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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라, 쉬게 하리라 (마 11: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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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침체되고 부도사태가 발생하는 요즈음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피곤하다” “힘들다” “죽겠다” 입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도 곧잘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요즘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가방을 보면 무척 무겁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녀야 할 정도로 많은 책과 도시락, 그리고 자신의 필수품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도 그 무거운 책가방을 가지고 다녀도,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요,
  행복의 책가방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메고 다녀도, 불행만 가속될 뿐 의미도, 가치도,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수고 =인간이 걸어메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과 실패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고(苦)라고 할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 = 죄를 의미합니다.
  한가지 짐만 어깨에 걸어 맨다고 해도 쓰러지는 인간들이 인간고와, 죄의 짐 두가지를 한꺼번에 지고,  인생 항로를 걷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지쳐서 쓰러지고 피곤하다. 힘들다는 탄식을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을 향하여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1.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다.
  주경가 바클레이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자포자기해 버린 사람,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절망해 버린 사람,  자기의 할 일을 찾지 못해 낙심한 사람.
인생에 지치고 실망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
오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 잃었던 원기를 회복하고 푹 쉬게 한다는 뜻입니다.
  육체적 회복과, 영적인 회복을 말합니다.

  예화> 오래전 해외토픽,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밀리 잭메이슨 액순 주유소에서는 그 날 하루 자기네 주유소를 찾는 모든 차량에 한하여 휘발유를 가득채워 주겠다고 지방 방송을 했다.
  이 때 새벽 5시30분부터 공짜 기름을 넣을려는 자동차들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아침 9시가 되자 차량의 길이가 9.6킬로메타에 이르렀다.
  3-4시간을 기다렸다가 기름을 넣고 가는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짜 기름인데, 기다리는게 대수냐면서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공짜 좋아하는것은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진가 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초청에 냉담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가를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예화> 어떤 사람이 아침에 출근하다가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에서 불길이 솟으면서 집안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들고 있던 가방을 내 던지고 구두를 신은 채 방 안으로 달려들어가 불을 끄는 것이 상식이고 순서입니다.
  그런데도 만일 내 친 걸음이니 출근 시간에 늦지 않아야 된다면서, 대문을 나서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오라 쉬게 하리라.   
현대인들은 영혼의 평안이야 있건 없건 고기 덩어리에 불과한 육체의 안일과
삶을 위해, 주님의 초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안이 없고,  그래서 고독하고 인생이 고달픈 것이다.

  2.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을 살펴보자.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두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마리의 소로 밭을 갈 때면,
      멍에 하나를 두 마리 소에 씌워서 밭을 갈게 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라는 말은 “나와 함께 멍에를 메고”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면, 나는 평안하게 인생의 밭을 갈 수가 있고 길을 가고 짐을 나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곁에 서서 짐을 함께 들면, 편한 이치과 같습니다.
  그러나 난폭하고 잔인한 그 누구와 함께 멍에를 메게 되면 그 인생길이 평탄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나와 함께 멍에를 메고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행하고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 오라는 뜻.

  이 생활이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이고, 주님을 따르는 생활인 것입니다.
  가끔 불신자와 동업하다가 고통을 겪거나 실패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맞지 않아서 사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속아 넘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따르고,  누구와 함께 멍에를 메느냐가 중요합니다.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라고 했습니다.

  둘째는,쉼을 얻으리라는 말씀이다.
  “너희 쉼을 얻으리니” = “너희 마음에 샬롬이 임하리니”
  영어권의 샬롬은 Peace. = Pax라는 말에서 유래.
외형적인 평안, 즉 육체적인 평안을 의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평화는 “샬롬”인데 그 뜻은 영혼의 평화, 즉 내면적인 평안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고 주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평안한 쉼은 팍스(Pax)가 아니고 “샬롬”인 것입니다.
  천만금을 가졌어도 마음이 쉼을 얻지 못하면 행복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유명한 베토벤이나 헨델이나 바하의 음악이라고 해도 반드시 ‘쉼표’가 없으면, 그 음악을 연주할 수가 없습니다.
                                    오라 쉬게 하리라.
  제 아무리 인생에 성공을 하고,
        사업에 성공을 하고,
행복의 절정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참된 쉼, “샬롬”이 있어야 합니다.

  예화> 경찰 통계에 의하면 비관 자살한 사람들 중에 환경을 비관한 생활고로 인한 자살자보다는 인생의 의미나 참 평안을 얻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치스러운 자살자 수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는 참된 쉼이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의 참된 안식은 어디서 오는지 아십니까?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3. 거룩한 교환조건에 대하여 살펴보자.
  30절에 보면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쉽다” = “몸에 잘 맞는다”는 뜻.
  수고의 짐과, 죄의 짐은 나에게 너무나 크고 무거운 것이기에 나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고 있던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면, 내게 꼭 알맞은 짐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적당한 멍에가 필요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실 때 갈릴리에서 제일 좋은 멍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밭을 가는 농부들이 앞을 다투어 그 멍에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경영하는 목공소 간판에는 “내가 만든 멍에는 잘 맞습니다.”라고 써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정이고 전설이지만, 나에게 꼭 알맞는 쉽고 가벼운 멍에를 주실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합니다.

  왜 주님이 주시는 멍에와 짐은 가벼운가에 대하여 주경가들은,
  흑기 = “그리스도와 함께 메기 때문”
  메이어 = “사랑으로 메기 때문”
  어거스틴 = “이 짐은 가벼운 짐이 아니라 날아 갈 수 있는 날개가 된다”
  바클레이 = “사랑은 가장 무거운 짐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두 다리 뻗고 자리에 드러 누워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감이 절로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① 수가 터지고,
              ② 돈이 굴러 들어오고,
              ③ 성공과
              ④ 출세가 문간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주님과 나 사이에는 거룩한 교환이 이루어 집니다.
  ① 더러운 것을 주고, 깨끗한 것을 받게 됩니다.
  ② 폐품을 내놓고, 신품을 받게 됩니다.
  ③ 어려운 것을 내어 놓고, 쉬운 것을 받게 됩니다.
  ④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짐으로 교환하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의 짐,
              책임의 짐.
              봉사의 짐은,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죄의 짐에 비하면, 억천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 가벼운 짐입니다.
               
  오라 쉬게하리라.
주님은 나의 무거운 죄의 짐을 가져 가셨고,
  가벼운 사명의 짐, 책임의 짐을 내게 주셨는데도 힘들다고 불평하며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죄의 짐을 무거웠지만 사명의 짐,
              봉사의 짐,
              책임의 짐은 우리가 언제든지 감당할 수 있는 짐이다.
  나의 무거운 죄의 짐,
          인생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설교 / 강인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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