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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비전 (막 10: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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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을 가지라

  저는 지난주에 우리 청년들과 함께 꿈과 비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잠 28:19)” 묵시가 없으면 제멋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묵시는 계시(revelation)입니다. 계시는 보이지 않던 것이 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커튼이 열리면 무대의 뒷모습이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어둡던 것이 환하게, 가려져 있던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 이것이 계시입니다. 왜 묵시(계시)가 없으면 사람은 제 멋대로 살까요? 그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제 멋대로, 자기 맘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묵시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꿈과 비전도 현재와 현실이라는 커튼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가려져 있는 현재의 커튼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커튼 너머를 바라봅니다. 지금은 가려져 있지만 계시와 같이 환하게 열리는 날이 분명 올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도, 방자하게, 제 멋대로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조심조심 한 걸음씩 꿈을 위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내 꿈이 과연 하나님의 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테스트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큰 꿈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꿈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꿈일 수 있다는 것도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꿈을 가지십시오. 여러분도 하나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비전을 여러분의 것으로 취하십시오.

2. 섬김을 여러분의 비전속에 주입하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청년 여러분은 오늘 어떤 큰 꿈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꿈은 이런 꿈은 아닌가요?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진학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훌륭한 대기업에 들어갑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 중매가 막 들어옵니다. 결혼합니다. 아파트 35평 이상에서 사는 것이 내 생애의 큰 목적이 됩니다. 자동차는 좀 더 크고 안전한 외제차를 굴리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집도 장만하고, BMW도 굴립니다. 자녀들도 잘 됩니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서 미래를 염려합니다. 저축을 하며 노후를 대비합니다. 그리고 노후에 연금으로 행복한 생활을 합니다. 혹시 이것이 여러분의 라이프 드림인가요?

  이것이 우리의 미래요 나의 비전이라면 그 사람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가장 중요한 비전의 동기와 원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의 비전이 아파트 40평이라면, 나의 꿈이 BMW라면, 나의 목표가 한 달에 500만원이상을 버는 고소득자라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의 비전의 전부라면 나의 꿈에 다른 하나를 분명히 추가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은 섬김입니다. 섬김은 나의 비전을 건강하게 하고, 나의 꿈이 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내가 아무리 원대한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한다고 해도 내 안에 섬김이 자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을 가장 잘 사는 비결은 예수님의 닮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제로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내 삶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나타내지 못하고,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지 못했다면 그 생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붙잡고 살아온 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꿈과 비전속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살기를 원하셨던 섬김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섬김을 여러분의 비전속에 주입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꿈에 섬김을 리필 하십시오. 리필 할 수 없다면 아예 카트리지를 다시 교환해야 합니다. 섬김으로 가득 채워진 카트리지로 교환해야 합니다. 내가 직장을 가지는 이유도, 내가 결혼하는 이유도, 내가 물질의 부유함을 갈망하고, 영적인 영향력을 나타내려고 무엇인가가 되려는 그 이유들도 섬김을 통과해야 합니다. 유사 휘발유가 자동차의 엔진을 갉아먹듯이 섬김의 세례를 받지 않은 나의 꿈과 비전은 나의 생애를 갉아먹는 사이비 비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천국에 간 장로님의 이야기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웃었습니다. 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부끄러워서 웃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도 분명 웃을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이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에 들어서는 순간 예수님이 뛰어 나오시면서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네가 살아있는 동안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수고했느냐? 네 땀과 수고를 내가 기억하노라.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장로님으로 섬기면서 어렵게 고생한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러 아름답고 찬란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전에 같은 교회를 섬기던 집사님이 탕수육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자 장로님은 마음속으로 ‘저 집사가 탕수육을 먹을 정도면 나는 갖가지 세트 요리(해삼탕, 깐풍기, 라조기 등)를 먹겠지.“ 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요리가 나왔는데 보니까 자장면 한 그릇이 나왔습니다. 장로님은 화가 나서 항의를 합니다. ”예수님, 장로인 저를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지금 너네 교회 목사는 점심도 못 먹고 자장면 배달 나갔다.“ 하시더랍니다.

  사람들은 목사인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설교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목사님, 방금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 저희 부부가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데요. 목사님, 병원진단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우리 가족이 다음 주에 지방으로 이사 갑니다. 목사님이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아내가 집을 나갔습니다. 목사님, 직장을 아직 못 구했습니다. 목사님, 다음 주에 제가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등등”

  사람들은 저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목사님(목사) 그 이름 속에는 제가 섬겨야할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라고 불려질 때마다 저는 섬김을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많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섬기기는커녕 섬김을 받으려고 했던 적이 훨씬 더 많지 않았던가? 섬긴다고 하면서 이미 이 세상에서 섬김을 댓가를 다 받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받을 상급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자장면을 배달하는 것처럼 섬기면서 살아야할 목사가 그렇게 섬기지 못했기에 천국에 가서 자장면 배달하면서 섬김을 실천하면서 살아야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4. 예수님의 삶은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 분의 이름과 위치와 내력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분은 진실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과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유함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자들을 고치고 돌보느라 예수님은 매우 피곤하셨지만 그분은 그것을 싫다고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 죄인과 세리와 창녀들을 섬기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섬김을 통해서 오해받기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섬김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상하신 머리와 못 박힌 손과 발, 찔린 옆구리와 찢겨진 온 몸은 그 분의 섬김의 깊이를 말해 줍니다. 우리를 죄와 율법의 형벌에서 구하시기 위해서 그 분은 맨 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징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온 몸으로, 영혼을 다해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찾아가셨고, 갈릴리로 떠난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고초를 겪으셨던 몸을 이끌고 그 곳까지 가셨습니다. 숯불에 떡과 생선을 구워서 제자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보다 큰 자가 없지만 그 큰 하나님의 아들은 너희를 섬기러 왔다. 나는 너희를 섬기기 위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으며, 그 섬김의 댓가는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과 피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은 무엇을 기념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몸과 피를 줄 만큼의 그 섬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념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재현해야 합니다. 섬김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그 주님을 미메시스(모방) 재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성찬식을 할 때마다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죽으면서까지 우리를 섬기셨던 그 섬김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섬김을 우리가 닮을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분명히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그리스도를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지 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에 능력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섬김을 나타낼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면 교회의 분위기는 온통 거룩한 사랑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섬김을 재현하는 교회가 된다면 교인들은 무엇보다 교회에 모이는 일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섬김이 우리의 삶이 되어버린 교회에 간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시련을 극복한 수많은 승리자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온갖 중독자들이 중독에서 해방되며, 죄인들이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섬김이 교회의 비전이 되는 교회에 간다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병든 결혼 생활이 치유되고, 젊은이들이 비전과 소명을 받을 것이며, 그 지역사회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강력하게 이끌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 분의 유일한 비전은 죽는 날까지 우리를 섬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섬김이 나의 비전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주님은 나를 어떤 곳에서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섬김이 우리 교회의 비전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주님은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섬김이 여러분의 비전이 되게 하십시오. 섬김은 예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설교 / 이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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