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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 (히 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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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율법에 의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이를 유대교라고 부르는데,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위주로 한 종교였습니다. 그 당시에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저녁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자기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을 감사해서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방금 언급한 네 종류의 제사는 가장 중요한 제사로서 소나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짐승을 죽여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태워 그 연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되 제사의 종류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습니다. 번제는 일 년 된 수컷을 제물로 바치되 제물 전부를 불에 태웠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용서 받기 위한 제사인데, 백성의 신분에 따라서 제물의 종류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화목제는 속죄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과 화해한 것을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로서 백성에게도 제물의 일부가 배당되어 성막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번 씩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그릇에 담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온 백성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제사법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의 레위기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모든 제사에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제물의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리고 남은 것은 제단 아래에 붓는 것입니다.

피가 없이는 제사가 성립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피를 생명과 동일시합니다. 따라서 피를 바친 것은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의하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번제든, 속죄제든, 속건제든, 화목제든 다 속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제사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제물을 바쳤던 제사장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제단에서 불태워 바쳤던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입니다. 율법은 그림자이고, 복음은 실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려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제단이고,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자기의 피로써 만민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히브리서 9장 말씀은 구약시대에 대 속죄일에 바친 제사와 비교해서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려주신 제사의 위대함을 설명해 줍니다.

첫 번째로, 구원을 받으려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래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은 날 때부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누구나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된 그 순간부터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인 율법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죽음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 죽음이 있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다 여기에 해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이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이를 말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바로 이런 상태를 영이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육체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신 대로,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기 마련입니다.

셋째로,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이는 죄인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은 이후에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20장 11절로 15절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죄인”이라고 말하면 “내가 왜 죄인이냐”고 화를 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인 율법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실제로 간음을 하지 않았으면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7)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고 하셨습니다. “31)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준이 얼마나 바르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기준에 비추어볼 때 자신을 의롭다고 내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라는 사람은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라고 말했습니다. 불꽃  같으신 눈으로 살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고 나자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뵙는 것이 두려워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아담은 결코 하나님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혼자 서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숨김없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죄인이 구원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자신이 병든 사실을 알아야만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다”고 말한다고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결함을 알게 됩니다. 영혼의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우리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혼에 있습니다. 죄는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영혼의 건강진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의해서 인간들을 죄인이라고 판단하셨습니다.

사람치고 항상 선한 생각과 행동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하고 실제로 악을 행하면서 살아갑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나는 아무개보다 선량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의인이냐, 죄인이냐로 구별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람은 누구나 방금 말씀한 대로 인간의 실상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상 죄를 담당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죄가 없다면, 인류가 죄인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31)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고 하셨습니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의하면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의 독생자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직 하나 뿐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죄로 인해 멸망당하게 된 인생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구세주를 의미하는 희랍어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예수는 곧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곧 구세주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요즘 종교다원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세주가 여러 명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나 공자나 마호메트는 구세주가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으며, 디모데전서 2장 5절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듣기 싫어합니다. 기독교를 보고 편협한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기독교 안에서도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목사나 신학자가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면 신문에 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부처를 믿어도, 산신령을 믿어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면 종교화합을 위해서 수고하는 선구자로서 그 이름이 신문에 실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도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한갓 종교생활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무엇이나 다 합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도 받고, 약도 복용합니다. 또 민간요법에 따라서 약초는 물론이고, 뱀도 잡아먹고, 짐승의 뼈도 갈아먹고, 굼벵이나 지렁이와 같은 벌레도 먹습니다.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귀하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약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혼이 죽을병에 걸린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죽음에 이르는 병의 원인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였으며, 로마서 5장 12절에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혼의 병을 고침 받는 데는 많은 노력이나 비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는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주시되, 값없이 거저 주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잡혀서 많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두 사도의 발은 착고에 든든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온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습니다. 죄수들을 묶었던 사슬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지진에 놀라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크게 소리 지르기를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니, 간수가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서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에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니, 그 밤에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 중 하나는 그 절박한 순간에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고 하셨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나 구원을 얻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밖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구원을 거저 주신다고 해서 구원을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거저 주시는 이유는 값으로 매길 수 없으리만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구원을 받는데 값이 든다면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생명보다 귀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되 값없이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오늘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피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그 피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정결하게 씻어주십니다. 짐승을 제물로 바쳤던 구약식의 제사는 그 효력이 일시적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써 드려주신 속죄의 제사는 그 효력이 영원합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에는 “11)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죄에 오염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을 때 깨끗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그 흘리신 피가 죄인들의 죽은 영을 새롭게 살려냅니다. 아무리 사악한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더럽고 사악한 생각과 말과 행실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됩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이 변화는 사람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한 변화입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수양을 하고 교양을 쌓고 노력을 해도 그 마음의 악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그 심령이 정결케 된 사람들이므로 깨끗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불쌍한 여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여성의 표상이 되어 있습니다. 세리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돈밖에 모르던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잔치를 했습니다. 또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고 하셨습니다. 일제 때 김익두 목사님은 청년시절에 유명한 깡패였으나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는 2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동일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계명을 읽어 들려준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면서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제물의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도 뿌렸습니다.

이처럼 피를 뿌린 까닭이 무엇일까요? 22절에 보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피를 뿌린 것은 속죄를 위한 것입니다. 짐승의 피를 뿌려서 정결케 되었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로 뿌림 받은 성도들이 완전한 속죄를 받은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불의를 없애고 개혁을 이룬 정권은 하나도 없습니다. 개혁은 법과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아무리 개혁을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심령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올 때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로써 뿌림 받아 정결케 되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벧전 1:2). 마귀가 성도님들을 손대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 피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을 면했듯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갈 때 주의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지켜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경청하신 성도님 마다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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