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강림주일]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 (행 2:1-4)

  • 잡초 잡초
  • 621
  • 0

첨부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름만 되면 몇 차례에 걸쳐서 우리나라를 휘몰아쳐 가는 태풍이라고 하는 큰 바람이 있습니다.
  태풍이란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의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 저기압을 일컫는 말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공기가 엄청난 속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상청의 자료에 의하면 바람의 속도가 초당 10m를 넘으면 우산을 받기 힘들고 15m를 넘으면 허술한 간판이 떨어져 날아갑니다. 그리고 초속 20m를 넘으면 바람을 향해서 허리를 30도 정도로 굽히지 않으면 서 있을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30m를 넘으면 목조 건물이 무너지고 40m를 넘으면 작은 돌맹이들이 날아가고 60이상이 되면 전봇대가 뽑히고 철탑이 휘어지는 등 엄청난 피해가 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강풍을 불게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은 얼마나 더 크고 위대하고 놀라우신 분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는 장면을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임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할 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3:8)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성령의 바람 불어 오소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 오순절의 의미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째 되는 날을 오순절이라 합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처음 오순절 날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이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처음 오순절날이 성령 충만을 받은 날입니다. 이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구약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약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주일을 지킨 후  7째주 되는 때를 오순절 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던 120여명의 성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찬송하고 기도할 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 닥치는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에서 강하고 급한 바람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온 집에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이 갈라지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귀로는 태풍소리가 들리고 눈으로는 불꽃이 보였습니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하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타오르는 불꽃이 거센 바람을 만나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최초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장엄하고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2. 한곳에 모였는데 각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우리는 한곳에 모였다는 장소적인 의미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한곳에 모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모임을 등한히 하면 안됩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모여서 찬송할 때 성령의 불이 임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한곳에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장소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있던 각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함께 모일 때 각 사람에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이지 않으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만나는 주님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개별 면담이 중요합니다. 주님과 개별면담을 하십시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그대로 주님께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엘리야, 예레미아와 같은 선지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죽은 셰례 요한이 살아서 나타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이라 평가하든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하여, 예수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과 어떤 관계가 없으면 죽은 지식입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느낌이 없습니다.
 
  3.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나의 인격이 성령에 의해 사로잡혀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 입니다. 즉 나의 생각과 행동이 성령에 의해 통제되고 성령의 뜻에 따라 움직여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이해될지 모르겠습니다.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성령에 의해 사로 잡힘의 상태” 는 광신적이란 비난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에 사로잡혔느냐가 중요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인격적인 신입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가장 선하고 윤리적으로 최고의 높은 기준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성령 충만하기만 하면 그분의 높은 인격과 그분의 도덕적 기준에 의해 행동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성령에게 사로잡혀 사는 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인가에 모두 사로잡혀 삽니다.

  욕심에 사로잡히고 정욕에 사로 잡히고 헛된 부귀영화에 대한 꿈에 사로잡혀 삽니다.
  얼마 전에 보험금 7천 만원을 타기위해 자기의 아내를 차에 태우고 가다가 고속도로 상에서 밀쳐 떨어뜨렸다가 들통난 비정한 남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돈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욕심 충만이 아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읍시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떤 고을에 마늘 도둑이 있었습니다. 어느 집 마늘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잡혀서 고을 원님에게 끌려왔습니다.
  원님은 마늘 도둑에게 3가지 방법의 벌을 내라고 그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마늘을 훔쳤으니 마늘 100개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곤장 50대를 맞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벌금으로 금전 한 냥을 내라는 것입니다.
  마늘 도둑은 금전 한 냥을 내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곤장 50를 맞을까 하다가 너무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늘 100개를 먹는 쪽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마늘 백 개를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열 개를 쯤먹으니까 속이 쓰리고 아프고 눈에서는 눈물이 쑥 빠지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작한 것이니 먹어보자 하고 20개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은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아서 마늘 도둑은 곤장을 맞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곤장을 치게하였는데 15대 20대를 맞고 나니 엉덩이에서 피가 나고 도저히 더 못 맞고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깨어나자 원님에게 사정했습니다.
  곤장은 더 이상 못 맞겠으니 벌금으로 내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벌금 금전 한 냥을 내고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도둑은 세가지의 벌을 다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욕심에 충만하면 결국 받을 고난 받은 벌 받을 고생 다 받고 풀려납니다.
  결국 인생이 고생하고 손해보고 어려움 당하는 것 따지고 보면 모두 내 욕심 충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약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니라” 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령 충만합시다.
  성령의 충만은 필수 사양입니다.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요 20: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성령을 받으라” 라고 명령했습니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그리고 엡 5:18절에 보면 바울도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라고 명령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오순절 성령의 바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성령의 충만함을 주는 바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여기있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4. 성령의 말하게 하심이 나타났습니다.
  본문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이란 무엇일까요?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나중에 사도들이 거리로 나가서 담대히 전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주어진 수단에 불과합니다.
  결국 성령의 은사는 “복음을 말하게 하는 것” 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권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증인이란 말은 진리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참고 인내하며 최후에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증인라는 말 “마르티스” 는 순교자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전도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순교하기 까지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의 불꽃이 일고 그위에 강한 바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록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기록하여 세상에 보내어지는 편지들입니다.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성령의 바람은 오늘도 우리에게 불어와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불을 지필 성령의 바람, 전도의 바람으로 말입니다.

  ① 성령의 바람은 오늘도 각 사람에게 임합니다.
  ② 모두를 충만하게 합니다.
  ③ 성령의 말하게 함이 나타납니다.

  오늘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불었던 성령의 바람 내게 불어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담대히, 읽어야 할 사람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찾아갑시다. (설교 / 박재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