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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히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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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만 되면 괴롭다는 말들을 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괴롭고 학부형은 학부형대로 괴롭습니다.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어도 그것이 자기 자녀를 잘 봐 달라고 하는 뇌물처럼 보여질까봐서 선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역시 학생들이나 학부형이 가져다 주는 선물마저도 자칫 학생들로 하여금 그 선물을 가져오도록 은근히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보여질까봐 받기가 두렵습니다. 더욱 요즘 학교 문 앞을 지키고 있다가 무슨 선물 꾸러미 같은 것을 들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선물조차 주고받기를 겁내는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촌지가 뭐냐고 묻는 통에 선생님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일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것은 다 옛말이 되었고 이제는 서로가 불신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 하나 선생님께 전해드린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요? 왜 우리는 그러한 순수한 마음까지도 추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다가 그렇게 선물 하나도 마음껏 주고받을 수 없는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는지요?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선물 자체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가르치는 자로서 갖추어야 될 자세가 있고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대로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 가르치며 이끄는 지도자와 배우고 따르는 모든 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우는 사람과 인도하는 사람이 각각 어떤 자세로 배우고 또 가르쳐야 될까요?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지도자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지도자라고 하면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겠고 또 어떤 조직을 이끄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들로 말하자면 목사와 전도사가 있고 교사가 있으며 각 팀장과 각 기관을 이끄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생이 되었든 아니면 조직이나 기관을 이끌어나가는 지도자가 되었든 간에 배우는 입장이나 인도함을 받는 입장에서 어떻게 지도자를 대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지도자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의 생명을 책임집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양떼를 지킵니다. 그리고 양들로 하여금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이끌어줍니다.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나 각 기관과 팀을 이끄는 분들은 바로 여러분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바르게 성장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갈 책임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여러분들을 위해 중보하며 여러분들을 축복하기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연약한 자가 있다면 내 일처럼 돌아보며 아파하고 그들을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합니다.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양떼를 지켜내는 것이 목자이듯이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요 지도자들이기에 자기에게 맡겨진 생명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즐겨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입니다.

모세를 보세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있을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의 신이라고 하며 그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애원을 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이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님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유산으로 삼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슬픕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듦으로써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모세는 이렇듯 백성들을 버리고 자기를 높이 세워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기 이름도 지워달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끝까지 투덜거리기만 하는 백성이 모세에게도 어찌 밉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모세는 끝까지 그 백성들을 붙듭니다. 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하나님과 담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도록 하나님께 엎드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세의 마음을 하나님이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도록 허락하십니다.

이러한 모세의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주의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바로 목사요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 놓습니다. 아니 주의 백성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 놓고 하나님과 엎드립니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의 자비와 사랑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갑니다. 자기를 성도들을 위한 희생의 도구로 삼기를 기뻐합니다. 내가 희생되더라도 내게 손해가 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성도가 바로 설 수 있다면 성도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합니다. 기꺼이 죽음의 길도 마다 않고 들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만든다면 곧 연자 맷돌을 지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그래서 성도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목사의 길이요 지도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한 달란트를 맡은 자처럼 주님의 일에 수고하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도 목사와 지도자는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먼저 실력을 쌓아야 됩니다. 그냥 쉽게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고 어떠한 대적이 와도 성도들을 지켜내며 대적을 물리칠 수 있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르친다고 하면서 나도 못하는 것을 가르친다면 그것을 보고 배우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지도자의 심령 속에는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해야 하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철저히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나를 희생해야 합니다. 철저히 성도들을 세워나가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내게서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던 바울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끌며 가르치는 모든 것이 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물론 첫째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광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바로 성도들의 복된 삶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홍해 바다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그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기 위해서였습니까? 바로 그 길만이 그들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끌고 가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이 복된 길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혹시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길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순종하고 복종하여 따르면 그 모든 길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이끌어 주십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리고 반석의 물을 주시듯이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십니다. 지혜도 능력도 하나님이 허락하여주십니다. 필요한 은사도 주십니다. 건강도 주십니다. 기쁨과 평안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목사와 지도자들이 주님 앞에 바로 서서 바로 보고 바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저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고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들의 말에 복종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모든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모든 길을 그리고 여러분이 살아가는 그 모든 모습들을 하나님 앞에 서서 보고할 사람이 바로 목사요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 서서 보고할 때에 여러분에 대해서 무어라고 보고하여야 하겠습니까? 아무개 아무개야말로 정말 순종하며 기쁨으로 섬기던 분들입니다 라고 보고하여야지 아무개는 전혀 순종도 않고 말씀대로 살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라고 보고서를 올리게 된다면 이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에게도 불행이고 그런 보고의 대상자 역시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제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고 교회의 모든 기관과 팀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기쁨으로 주님 앞에까지 이르도록 인도하며 순종하고 복종하는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지도자로 하여금 어떻게 일하도록 하여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하며 수고하여도 신나게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힘든 줄을 모릅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칩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면, 일을 하면서도 찜찜하고 그 결과도 결코 좋지를 않습니다. 그래 모든 일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것마다 복종하며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시비나 하고 있다면 어찌 기쁨으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기쁨으로 순종하게 되면 앞에서 이끄는 사람도 신이 납니다. 힘들게 느껴지기에 더욱 기도도 하게 됩니다. 더 즐겨 축복도 하게 됩니다. 설사 성도들이 잘못되어도 그들을 위해 눈물로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앞에서 가르쳐도 시큰둥하기만 하고 따르지도 않는다면 일을 하면서도 나오느니 탄식밖에 더 있겠습니까? 저들이 수고하는 것이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바로 성도 여러분들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본문에서도 그래야 그들의 수고하는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다 그게 자기들을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라고 믿고 따른다면 그 모든 유익은 나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시비하고 거절한다면 결국 손해는 자신에게로 돌아갈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들로 하여금 함께 세워져 가도록 질서를 세우시고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면 마땅히 기쁨으로 순종하고 기쁨으로 동행하고 기쁨으로 함께 모든 일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모세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도 하나님 앞을 막아서서 하나님 앞에 엎드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설사 하나님의 징계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감당치 못할 정도가 아니라 피할 길을 내어 능히 감당케 하시도록 그렇게 지도자들이 중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앞에서 이끄는 목사와 지도자들로 하여금 탄식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목사와 교사에게 기쁨이 되어 주십시오. 기쁨으로 일을 하도록 만드십시오. 수고하는 이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일을 하게 만들려면 그들을 잘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힘을 내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함께 힘을 합쳐 수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그리고 모든 고통과 슬픔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혹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를 위해 더욱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하나님이 동행하시며 역사하여 주시기를 위해서 또한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역시 모든 일에 바르게 처신하려고 합니다.”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목사와 전도사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된 분들과 교사와 각 팀장들을 위해서 각 기관을 이끌어가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 우리 모두가 기도로 하나가 되고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이끌기도 하고 순종하기도 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가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 성장하기를 멈춘다면 내일 가르치기를 중단한 것이다.” 그러기에 참된 목사와 지도자는 먼저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학생 중에 한 사람이라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참된 지도자는 성장하고 변화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둘째 서신 마지막 절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 : 18)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이끄는 자들이 먼저 신실하고(Faithful) 쓸모있고(Available)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야(Teachable) 합니다. 그럴 때 성도들 역시 주님 앞에 신실하고 쓸모 있으며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주님 앞에까지 이르도록 충성된 일꾼이요 성도들 다 되어질 수 있도록 가르치며 이끄는 분들도 기쁨으로 수고하고 배우며 따르는 분들도 기쁨으로 순종하는 귀한 동행자들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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