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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은 태어난다 (창 1:26~31, 고후 4:16~18, 요 16: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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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창세기 1:26 ~ 3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서신서의 말씀: 고린도후서 4:16 ~ 18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16:19~ 22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요즘 역사 교과서에 관하여 말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독도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본래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때부터 지금까지 독도를 시마네 현으로 귀속시켰던 식민지 정부의 눈으로 독도를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일본은 식민지 사관이라는 안경이 아닌 진실된 안경을 끼고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도 진실된 안경이 필요합니다.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순서상으로는 창세기부터 읽어야 하겠지만 오늘부터는 바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학자들은 창세기를 기록한 연대를 BC1446년에서 1406년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을 벗어나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의 감격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며 생각했습니다. 구원의 눈으로 우리의 옛 역사를 보고 기록하자. 그렇게 기록하게 된 것이 바로 창세기입니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모든 역사의 출발점은 항상 출애굽의 사건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오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은 창조 과학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창조 신앙입니다. 창세기는 출애굽하신 주님이 우리를 처음 만드신 에덴동산에서부터 우리와 함께 하셨으며, 앞으로도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감사와 찬양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해 주신 부활의 예수님을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읽으시면 성경에 있는 전체 말씀이 일목요연하게 신앙고백의 말씀으로 우리한테 들려집니다. 구약은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 출애굽 역사의 눈으로, 신약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눈으로 읽으십시오. 그리고 신구약의 모든 것을 완성하신 부활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모든 성경을 읽으시면 하나님의 은혜가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사람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기는 모든 생물들을 다 다스리라 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을 구원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보지 않고 창조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은 무조건 지배하면 된다는 생각에 자연을 완전히 파괴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멸망시키고 지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고 세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는 방법은 짓밟고 멸망시키는 정복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멸망시키는 대신에 홍해의 기적을 통해서 자기의 백성을 살려내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버리시면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만드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왜 ‘우리’라고 쓰였는지 궁금해 합니다. 첫 번째로 히브리 언어에서는 너무 귀한 분을 표현할 때에는 복수로 표현합니다. 당신 대신에 당신들이라고 하고 나 대신에 우리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라는 말은 히브리어 문법에서 귀하신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앙고백적인 관점에서의 ‘우리’라는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성자 하나님, 오늘도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 우리 셋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만들자. 나를 버리면서 사람들을 살려내는 우리의 방법으로 인간을 만들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형상을 닮은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그 분이 낳으신 자녀입니다. 하나님께는 자녀는 있지만 손자 손녀는 없다고 합니다. 성경말씀 어디에도 우리가 손자 손녀 또는 증손자라는 말은 없고 모두 자녀라고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만 있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이미지, 라틴말로는 ‘이마고’를 똑같이 부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직접 하나님의 이마고를 받은 그 분의 자녀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저는 음식점을 갈 때 가끔 된장국, 청국장뿐만이 아니라 가끔은 우렁이 된장국도 주문해 먹습니다. 그런데 모르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우렁이는 새끼를 낳으면 먹이로 자기의 속살을 먹인답니다. 그래서 새끼가 다 자랄 때쯤이면 어미 우렁이는 속살이 다 먹혀서 하나도 없게 됩니다. 속살을 다 먹여서 빈 껍질이 될 때까지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렁이가 어미의 속살을 통해서 자라듯이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속사람을 통해서 자랍니다. 속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이마고, 즉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눈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믿느냐에 따라 유신론자가 되기도 하고 무신론자가 되기도 합니다. 또는 불가지론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니 없다고 하자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신불가지론도 생겼습니다. 신 비슷한 것이 있는 것도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면 믿겠는데,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믿을 수가 없잖습니까.

인간에게는 겉만이 아니라 속도 있다는 사실은 보지 않아도 모두 믿습니다. 항상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것은 의미없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분 마음 속에 존재하는 무한한 힘은 아주 귀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으나 나를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발명왕 에디슨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천재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에디슨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천재성은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흘리는 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1퍼센트 주어진 인간의 존귀함은 하나님의 이마고입니다. 나머지 99퍼센트는 우리가 스스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인간이 노력하고, 땀 흘리고, 고난도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역사 속의 존귀한 1프로는 하나님의 영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내 능력이며 땀 덕분이라고 교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소중한 이마고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1퍼센트의 형상과 함께 살아갈 때 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모두의 뼈 속 깊이 함께 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그런 영광이 여러분과 함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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