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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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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일에 쫓겨서 외국에 출장도 잦고 모든 일이 너무 바빠서 가정과 아이들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모처럼의 휴일이 되어서 그는 "오늘은 낮잠이나 좀 실컷 자고 미루었던 책이나 보면서 하루를 쉬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과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닥달을 하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집에 있었다가는 아내 등살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부득이 아이들과 같이 낚시질을 나갔더랍니다.  아이들은 좋아서 마구 뛰면서 한껏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왔는데 이 외교관의 남자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낚시를 다녀왔다.  소중한 하루를 낭비해 버렸다."

그러나 그 아들 중에 하나는 커서 역사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게 될 때 옛날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그 옛날 일기장에 이 아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녀왔다.  나의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행복을 때때로 물질적 여건을 두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의복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입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그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냄새도 싫습니다.  역겹습니다.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 입맛이 없는데야….  결국은 내 입맛대로 행복한 겁니다.

입맛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입맛은 4살 때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그 입맛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특별히 문화 인류학에서 사람은 40이 넘으면 4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간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분들께서 집에서 남편에게 잘 하고 싶거든 "이 사람이 4살 때 무얼 먹었나?"  이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 좋은 음식을 내놓고 내가 정성껏 만들었는데 당신이 왜 이걸 못 알아보느냐?  이런 여자는 무식한 여자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렸을 때 무얼 먹었느냐는 겁니다.  그 때의 입맛이 한평생 나를 지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입맛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치관이요, 세계관입니다.  행복관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복하냐구요?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이 가치관에 기준해서 행복한 겁니다.  거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겁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에 형성이 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과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아서 모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좋다.  이것을 먹어라.  저것이 옳은 길이니까 저것을 행해라.  이건 나쁘다.  저건 좋다."  아무리 가르쳐도 말은 소용없습니다.  듣기보다는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느낌으로 배웁니다.  부모님이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말하면 부모님 자신들이 맛있게 먹어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면 부모도 자식들에게 정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부정직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이것이 망조라는 겁니다.  결국은 부모님이 무엇을 즐기고 있나?  무엇을 좋아하고 있나?  무엇을 선호하고 있나?  그것을 아이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벌써 눈치가 갑니다.  여기에서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 인생 철학이 형성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한평생 산다는 말입니다.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너무 눈치를 보고 산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된 우리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평생동안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복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된 저와 여러분이 먼저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주일을 잘 지켜야 한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  그래야 복을 받는단다"  아무리 말로 가르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행동 하나에서 결정이 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려는 신실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준다면 그 아이도 장차 자라서 훌륭한 믿음의 성도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주일을 성수하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도 그렇게 좋은 신앙의 모습을 닮아갈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어렸을 때에 입맛이 형성되는 것 같이 가치관도 어렸을 때에 부모의 모습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꽤 오래된 사건입니다만, 한때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는 그런 사건입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때에 되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지람했답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히 가져오지 않았느냐?  무슨 정신이냐?"
아무리 야단을 쳐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던 끝에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냐.  준비물을 왜 안 가져오느냐?"
그때에 이 아이는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이렇게 됐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마디, 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어린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되신 여러분, 말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아이라고 해서 내 입에서 나오는데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절제할 수 없는 감정에 치우쳐서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아이들의 영혼은 병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름지기 부모는 입 조심을 하셔야 합니다.  더구나 행동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꿈속에서라도 막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이 불씨가 되고, 행동이 뿌리가 됩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부모된 우리는 아이들에게 삶의 자부심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간혹 보면, 지극히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부모가 어떻게 관리를 잘못해서 실수로 너를 낳았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이 실수를 해서 나를 낳았다.  애초에 나는 잘못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엄마 아빠가 너를 낳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 했는 줄 아느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아느냐?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는지 아느냐?  기도의 응답으로 너를 낳았고 기도와 함께 너를 키웠단다.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이란다.  엄마 아빠에게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마디가 그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면 그 아이는 어떤 환경에 놓여도 절대로 잘못되지 않습니다.  이 자부심이 있는 한 그 아이는 절대로 어긋난 길로 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것이 없는 한, 그것은 바로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자녀들에게 삶의 자부심을 마음껏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이 회개를 했습니다.  아이들을 내 생각의 틀 속에 너무 가두어 놓고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까지 내가 뱉었던 말들 중에서 제 아이들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축복된 말만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일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한다면 세상에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가정에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사랑한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는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랑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 몇 가지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지함'과 '무례함', 그리고 '본이 되지 못함'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여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자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잘 모릅니다.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바로 "어떻게?"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어서 무지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다.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부모들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부모의 무례함 때문에 아이들의 인격을 함부로 무시하고 그래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도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하여 노여움을 품게 되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꾸짖음을 당할 때나, 아니면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때인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저들도 부모들에게 꾸짖음을 받고 심지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 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아이들도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지 못함"과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 않고 삶에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삶이 따르지 않는 말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경우는 다릅니다.  부모의 "삶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삐뚤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말만 해"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남들과 특히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크나큰 상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 학생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만났던 고등학생입니다.  이 학생의 아버지는 교회 장로님이셨습니다.  저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교회에 다니지를 않습니다.  이유인 즉, 아버지 때문에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교회에서의 직분은 장로님이지만 그의 행동과 말에서 어떠한 신앙적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을 바에야 차라리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많은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 이율적인 삶의 모습에서 내가 이것을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를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신앙생활에서 아이들의 영혼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물론 부모라고 늘 "말과 삶"이 일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도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정직하면 됩니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오히려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의 다른 일들이 아무리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세상의 다른 일들이 다 실패하고 어려워진다고 하여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된다면 그 실패와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부모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과 교사는 바로 부모입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스승과 교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자녀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를 대함에 있어서 믿음의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불신자들은 자녀는 내 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한 일군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 교우 여러분 모두가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녀 교육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정직하고 솔직한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도 키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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