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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욜 2:28-32, 행 2:1-4,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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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교회력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은 오십일 째 되는 날 지키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지킨 절기가 유월절이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도착하였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은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받은 날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오늘 사도행전 본문을 보면 바로 이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되었듯이 신약에서는 이날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오순절은 다름 아닌 맥추감사절이었습니다. 첫 농사를 지어서 그 열매를 창고에 모아들인 날이 바로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 날 최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알곡들이 그리스도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 창고에 들어오게 된 날입니다. 따라서 오순절은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성탄절이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라고 하면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땅에 태어난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삼위로 일체되신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즉 성자를 믿습니다. 그리고 영원부터 계셨으며 오순절에 세상에 오신 보혜사 성령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삼일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상태는 불안하고 불완전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후에 다시 하늘로 가시고 달랑 제자들만 이 세상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제 한 자리에 모여서 열흘 동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오순절 날 성령 충만 받았습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은 3천명에서 5천명으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요원의 불길같이 확장,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 나갔습니다. 이 놀라운 일이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고전12:3 말씀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성령 강림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 사람이나,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도 역시 성령이 아니면 결국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필수적입니다. 특히 이 마지막 때 우리는 약속하신 성령을 받음으로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그러면 오순절사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오순절 성령 강림은 “거룩한 황홀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행2:2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급하고 강한 바람”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로 하면 “태풍”입니다. 근래에 우리는 엄청난 태풍의 피해를 겪어 보았기 때문에 태풍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의 힘으로 막거나 제어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불어 닥칩니다. 불가항력적입니다.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불내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성령을 “오라, 가라” 할 수 없습니다. 더러는 어떤 부흥사들이 “성령 받으라”고 하며 마치 자기 마음대로 나누어 주는듯 하는데 부흥사가 마음대로 주거나 거두거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이 성령께서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실 때 거기서 아무도 막거나 피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성령님의 자유롭고 초월적인 역사에 압도당하였습니다. 거기 모였던 120명의 사람들은 성령께서 자기들에게 임하실 때 그 놀라운 역사에 겸허하게 자신들을 내맡겼습니다. 즉 성령께 사로잡혔습니다. 우리 찬송가 가사처럼 그 순간이야말로 정말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보려가 가까이 다가가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 거룩한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자리에서 신을 벗고 꿇어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소명이었고, 이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 해방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이 왜 이리도 시끄럽고 혼란합니까?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 사람마다 자기주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생각으로 교회를 섬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의견 충돌이 생기게 되고, 싸우고 다투는 일도 예사롭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갈5:에 나오는 육체의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 각 사람에게도, 우리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에도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들을 주장하시고, 성령께서 우리 교회를 주장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에 이 마지막 때 약속하신 성령,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역사하시는 성령 강림을 위하여 사모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방언체험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방언현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옛날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이 모여서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시날 평지에 모여서 하늘에까지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도전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인간의 화살을 겨눈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그 자리에서 무력화(無力化)시키고 자기들이 하나님 노릇 하려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인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언어를 혼잡케 한 일이었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므로 그 공사는 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인간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간이 만들어 온 역사는 주의와 주장, 그리고 사상과 이념의 분열로 인하여 끝없이 이어 내려온 전쟁이었습니다. 그 최전선에 우리나라가 남북한으로 갈라서서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지역, 계층, 종파에 따라 치유하기 어려운 소위 남남분열의 현상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이런 인간이 만들어 놓은 담이 한꺼번에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는 소아시아와 유럽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적어도 15-6개국에서 모여 온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모두가 자기 나라 말로 다 알아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성령의 역사, 방언 현상을 통한 역사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이 강림하시면 인간들이 막아 놓은 모든 장벽이 무너지게 됩니다. 갈라지고 분열되고 의사소통이 막혀 버린 인간 공동체가 성령의 강림으로 막힌 장벽이 무너지고 소통이 가능한 이해 공동체로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은 단지 옛날에 있었던 희한한 종교 현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마음으로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3) 오순절 사건은 개인적인 이기주의가 극복되고 섬기고 나누는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여기 “교통”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친교”를 의미하는 말인데 자발적인 참여, 물질적 정신적으로 서로 나누며 교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요새 쓰는 말로하면 “사회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아무도 자기 재물을 자기 개인의 소유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것이요, 우리는 그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도 마치 홍포 입은 부자가 나사로에게 한 것처럼 그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들만 배부르게 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는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실천하게 한 분이 성령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제도의 개선에 앞서 우리가 간절히 구할 것은 성령 충만 인 줄 믿습니다.

(4) 성령 강림을 체험한 성도들은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숨을 내 걸고 증거했습니다. 즉 예수 증언의 공동체, 십자가 증언의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어떤 기적이 일어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를 단순히 지식 충족을 위하여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삶에, 우리 사회에 놀라운 기적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 지적 갈증을 충족시키는데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목적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믿는 일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날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3천명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능력, 교회로 하여금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복음을 믿고 증거 할 수 있도록 하시는 이가 성령이십니다.

오늘 2005년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으나 아직 미약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이 마지막 때에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 개인이,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하고, 그 능력으로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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