고 한지로 곱게 싼 뭉치 하나를 내밉니다.
“이 돈은 자네가 결혼할 때 혼수라도 장만해 주려고 자네 어머니가 수십 년을 모아둔 것일세!” 그 말에 아들은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없었습니다. 물끄러미 돈 꾸러미를 쳐다보는 아들에게 친척 아저씨가 참다못해 혀를 끌끌 찹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비밀을 말해 줍니다. “어릴 적 고아로 떠돌아다니던 자네를 어머니가 거두어서 키우셨지. 그리고 자네가 어려서 사고를 당하려는 순간 자네를 구하려다가 한 쪽 다리를 잃으셨지. 어머니는 몇 년 동안 암으로 고생하셨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깊다고 그렇게 눈을 감기 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하시더니...”
  아들은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알아채고, 피울음을 토해냈지만 이젠 너무 늦었습니다. 생전에 그가 걸인처럼 내치던 어머니는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옛날로 되돌아가면 참 공부를 열심히 잘 할 것입니다. 내가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참 부모님께 참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2번 반복해 볼 수 있다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삶. 그러나 문제는 나의 삶은 한 번 가면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후회가 남습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주님은 말씀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고. 그러자 그 여인은 말합니다. “주여 맞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그 어머니는 주님께 부스러기의 사랑과 은혜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것이 부스러기라도 할지라도 그 부스러기의 사랑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그 부스러기라도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부스러기의 은혜를 갈구하지만 이미 부스러기와 같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부스러기의 은혜를 갈구하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미 부스러기와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이미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부스러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야기 속의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고아로 홀로 떠돌아다니던 불쌍한 것을 거두어서 자식으로 키운 것, 낳지도 않은 자녀를 위해서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한 쪽 다리를 잃은 것, 20년 동안 기다리면서 장가보내려고 시장 통에서 나물 팔아서 쌈지 돈 차곡차곡 두신 것, 몇 년 동안 암으로 고생하셨지만 아프다고 말씀조차 하시지 않은 것,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깊다고 눈감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그 발걸음.... 그 어머니는 이미 부스러기가, 아니 가루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손을 만져보았습니다. 암은 어머니의 몸에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뼈밖에 만져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몸. 저는 마지막 어머니의 거칠고 앙상한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손에서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시고 부스러기처럼 흩어져버린 어머니의 부스러기 사랑을 느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부모님의 손을 한 번 만져 보십시오. 아마 여러분은 그 손에서 부스러기를 볼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시고 부서져버린 부스러기와 같은 부모님의 인생이 만져질 것입니다. 오늘 그 부모님의 손을 꼭 잡아 주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세 편의 예화는 책 "어머니, 당신만큼 사랑할 이 없습니다" (정희성 엮음, 월간조선사)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설교 / 이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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