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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직한 영 (마 5: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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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탐지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신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맥박이 빨라집니다.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부에 나타나는 전기 반사와 심맥파를 동시에 기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100% 거짓말을 가려내지 못합니다.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이 약한 사람은 정직해도 그래프에 기록이 거짓말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피의자를 조사할 때는 기계 자체의 성능보다도 유도 질문을 어떻게 잘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형사 콜롬보 같이 아닌 척 하다가 갑자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실토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계가 나온다면 어떨까요? 그럼 또 인생사는 맛이 떨어질 겁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정직하게 사십니까?

세상의 삼 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노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 이 세 가지는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세상에 흔한 것이 거짓말입니다. 세상살이는 속고 속이는 것의 연속입니다. 속지 않으려면 긴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긴장하고 조심해도 속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은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말을 주장하기 위해서 곧잘 맹세를 합니다. 말에 신빙성을 두려고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합니다. 자기 말이 거짓말이 되면 명예를 잃게 되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믿어주지 않으면 더 센 것에 두고 맹세를 합니다. 하늘에 두고 맹세를 하면 아주 셉니다. 하늘에 맹세하는 것은 만약 거짓말이 되면 천벌을 달게 받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써 왔기 때문에 요즘은 이것도 효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틀리면 성을 간다’고도 하고, ‘내가 네 자식이 되겠다’고도 합니다. 온갖 형태의 과장된 표현과 최상급의 화려한 말을 합니다. 그런데 강하게 말할수록 오히려 믿기 어렵습니다.

사실 맹세는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주 맹세를 하고, 자주 부도를 내다보니까 맹세의 값어치가 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맹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맹세를 좋아하는 유대인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도무지 맹세를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로도 말고, 땅으로도 말고,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신에 따라서 맹세를 잘 했습니다. 이 맹세는 본래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맹세를 할 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2 장에 이 맹세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맹세를 가르치기 위해서 어떤 사건을 가정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볼 일이 생기면 옆 집 사람에게 부탁을 합니다. 다녀오는 동안 나귀나 소나 양을 돌봐달라고 합니다. 이웃끼리 이런 부탁은 서로 들어주게 됩니다. 며칠 씩 걸리는 일이면 기르던 짐승을 맡겨야 합니다. 일을 마치고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우리에 있어야 할 짐승이 죽었습니다. 혹은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혹은 도둑을 맞았습니다. 그러면 시비가 생기고 재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맡았던 이웃은 모르는 일이라며 물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웃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 때 맹세를 시킵니다. 당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면 그의 말을 믿어주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 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출 22:10-11>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맹세는 고의성이 없음을 정직하게 밝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맹세는 아브라함 때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관습이었습니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창 21:23>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절대 정직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인지라 감히 어길 생각을 못했습니다. 만약 어길 때에 따르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맹세하지 못함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는데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 가운데 서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한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소하고 가볍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고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맹세는 효력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맹세를 하면 믿어주었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유대인의 맹세는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것을 역 이용해 먹었습니다.

완벽한 거짓말을 하는 도구로 맹세를 남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에 두고 맹세를 하는 것은 마음에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맹세를 할 때 슬쩍 하나님보다 약한 것에다 걸었습니다. 그것이 하늘에 두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보다 약합니다. 하늘은 포괄적으로 하나님도 되지만 직접 하나님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또 땅에다 맹세를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예루살렘 성에다 맹세를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 머리에다 맹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맹세를 도무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마 5:34-36>

이런 변칙적인 맹세는 유대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둔 맹세는 어겨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의 맹세는 값어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의 맹세를 믿어주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도 이런 모습이 많습니다. 그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사회가 믿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용을 잃어버리는 행동을 합니다.

물건을 팔다가 사려는 사람이 믿지 않는 기색이 보이면 얼른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믿어줄 것 같은가 보지요. 한 술 더 떠서 ‘저는 멋진교회 집사입니다.’ 얄팍한 상술입니다.

전에 용산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만 차선을 잘못 찾았습니다. 코너를 싹 도는데 그 앞에 경찰이 서 있었습니다. 차를 세우더니 면허증을 보자고 합니다. 차선이 워넉 애매했습니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간 나도 모르게 ‘저 목사인데요···’ 하고 말했습니다. 목사니까 고의적으로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또 목사니까 너그럽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겠지요. 경찰관은 저를 보더니 “그래도 차선 위반한 건 아셔야 합니다.” 했습니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부터는 저 목사인데요. 하는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이 맹세를 거짓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나 하나 욕먹고 말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욕 되게 하고, 하나님을 욕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맹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오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엣세네파가 그랬습니다. 종교개혁 때 재침례파가 그랬습니다. 현대에 퀘이커교도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결혼 서약이나 법정에서 하는 맹세도 거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맹세한 적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체포해서 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맹세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마 26:63-64a>

사도 바울도 로마서 9:1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6:16-17 에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하나님도 맹세를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보면 맹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맹세를 악용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일에 맹세는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결혼 서약은 심각하고 생각하고 대답함으로서 가정 울타리를 지키게 됩니다. 맹세는 자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뜸하게 할수록 그 값어치가 귀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은 맹세를 피해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맹세는 정직해야 합니다. 한 것은 했다고 하고, 안 한 것은 안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을 들먹이면서 거짓 맹세를 하는 유대인들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맹세할 때는 오직 해야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37 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 5:327>

사실 ‘예 아니오’ 를 분명하게 하는 사람은 처세술에 능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적당하게 버무리면서 말할 줄 알아야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보다 정직이 더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정직하다는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대박을 터뜨리게 됩니다.

요즘같이 뭐든 믿고 사기가 어려운 때에 정직한 기업은 번창합니다. 우유부단한 자세는 일시적으로 좋아보일지 모르나, 오래가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하지 못한 태도는 악에서 좇아 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물거리는 순간 죄가 틈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에 옷로비 사건 때 연류된 사람들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 일로 크리스천 신용도가 얼마나 추락했는지 모릅니다.

사회 저명한 지도자들이 부정비리 사건이 터지면 온갖 과장된 표현으로 부인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부도덕함이 드러납니다.

한 장로님이 빚보증을 잘못 섰습니다. 그 분이 집사 때의 일입니다. 세검정에 이층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친구가 빚을 못 갚으니까 채권자가 이 집사님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선듯 집을 팔아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채권자가 오히려 믿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한 번 말하면 그대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집을 팔아서 그 빚을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그 후 이 집사님은 변두리 땅을 사서 다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두리가 지금 강남 영동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곳이 변두리여서 땅값이 아주 쌌습니다. 지금은 그 집을 팔면 세검정에 있는 집 세 채는 사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시편 15 편 말씀을 새번역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시15:1 주님, 누가 주님 계신 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입니까? 주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사람은 누굽니까 ?
시15:2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시15:3 혀를 놀려 남의 허물 들추지 않는 사람,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친구를 모욕하지 않는 사람,
시15:4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는 경멸하고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존경하면서,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지키는 사람입니다.
시15: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도 다르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땅에 추락한 믿는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 정직한 영을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나 인정받는 정직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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