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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순종이 있는 가정 (창 2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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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이제 두 주만 있으면 우리 교회에서 장로님 한 분은 선출하게 됩니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주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도 오직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충성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이 화목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세워가는 일도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충만케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들의 가정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가정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이 두 사람은 순종이 있는 가정이었다는 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이 두 가정의 순종은 어떤 순종이었습니까?

첫째는 항상 순종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순종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네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창12:1)고 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은 사실 갈 바를 몰랐지만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 길을 떠났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자기 고향을 떠나면 죽는 줄 알았던 시대였습니다. 부모형제를 떠나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하시니 그대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황당하여 보이고 도저히 이해되지 아니한 때라도 말씀하신  주님을 신뢰하고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항상 제단을 쌓는 삶을 살았습니다. 잘되는 때에도 단을 쌓고 어려운 때에도 단을 쌓으면서 그의 순종의 허리띠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은 65세에도 순종하였고, 75세에도 순종했으며, 100세가 되었을 때에도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자기만 순종한 것이 아니라 온 집안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자식들에게 순종을 심어 준 부모입니다.

둘째는 희노애락(喜怒哀樂)간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기분 좋을 때에 순종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쉬워서 무엇을 얻으려고 순종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잃는 일과 자기의 재산이 크게 손해나는 일에 순종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유의해서 보면 한 밤에 잠을 자는데 밤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명령입니까? 많은 아들 중에 하나를 바치라고 하는 말씀도 아니고 하나 밖에 없는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니 하나님도 너무하시다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괴로운 명령에도, 그 괴로운 심정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감정과 기분에 붙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괴로울 때에도 하나님께 순종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인들에게 나무와 불을 준비케 하고 잠자는 이삭을 깨워 모리아 산을 향하여 걸아가기 시작합니다. 그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 대상이 설사 혈육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드리는 일인데 혈육과 의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갈1:15,16). 오직 아브라함에게는 절대의 순종의 길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셋째는 죽음으로서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이삭은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아버지가 깨어서 일어났을 뿐입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자고 해서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아버지를 따라가면서도 그는 이상했습니다. 불과 나무는 여기에 있는데 제물로 드릴 양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 말을 들은 이삭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시하신 산에 이르니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앉혀 놓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설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대로 결박을 짓습니다. 그랬더니 이삭은 또 그대로 결박을 당합니다.

참 놀라울 뿐입니다. 그 때에 이삭은 이미 성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미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반항하고 거역할 만큼의 힘이 있었습니다. 말로 해도 젊은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이는 순종을 뜻합니다. 이삭의 순종은 어떤 순종입니까? 죽음으로의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은 그리스도를 예표 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모리아 산은 후일의 갈보리 언덕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을 쌓았던 그 곳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섰던 그곳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어린 몸이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향하여 오르던 그 모습 그대로가 곧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여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의 그림자였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희생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묵묵히 피 흘려 제물이 되려는 이삭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죽음으로서의 순종이셨습니다.

순종의 신앙은 우리가 자주 실패하는 덕목들입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고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고 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께 순종이라는 법을 이루셨습니다. 빌2:6-11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바로 순종의 신앙인입니다.

끝으로 이삭은 생애의 순종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처음에는 순종합니다. 나중에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처음 직분을 받을 때는 순종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는 순종을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합니다. 어떤 이는 어렸을 때는 순종합니다. 그러나 청년이 되어서는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 이삭은 어린 시절부터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 장년기에도 그의 삶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창24:63절에 보면 그는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때의 나이가 40세였습니다.(창25:20) 연령이 40이라면 자기의 마음대로 적당히 배우자를 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에서는 나이 40세에 벌써 가나안 여자를 둘씩이나 취하여 살고 있었습니다.(창26:34) 그러나 이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그것을 아버지에게 맡길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삭은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평범한 일상생활에 있어서 침묵 중에 순종하며 고요한 중에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묵상의 생활을 하는 이삭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습입니다. 노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이 장가간 후에 오래 동안 아기가 없었습니다.(창25:21) 20여년이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대로 “네 씨로 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아들이 없어 벌써 60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큰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아브라함처럼 첩을 얻어 자식을 낳으려고도 하지 아니하고(창16: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자기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인내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벌써 이스마엘은 열 두 아들을 낳아 12방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도 없습니다.(25:16) 그래도 이삭은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며 간구하는 믿음과 약속의 말씀 순종함으로 인하여 약속의 성취를 이루고야 말았습니다.(히10:36)

또한 이삭은 마음이 온유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간 데마다 제단을 쌓음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면, 이삭은 간 데마다 우물을 판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무려 일곱 번이나 우물을 팠습니다.(26:15,18,19,22,25,32) 우물을 파 샘물을 얻었을 때마다 원수들이 시기하여 싸우고 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와도 다투지 아니하였습니다. 누가 달라고 하면 넘겨주고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씩이나 했습니다. 싸울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때에 이삭의 군대는 아비멜렉 왕보다 “더욱 크게 강성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4:14,26:16) 그러나 그는 싸우려 하지 않고 다시 자리를 옮겨서 우물을 팠던 것입니다. 너무나 예수님을 닮은 이삭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았던 이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되는 집안과 안 되는 집안은 무슨 차이일까요? 옛날 가까운 동네에 두 친구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은 집안에서 늘 웃음이 흘러나오고 살림도 불어나고 온 식구가 건강하게 잘사는데 다른 한집은 늘 불화하고 살림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걸핏하면 아픈 그런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환이 많은 집 사람이 늘 평안하게 사는 친구를 찾아가서 그 비결을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여보게 그동안 잘 있었나?” “어서 오게 그 사이에 얼굴이 말이 아니구먼. 무슨 일이 있었나?”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롭게 사는 집의 친구의 옷을 보니 바지가 발목에서도 두 뼘 정도는 올라오게 짧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자네 부인은 바느질도 제대로 못하는가? 바지가 그게 뭔가? 이 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다닐 참인가?” 그 친구가 허허 웃으며 대답하는 말이 “사실 지난 장날 장에 가서 바지를 하나 사오지 않았겠나? 그런데 사가지고 오니 바지가 너무 길지 않겠나?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서 식구들에게 바지를 한 치만 주려 놓으라고 했지” “자네 부인은 칫 수도 잴 줄 몰랐단 말인가?” “아니 그 사람은 정확하게 한 치를 재서 주려 놓았다네!” “그런데 그 꼴이 뭔가?” “아 글쎄 그걸 모르고 큰딸이 한 치를 또 줄였지 뭔가? 얼마 후에 둘째딸이 또 한 치를 줄여서 결국 이렇게 된 것이라네. 막내 년이 어리기 망정이지 그년까지 손을 댔더라면 정말 반바지를 입을 뻔 하지 않았겠나?” “자네는 그 꼴을 하고서도 웃음이 나오나? 호통을 처서 일을 제대로 하게 할 일이지...원!” “다 나를 위해서 한일인데 어쩌겠나? 고맙게 생각하고 입어야지.”

그 이야기를 들은 우환이 많은 친구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기도 바지를 하나 사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자기네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바지를 하나 샀는데 너무 길구나. 누가 한치만 줄여 주었으면 좋겠구나” 다음날 기대를 가지고 바지를 꺼내 보니 바지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먼저 부인을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당신은 무얼 하느라고 아직 바지를 그대로 두었소!” “아이참 큰애에게 시켜 놓았는데 안 고쳤어요? 야 큰애야 아버지 바지 어떻게 됐니?” 큰딸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 둘째에게 눈을 흘기면서 따졌습니다. “내가 너한테 하라고 했잖아? 여태 뭐하고 있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그 친구네 집은 잘되고 우리 집은 안 되는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되는 집은 전 가족이 무엇이든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을 다하지만 안 되는 집은 자기일도 남에게 떠미는 습관을 가진 집인 것입니다. 어른이 말씀해도 순종하지 않는 집일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가정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느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일군도 이렇게 순종하는 자를 뽑아야 옳은 줄 압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고 풍성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불화가 있고 빈곤합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그러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은 신앙과 순종의 삶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 에서부터 그를 불러 외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2)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축복으로 내려 주십니다.

3) 승리의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고 애쓰는 이삭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창26:28절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는데 간데마다 새로운 샘물을 주시는가 하면 그를 시기했던 아비멜렉도 군대장관과 함께 이삭을 찾아 와 무릎을 꿇고 동맹을 맺을 것을 제의하여 왔습니다. 결국 승리는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불신자도 알게 해 주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부디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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