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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을 근심케 말라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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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절기상으로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50일째 되던날, 즉 7주일인 오순절날에 "너희가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약속하셨던 성령이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떠나고 난 후에는 보혜사 성령을 성부하나님께 구하여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인간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셨고, 다시 살게 하신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라고 한다면 그 믿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탄절, 부활절 못지 않게 오늘날 크리스찬들이 직시해야 해야 하는 것은 성령강림절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크리스찬들을 보아도 성령강림 후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성령과 접속이 된 사람들은 놀라운 변화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바람같은 분, 불같은 분, 혹은 기름같은 분, 비둘기같은 분, 물같은 분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령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그 효력들과 효과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성령님을 하나의 힘이나 생명, 영성으로만 이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같이 사는 남편이나 아내보다 더 인격적입니다. 자녀들보다 더 인격적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한다는 말은 성령님을 슬픔 가운데 빠뜨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고통과 번민 가운데 밀어넣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믿는 사람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참된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10절에 보면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바라지만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이라야 영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슥 4:6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인생이 할 수 없는 것을 성령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근심에 빠뜨리면 우리가어떻게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볼 수가 있고 알수가 있겠습니까?

  2. 성령님은 교통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3:13절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자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분이라면 성부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하나님은 이 은혜와 이 사랑을 알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고 나누게 하시며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는 교통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할을 통하여 죄많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친교가 가능해지며 모든 성도들과의 교제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인치시고 위로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를 부활의 날까지 우리가 천국에 들려올려갈 때까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성부하나님께 탄원해 주십니다. 롬 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님을 우리가 근심케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교통이 안되는 것입니다. 소통이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 깨닫을 수 없는 것을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의 본성에 아주 생소한 것을 덧입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성령을 기쁘시게 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인격적인 도전을 하시는 것을 가장 슬프게 여기시며 근심까지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뉴욕 한거리에서 한 남자가 풍선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손님을 끌 심산으로 색색가지로 풍선을 공중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풍선을 사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머못거리며 풍선을 올려다보고 있던 한 흑인 소년이 "아저씨, 까만 풍선도 저렇게 뜰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풍선 장수는 지혜롭게 "물론이란다. 풍선이 뜨는 원인은 풍선의 색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풍선 안에 있는 내용물 때문이지"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사느냐는 외적인 데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과 그 힘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성령님을 근심하케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주의 해야 할 것 몇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라" 하셨습니다. 거짓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실하신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매우 영리한 방법을 동원하여 진실성이 결여된 자신들의 태도를 합리화시키곤 합니다. 우리는 거짓을 말하는 대신에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일을 하지 않은 채 거짓말하는 것을 절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격려의 말을 합시다. 칭찬의 말을 합시다. 찬물을 끼얹는듯한 오싹한 말은 삼가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러운 말"이라고 사용된 사프로스는 "썩은 나무, 썩은 과일"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썩은 나무와 같고 썩은 과일과 같은 그런 말을 사용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썩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노여움이나 분노가 아무리 유익한 것일지라도 오래도록 품고 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가지기 전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분노는 마땅히 절제되어야 합니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덕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탐욕을 부리면 있어도 도둑질을 합니다. 있어도 나누어주지 못합니다. 탐욕을 버리고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여 선을 행하라하셨습니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이 있는 경기에서는 언제나 상대방을 놓쳐버리면 안됩니다. 축구선수들은 자신이 맡아야할 상대선수가 있습니다. 그림자처럼 그 선수를 마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놓쳐버리면 골을 먹기 쉽습니다.
  우리의 상대는 악한 마귀 사단입니다. 영적인 눈을 똑바로 뜨고서 예리한 눈으로 마귀를 주시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마귀는 패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패배한 대적일지라도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강원도 양양에 큰 불이 나서 많은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는데 꺼진불 때문이었습니다. 꺼진불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불이 붙어버린 것입니다.
  마귀는 무시할 수 없는 영적존재입니다.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잊지 말것은 이런 모든 것이 내 힘으로만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 예수 믿고 승리하는 것,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고 성령님이 내 안에 즐겁게 거하시도록 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을 얼마나 충만하게 내 안에 머무시도록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인줄 믿습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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