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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행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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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하러 간 교회의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 있는 술주정뱅이 교인들이 변화되지 않고 언제나 술에 취하여 있음을 안타까이 여겨 권면을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에 전교인이 투표를 실시하여 이들을 교회에서 추방할 것을 결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던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그렇다면 이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취했는지에 대해서는 투표한 적이 있습니까? 세상 술에 취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회의 더 큰 문제는 성령에 취해 있지 못함에 있습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우리는 때때로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놓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자들도 유대를 식민지로 다스리고 있는 로마를 의식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이때입니까? 악한 로마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로마가 멸망해야 경제문제가 해결됩니다. 정치적인 안정이 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라고 예수께 말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로마가 물러가야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고 하십니다. 문제의 해결을 정치적 관심에서 영적 관심으로 바꾸셨습니다. 로마를 향한 정치적인 독립운동이 필요함이 아니라 성령의 임하시는 역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로 고민하며 어떤 문제와 더불어 싸우고 있습니까? 모든 문제는 성령이 임할 때에 해결될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면 가장 중요한 것, 먼저 할 것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것들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첫째로 주의 권능을 얻게 됩니다

아일랜드 북방에 가면 봄철에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치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며 재미있게 산답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늦가을이 오면 무섭게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이 하도 세차서 새끼들이 다칠세라 둥지가 날아가랴 바람에 날아오는 흙덩이에 얻어맞을까 해서 안간힘을 다합니다. 이렇게 끝까지 버티는 새가 있는가 하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 발로 아내와 새끼들만 움켜쥐고 양 날개를 크게 벌리면서 그 세찬 바람에 몸을 맡겨버리는 새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함께 날아간다고 합니다. 얼마를 그렇게 모진 바람 속에 날려서 어떤 곳에 떨어지게 되는데 정신차려 깨어보니 따듯한 잔디 위에 누워있더라는 겁니다. 아내와 새끼들도 바람을 타고 무사히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산등성이에서 바람을 거스려 버티고 있던 새들은 자기 힘과 꾀를 써서 별수단을 다해 싸웠지만 그만 닥쳐온 겨울 속에서 꽁꽁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아직까지 내 힘으로 남은 생애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연약합니다. 내 힘으로 버티다가는 멸망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올 때 양 날개를 펴듯이 가슴으로 성령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얻어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이 임하게 되면 권능을 받게 됩니다. 권능이라는 말은 '두나미스' 입니다. 이 말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권능을 받고' 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권능을 받는 다' 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낙심하고 좌절가운데 축 쳐져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한결같이 어깨가 축 쳐져있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고 살아갑니다. 힘이 빠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성도들도 나약한 가운데 힘이 빠져있으면 무기력하게 됩니다. 삶이 무기력하고 무의미함을 느끼십니까? 성령이 임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회복시키시는 영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엎드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며, 약한 자를 강하게 하는 능력이며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파워입니다. 큰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결단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상이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권능이 그들 가운데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라도, 가난과 저주와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의 증인이 되어 집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특별 법률 고문으로 일하던 찰스 W. 콜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치적인 야망에서 살아왔던 콜슨은 수감생활을 통하여 지금까지 걸어왔던 어떤 길보다 새로운 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회심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방황하며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위한 복음 증거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성령 충만하여 주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옥중에서 지은 '거듭남(Born again)' 이란 책은 미국 기독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출감 이후에 '교도 선교 협의회' 를 설립하여 전 세계적으로 역동적인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 는 말씀입니다. '증인이 되라' 가 아니라 '증인이 되리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증인이 되게 하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의 증인이 되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되라' 는 말은 스스로 되라는 말이나 본문은 '되리라' 고 쓰고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증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성령께서 그들을 증인의 자리로 내몰으셨습니다.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힘에 이끌리어 복음을 증거 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왜 전도하지 못합니까? 결국 우리의 문제는 아직 성령의 임재가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강력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또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의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어떤 수도사가 길을 걸어가는데 마귀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저 수도사를 넘어뜨릴 방법이 없는가 하여 마귀의 졸개들이 여러 가지 유혹을 해보았으나 수도사가 안 넘어집니다. 결국 마귀대장이 나섭니다. 그는 수도사를 일격에 넘어뜨립니다. "수도사님! 수도사 동생이 계시지요?" "있습니다." "그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감독이 됐습니다." 그랬더니 이 수도사의 얼굴빛이 변하는 것입니다. 눈길이 변하는 겁니다. 동생이 잘된다고 하니까 질투하는 겁니다. 시기하는 겁니다. 결국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동생하고 싸우려고 돌아갑니다. 성령이 임하시지 아니하면 질투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마음의 악한 세력에서 우리를 건져내며 평안케 할 자가 누구입니까? 오직 성령이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성령을 통해서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예수님의 걸음걸음에서 기적을 보았고,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대신 보혜사 성령을 마음속에 부어주심으로 더욱 심오하며 강력한 평안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이 평안은 눈과 귀로 듣고 맛보던 평안이 아니라, 마음속에 느끼는 평안입니다. 손과 발로 감각적으로 맛보던 평안이 아니라, 마음으로 맛보는 평안입니다.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평안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평안입니다. 성령이 주는 평안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보편적인 평안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어지는 평안입니다. 남들이 일어나지 않는 새벽에도 임하는 평안이며 남들이 곤한 잠에 떨어진 밤중에도 임하는 평안입니다.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으며, 어떤 환경적인 요인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는 곳에 평안이 있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을 사모하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넘치는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80세 된 노인이 전도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자 마음이 뜨거워지며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생활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내 나이는 두 살이야." "왜 두 살입니까?" "교회 나와 성령 받고 변화 된지가 2년 되었거든. 그러니까 내 나이는 두 살이야". 육체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변화 받고 거듭난 영적인 나이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받고 살아온 날이 몇 년이 되었습니까?
부디 성령강림절을 통하여 성령의 임하심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지심으로 언제나 주님의 평안이 넘치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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