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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탑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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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말씀은 바벨탑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벨탑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기 전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홍수심판은 땅에서 숨을 쉬는 모든 생명에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심판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서 죄의 열매를 생산해 내기 시작합니다. 이는 홍수 심판으로 인하여 죄된 모든 사람들이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씨앗은 살아남은 인간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가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이 바로 함이었습니다. 성경 창 9:20절 이하에는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고,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있었을 때에,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고 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노아는 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로 결심한 함과 함의 자손들에게 죄의 저주를 내렸습니다. 따라서 함의 사건은 홍수심판으로 인하여 땅에 기식하는 모든 생물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여전히 함을 통하여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께서 창3:15절에서 세상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나뉘어 질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홍수 심판 이후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함이 뱀의 후손이 됨으로서 죄가 다시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죄는 여전히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그 세력을 넓혀 갔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점점 죄의 소굴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런데다가 노아 홍수 이후 살아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라는 구별도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 시점에 급기야 죄의 실체가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1. 가장 먼저 바벨탑 사건은 누군가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쌓아 올린 탑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1절에는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을 때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면서 바벨탑을 쌓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벨탑을 쌓은 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성경은 “그들”이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곧 바벨탑은 누군가가 주도권을 쥐고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장이 말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중요한 사실은 바벨탑은 함의 자손들이 주도권을 쥐고 일으킨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함은 홍수 후에 노아의 나체 사건 때에 그 죄성을 드러냈던 함의 후손들을 일컬어 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창세기 10:6절에는 다음과 같이 합니다. 홍수 후에 함의 아들 ‘구스가 낳은 자중에 니므롯’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니므롯에 대하여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고 증거 합니다. 성경이 니므롯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니므롯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증거 하는 것인데, 여기서 니므롯은 ‘대적자’라는 뜻이며, 영걸이란 좋은 말로 하면 영웅이지만, 대적자라는 이름과 관련해서는 권력자, 폭군, 압제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결론을 보면 그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큰 권력을 가진 폭군이었으며, 특별이 대적자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그가 누구를 대적한다고 규정하고 있는가? 이에 대하여 성경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니므롯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증거 한 것은 그가 어떤 종류의 사냥꾼이었는지를 증거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니므롯은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만약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이었다면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25:27절에서 사냥꾼인 에서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은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에서의 경우를 보면 그가 사냥꾼이었는데, 그의 사냥터를 ‘들’이라고 규정하고 들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에서가 들에서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니므롯에 대해서는 에서와 같이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 대해서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니므롯이 일반적으로 사냥꾼하면 연상할 수 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그런 사냥꾼이 아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니므롯은 어떤 사냥꾼이었을까? 이는 니므롯이 큰 권력을 가진 폭군이었다는 것과 또한 그의 이름의 뜻이 대적자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볼 때, 그의 사냥의 일차적 대상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니므롯에 대하여 사냥꾼의 성격을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그가 사람을 향하여 폭군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압제를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니므롯이 큰 권력을 가진 사냥꾼으로서 전쟁을 좋아하여 사람들을 죽이는 폭군이었는데, 그가 권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모든 일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는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함의 자손 중에 니므롯은 바벨탑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중요한 사실은 바벨탑 사건은 함의 자손 중에 니므롯이 주도권을 쥐고 공식적으로 하나님께 도전하는 악한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그의 나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큰 권력을 가진 자로서 곧 땅의 왕이었습니다. 왕이었기에 그에게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라에 대하여 창세기 10:10절 이하에는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아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다”고 증거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함의 자손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여 큰 제국을 건설했고, 시날 땅에 거하며 큰 제국을 건설하던 함의 자손들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앗수르와 여러 나라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흩어지게 한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바벨탑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1장 2절에는 “그들이” 여기서 ‘그들’은 니므롯을 비롯한 함의 자손들입니다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거기서 벽돌과 역청으로 바벨탑을 쌓았는데”, 바로 그 사건은 그들이 흩어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면 그들이 쌓은 바벨탑은 어떤 것인가? 성경은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면서, 벽돌과 역청으로 성과 대를 쌓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쌓은 것이 바로 “성과 대”였다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성’을 쌓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서 도시를 건설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는 그 도시 한 가운데 높이 쌓아 올린 탑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탑의 종류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도시에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망대와 같은 탑도 있었고, 또한 신을 섬기려고 쌓아 놓은 신전과 같은 종류의 탑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성과 대’중에 바벨탑에 핵심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일부에서는 높이 쌓아 올린 탑(대)에 그 핵심을 두었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은 단순히 탑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서의 핵심은 ‘성 곧 도시’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함의 자손들이 주도권을 쥐고 쌓은 바벨탑은 단순히 탑에 있지 않고, 실제로 그들이 만들고자 한 것은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장에 등장하는 탑은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워놓은 망대도 아니었으며, 또한 신을 섬기려고 쌓아 놓은 신전과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탑은 어떤 특정한 것을 기념하고 더욱더 강화하기 위하여 높이 쌓아올린 탑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탑을 하늘에 닿게 하는 것은 대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을 내 걸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가 하나님 중심의 나라가 아님을 증거 합니다. 또한 그들은 탑을 쌓음으로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탑을 쌓음으로서 사람들을 더 강력한 권세로 통치하려는 의도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바벨탑 사건은 범죄한 인간이 최초로 건설한 인간 중심의 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방으로 옮기던 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도시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다스리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처음 등장한 인간의 나라에 초기 권력자가 바로 함의 자손 중에 니므롯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더 강력하게 하여 사람들을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힘썼으며, 이를 위하여 하늘 높이 쌓아 올린 탑에 자신의 이름을 내 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가진 인간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도전하기 위하여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이는 그 나라는 하나님과 반대에 서 있는 나라로서 사탄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3. 그러면 그들은 바벨탑을 왜 하나님께 도전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의 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것은 전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의도에서 주신 말씀이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는 것은 곧 이 땅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많게 하는 것이며, 그 백성들은 왕 되신 주님 아래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을 받은 작은 왕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고, 그 백성들이 온 땅에 충만해지는 것은 곧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온 땅에 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벨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건설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높아 내 걸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더욱더 강력한 권력으로 사람들을 속박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나라를 이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막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흩으시면서 “이 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하신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인간의 반역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하였고, 하나님에 의해서 삶이 유지되어 지는 한낮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는 대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며 주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에서 나오는 행동인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중심의 나라를 건설하여 경영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과 대를 쌓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성과 대를 쌓은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흩으시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음으로 생긴 결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창9:1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말씀을 오해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시는 잘못된 분이라고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것은 인간의 힘을 약하게 하여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에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왕적인 사명을 주셨던 것을 더욱 확고히 하고 온전히 하게 하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흩어지게 하여 죽이시는 분이시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하나님 없이 성과 대를 쌓아 흩어지지 않는 인간중심으로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하시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흩으심에는 언어 혼잡이라는 방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흩으심에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세상이 죄로 인하여 처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의 왕국이 더디 오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또한 아무리 죄가 세상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오지 못하게 하려고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도를 깨뜨리시고, 인간을 흩으심으로, 분명히 하나님께서 처음 의도하신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4. 중요한 것은 처음 아담과 홍수 후에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고, 또한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인간을 강제로 흩으심으로 인간의 의도를 깨심으로 주께서 다스리는 나라를 건설하시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의도는 중단되지 아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또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왕이시라고 소개합니다.  그 왕 되신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또한 장차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주님의 나라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안에 계시되고 성취된 나라이며, 그리스도안에서 과거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 안에서 살 수 있게 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주님의 나라는 주님의 부활 승천이후에도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도행전2:1절 이하에는 “바벨탑 사건 때문에 혼란에 빠진 언어”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충만을 받고 새로운 방언을 받게 됩니다.  제자들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때에 오순절 기간에 예루살렘에 거했던 유대인들은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리비야 여러 지방과 로마로부터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새로운 방언으로 말하였을 때에 그들은 각자 자신이 살던 나라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하면서 놀랐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주님은 승천하셔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주님의 나라는 이 땅에 도래하였으며, 이제는 완성을 향하여 가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은 과거 바벨탑 사건으로 혼잡케 된 언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서 세상에 여러 민족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는 시대가 왔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범죄함으로 혼란해졌던 언어가 하나가 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구원의 때가 왔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고, 얼마나 교만해 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죄가 가인을 만날 을 때, 그 여파는 작은 것 같았으나, 그 결과는 곧 홍수 심판으로 이어졌듯이, 홍수 이후에도 죄가 함을 만남으로 그 시작은 작았으나, 그 결과는 얼마 되지 않아서 바벨탑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오늘날도 사람들은 다양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직 자신의 이름을 내 걸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인간의 모든 야망과 이상은 마치 바벨탑과 같아서 그것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세상의 어떤 종류의 바벨탑을 쌓아 인간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설교 : /위재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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